[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정도령은 단언(斷言)하였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외교이고 정치입니다. 또 믿어야 하는 것도 외교이고 정치이지요. 작금에 명나라는 우리를 의심합니다. 일본과 조선이 힘을 합하여 명나라를 욕보일까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소생이 알고 있는 조선은 감히 그런 야합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일본과 명나라는 또 어떻습니까? 그들은 조선을 석권하기 위해서,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는 자세를 늘 고수하고 있습니다.” 좌중에 어둡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조선이 일본을 응징하기 위해서 출동 한다면 일본은 명에 대해서, 명은 조선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고수할 것인가? “결국 책략가 심유경은 명나라와 일본의 교묘한 줄타기 끝에 황제를 기만한 죄로 처형당하고 말았지요. 중요한 것은 명나라가 한때 조선을 두고 협상을 벌렸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천황이 명나라에게 굴복한다면 명의 태도는 또 다시 달라질 겁니다.” 정도령의 설명을 듣고 있던 김충선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여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김충선은 그 부분 때문에 여진과의 담판을 짓기 위해 만주를 다녀온 것이었다. 소득이 없었다고 자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사실 원균의 이러한 자세와 변화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고 가장 낮선 것은 김충선이었다. 예전의 원균은 무식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장수였다. 그는 용감한 군인 정신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독선적인 장군이었다.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방식만을 고집했었다. 그런데 그는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이다. 누가 이러한 변화를 안겨 주었는지 김충선은 신기했다. “명나라를 동원하는 겁니다.” “명나라 수군을?” “명나라는 이번 전주와 남원성에서 크게 패하였습니다.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요. 그걸 만회하기 위하여 부산 기습을 제안하는 겁니다. 마침 명나라 제독이 진린으로 교체되어 시점도 좋습니다.” 원균이 감탄하였다. “이야! 정도령은 어찌 그렇게 대갈빡이 잘 돌아가는 거요.” “신임 명나라 제독 진린은 자부심이 강하고 명예를 존중하는 장수입니다. 성질이 더럽다고 소문은 났습니다만 그와의 결합은 그리 나쁜 포석은 아닙니다.” 이순신이 물었다. “다른 하나는 어떤 것이요?” 정도령은 주저하지 않고 다른 방책에 대하여 말문을 열었다. “일본은 명량의 대참패로 그 후유증이 매우 클 것입니다.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이순신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진도에는 다양한 씻김굿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넋을 위로하는 살풀이굿을 벌리면 되옵니다. 원귀들이 극락왕생 할 것입니다.” “씻김굿이라? 좋소. 수천 명의 원혼들이 편안하게 고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수고 좀 해주시게.” “장군님이 지시라면 무조건 따르겠나이다.” 이순신은 여전히 굳어있는 신색이었다. “고맙구려. 부탁하겠소.” 무당들이 물러가자 정도령과 원균, 김충선이 이순신을 찾아왔다. “마음이 산란하오.” “장군의 씻김굿으로 구천을 떠돌던 장병들은 크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보다도 곽장군으로부터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이순신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떤 내용이요?” 정도령이 보고했다. “동래 왜성으로 인해서 부산 공격이 지연되고 있다 합니다. 정기룡 장군과 합류하여 양산에서 진해로 경로를 이동 중입니다.” “부산을 포기하자는 건가요?” 정도령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 부산포의 점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가 존재 합니다.” 원균이 투박한 목소리를 냈다. “일본 본토를 기습하기 위한 수송선을 탈취하는 목적이 있었지 않았소.” “그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에 발을 들여놓은 일본군대를 고립시키는 것이지요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귀혼선이 돌아온다!” 진도 우수영이 떠들썩하게 변하였다. 13번째 판옥선 귀혼선에는 성공을 알리는 노란 황색깃발이 군데군데 꽂혀서 펄럭이고 있었다. “노란색 깃발이다! 성공이다!” 일본 오오사카로 떠나갔던 조선인들의 영혼이 담겨있는 잘려진 코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요란한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한 맺힌 곡성(哭聲)이 되어 수영 전체를 휘감았다. 이순신을 비롯한 원균과 정도령, 이제 합류한 김충선 등 전원이 항구로 몰려 나갔다. “으흐엉...오는구만, 돌아오는 구만.” 집결한 조선 수군들 사이로 어민들의 울부짖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군인으로 전투에 임하여 순국한 장병들은 우리 백성이며, 우리 백성의 자식들인 것이다. 항구 전체가 숙연한 분위기에서 귀혼선의 입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5천 개의 베어진 코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운송하던 장병들의 넋을 기다리는 이순신의 마음은 그들을 되찾아 왔다는 안도감보다도 처절한 슬픔이 노도(怒濤)가 되어 주체할 수가 없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증오는 산 덩어리가 되어 이순신을 지탱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이 죄를 다 어이 할 것인가. ‘이제 머지않았다. 우린 꼭 만나게 될 것이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사신에게 무례를 범한 것은 황제를 능멸하는 법이요. 그에게 장형을 가하지 않는다면 조선의 왕도 무사하지 못할 거외다.” 한음 이덕형은 머리가 비상한 관리였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문과에 급제 하였으며 31살최연소로 대제학에 올랐었다. 그는 목전의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명나라 병부주사 사헌이 다시 명을 내렸다. “그에게 곤장 40대를 쳐라!” 병조판서 이덕형이 양 팔을 벌려서 형틀 위의 유성룡을 가로막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국의 제상에게 이럴 수는 없는 법이요.” 부총병 양호의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는 이덕형에게 위협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대도 장형을 당하고 싶은가?” 이덕형은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어디 마음대로 해 보시오! 일국의 대신들을 모조리 불러다가 볼기를 칠 심산인 게요?” 유성룡이 한음 이덕형을 만류했다. “이판서, 자네까지 왜 이러시는가? 나로 끝날 일일세.” 이덕형은 눈을 부라리면서 고개를 강하게 흔들었다. “영상이 어떤 명령을 내리신다 하여도 난 꼼짝 않을 작정입니다. 전하의 어지(御旨)라는 것이 정녕 확인되기 전에는 영상의 손톱 하나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양호가 으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선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명나라 사신이 경에게 곤장을 치라 하오.” 유성룡은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 드렸다. “그것이었습니까?” “사신을 모독한 죄를 물으라 하니 답답하기 그지없소.” 유성룡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하, 심려 마옵소서. 신이 형벌을 기꺼이 받겠나이다. 상감마마의 옥체를 보중하시고 명나라의 굴욕적인 외교를 더 이상 허락하지 마옵소서.” 서애 유성룡은 임금에게 당부하고 어전에서 물러난 후 스스로 자진하여 의금부의 형틀에 몸을 묶었다. 선조는 자신의 권력을 지탱하기 위하여 교활한 연극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서애 유성룡을 희생시킴으로 자신의 보위를 유지하겠다는 치졸한 선택을 어떤 가책도 없이 시도하였다. 그는 역시 불량한 임금이었다. “사헌을 부르게.” 영의정 유성룡의 해괴한 행동에 의금부도사는 영문을 몰라 하며 승정원(承政院)과 벽제관에 각기 기별을 넣었다. 도승지나 임금 선조로 부터는 어떤 대답도 나오지 않았고 벽제관에 머물던 명나라 사신 병부주사 사헌이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다. 그와 동행한 명나라 장수는 경리조선도어사(經理朝鮮都御史) 양호였다. 조선에 부총병으로 파견되어 나온 그는 키가 비록 작았지만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이것이 왕의 무능이 아니고 무엇이요? 신하된 자를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니 오늘과 같은 난리를 겪는 것이 아니겠소. 저따위 신하를 곁에 두고 정치를 하려거든 당장 양위(讓位)를 하시오. 양위를.” 왕권을 이양하라는 주문을 서슴없이 꺼낸 것은 일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서애 유성룡이 폭발하였다. “병부주사! 어느 안전이라고 이런 행패를 부리시는 겁니까?” “뭐라? 행패! 지금 내 귀에 대고 행패라고 하셨소?” “그럼 몰지각한 작태라고 해둡시다.” 명나라의 병부주사 사헌은 대노하였다. “네 너를 요절내지 않으면 우마(牛馬)의 자식이로다. 서애, 그대가 왕의 신임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를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겠다.” 선조는 영의정 유성룡과 명나라 사신이 격하게 충돌하자 진화에 나섰다. “영상은 잠시 물러가 계세요.” 유성룡 역시 오기가 치솟았지만 왕의 명령을 거역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물러 나가자 사헌이 요구했다. “유성룡을 끌어다가 곤장을 치시오.” 선조가 화들짝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서애대감은 조선의 영의정이외다.” 사헌은 말을 길게 끌지 않았다. “아니라면 왕에서 물러나시든지.” 선조는 뜻밖의 외통수에 몰려서 어쩔 줄을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선조가 명나라에 기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선조는 다시 무안하였다. “명나라 군대의 용맹성이 조선의 군대 보다 월등히 앞서고 있는 것이기에......” 왕의 말을 사헌이 감히 중도에서 잘랐다. “그건 지나가는 개도 아는 일이오. 하지만 양 나라의 협상 중에라도 군비를 강화해야 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임금이 되어서 소인배들의 감언에 놀아나고,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체 유흥에 정신을 팔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이 대목에서는 선조도 할 말이 있었다. 명나라에 전적으로 의지 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흥에 빠져서 방탕한 일은 없었다. 다만 김덕령이나 이순신과 같은 왕권의 위협적인 존재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으로 시간을 소모했음은 인정할 수 있었다. “너무 지나치시지 않습니까?” 서애 유성룡은 더 이상 명나라 병부주사 사헌의 방자함을 견디지 못하고 울분을 토해냈다. 선조에 대한 미움만큼이나 애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사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감이 지금 날 책망하는 것이요? 감히!” “조선의 임금이십니다. 예를 지켜 주십시오.” “하하핫, 예라고요? 그런걸 알았다면 우리 명나라에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일본 수군이 전멸 했다네. 그리고 이순신장군의 곁에 정도령이 있네.” 정기룡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런 것입니까?” “이번에 우리 둘은 부산을 점령하여 일본의 수송선을 탈취해야 하는 임무일세.” “수송선을 뺏는다는 말씀입니까?” “정도령이 사용해야 할 곳이 있다고 하더군.” “일본 수송선을 어디에 말입니까?” “어디에 쓰겠는가? 정도령이라면 이 시점에서.” 정기룡장군의 동공이 점차 확대 되었다. “혹시 일본 본토를 역습하려는 것은 아닌지요?” 곽재우가 주변을 살피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정도령에게 병법을 배웠다더니 다르군.” 정기룡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일본의 침략 본성으로 인해서 조선의 피해가 막대하지 않았던가.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그 복수심에 피가 역류할 지경이었다. “부산을 점령하려면 동래성을 우선 쳐야 합니다.” “정보에 의하면 동래성을 점령하고 있는 자는 아사노 요시나가 (あさの よしなが)로 군사 5천을 데리고 있다던데.” 정기룡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아사노는 남원과 전주 공략에 나섰던 우군과 좌군의 총대장 모리와 우키타의 10만 군사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귀혼선은 다시 남해로 방향을 잡아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동해의 황홀한 태양이 바다위에 힘차게 솟아 올라 장엄한 광경을 연출했다. 대자연의 웅대한 아름다움 아래서 원사웅은 자신을 발견하고 기절한 여인의 고운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을 느꼈다. * * * 홍의장군 곽재우는 의병 3천을 긴급하게 모아서 양산으로 향하였다. 본래 토왜대장 정기룡이 활동하고 있는 상주로 가서 합류하려고 하였으나 시각을 지체할 수 없어서 인편으로 전갈을 보내어 부산에서 멀지 않은 양산으로 약속을 정했었다. “곽장군님!” 정기룡 장군은 반가움에 목소리가 약간 젖어있었다. 홍의장군 곽재우보다 10년 아래였으나 사실 벼슬로 따진다면 고위 관리였다. “어서 오시게. 고맙네.” 정기룡은 관군 5백 명을 이끌고 달려와 주었다. 그 5백 명은 정기룡이 직접 선발하여 훈련시켜 온 정예 병력이다. 임진 전쟁 이후 명나라와 일본의 강화 협상 기간 동안 정기룡은 불철주야(不撤晝夜) 관군들을 뽑아서 무예와 전술 등을 지도하였다. 정유년 일본의 재침략에 그 빛을 발휘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부산을 공격하신다는 서찰을 받고 무조건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