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제84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워싱턴 회의’를 앞두고 만세 시위를 이끈 양일석 선생(애족장),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일본의 천황제와 식민 통치를 정면 비판한 민병구 선생(건국포장), 조선총독부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반대하다 옥중 순국한 최인규 선생(애족장) 등 67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 양일석 선생은 1921년 11월, 전남 목포에서 사립 영흥학교 재학 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비 축소 관련 국제회의인 ‘워싱턴 회의’가 열리자, 한국 독립 문제의 상정을 촉구하기 위해 만세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10월을 선고받았으나, 법정에서 ‘독립운동은 평소 소신’이라고 당당히 밝혀 한인 청년의 넘치는 기개와 독립운동에 대한 변함없는 확신을 보여주었다. 민병구 선생은 1933년 부산에서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총독부의 민족 차별적 학교 교육에 반대하는 동맹휴교에 참여하다 무기정학을 받았고, 1939년 일본 야마구치 고등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여우회’) 활동으로 체포되는 등 식민지하의 억압적 교육 환경 속에서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학생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최인규 선생은 1940년, 강원 삼척군에서 천곡교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경제적 후원과 외교 활동 등의 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뒤 세상을 뜬 독립유공자 정두옥 애국지사(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의 주검이 조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고국산천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10일 “제84회 순국선열의 날(11.17.)을 앞두고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 정두옥 애국지사(1889.11.21.~1972.9.9.)와 배우자 이봉아님의 주검을 함께 국내로 봉환해 오는 15일(수) 낮 11시부터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을 거행한다”라고 밝혔다. 유해봉환식에 앞선 13일(월) 아침 9시(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현지에서 호놀룰루 총영사관 주관으로 유족과 교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리며, 국가보훈부는 정두옥 지사의 유해 봉환을 위해 11일(토) 유해 봉환반을 파견했다. 봉환반은 영현의 반출과 검역 절차 간소화 등 출입국을 지원한다. 정두옥 지사의 주검은 현지 추모식이 끝난 뒤 한국으로 출발해 14일(화)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고국 땅을 밟는다. 국가보훈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주검을 영접(18시 40분)한 뒤 국립대전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중일전쟁 이후 학생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간, 서상교(1963년 독립장), 최낙철(1963년 독립장), 신기철(1990년 애족장) 선생을〈2023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라고 밝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언론ㆍ집회ㆍ출판ㆍ결사가 금지되었으며, 일제의 감시와 탄압, 수탈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가다 모진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때의 대표적인 학생독립운동 인물이 서상교ㆍ최낙철ㆍ신기철 선생이었다. 대구 출생의 서상교(1923년) 선생은 대구상업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5월, 김상길ㆍ이상호와 함께 항일비밀결사인 ‘태극단’을 조직, 민족의식을 드높이고 학술 연구, 체력 향상 등의 활동에 나서는 한편, 군사학에도 관심을 두고 관련 서적의 번역, 폭발물 제조에 관해서도 연구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밀고로 단장 이상호가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으며, 그의 집에서 태극단 관련 문서가 발견되어 서상교 선생을 비롯한 26명의 단원 모두가 체포되면서 태극단은 와해 되었다. 선생은 1944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일본제국의 국시[國是]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친일파 처단 등 의열활동을 펼친 독립유공자, 이종암(1962년 독립장), 이강훈(1977년 독립장), 엄순봉(1963년 독립장) 선생을 〈2023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 대구광역시 출생의 이종암(1896년) 선생은 1918년 2월 만주로 망명했다.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속성과정을 거쳐 1919년 10월 수료했고, 동창생들과 의기투합하여 의열단*을 11월에 창립했다. * 1919년 11월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무력독립운동단체로써 1920년대 일본 고관 암살과 관공서 폭파 등을 펼침 선생은 국내로 밀입국해 최수봉(崔壽鳳, 호적명 최경학, 1963년 독립장)을 만나 폭탄 거사를 제의, 최수봉이 12월 27일 밀양경찰서로 진입해 거사를 성공시킨 뒤 1921년 12월 중국으로 탈출하여 북경의 의열단 본부에 합류했다. 또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경신참변 당시 육군대신)가 상해를 방문한 1922년 3월 28일, 황포탄 부두에서 의열단의 다나카 암살 거사에 참여했으나 실패한 뒤 탈출했다. 선생은 의열단 조직정비 때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열정과 집념의 여인, 이윤옥 교수님이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제가 열정과 집념의 여인이라고 하니까, 아부성 발언을 한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벌써 십수 년 동안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업을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낸 것이 《서간도에 들꽃 피다》입니다. 그리고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여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10권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서》, 《경기의 얼, 여성독립운동가 40인의 삶》, 《여성독립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를 냈고, 시화집 《나는 여성독립운동가다》도 냈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열정과 집념의 여인’이라고 하여도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사실 전에는 ‘독립운동’하면 남성들을 먼저 떠올렸고, 실제 독립운동사도 남성들 위주도 되어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요. 이교수는 이에 여성독립운동가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이 일에 뛰어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인 한국광복군 창군 83돌을 기념하는 ‘제83주년 한국광복군 창군 기념식’이 어제(금)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한국광복군 창군일은 9월 17일(1940년)이지만 하루 앞서 열린 이날 기념식은 한국광복군 유족회(회장 장병화)가 주관하고 광복회(회장 이종찬)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거리고 내리고 있는 가운데 열린 기념식에서는 90여 명의 유족회 회원과 내빈들이 참석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한국광복군의 항일투쟁정신과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잊지 말자는 각오의 시간을 가졌다. 기념식은 국민의례에 이어 김희은 이사의 ‘한국광복군 선언문’ 낭독이 있었다. 이어 광복군 유족회장인 장병화 회장의 기념사가 있었는데 장병화 회장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서 없애려 한다는 둥 작금의 사회현상에 대해 너무 가슴이 아프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몇 번이고 기념사를 고쳐 썼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조직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식 국군이었다. 창군 이후 1942년 조선의용대를 흡수하여 1945년 광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31일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한국광복군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독립유공자, 이재현(1963년 독립장), 한형석(1990년 애국장), 송면수(1992년 애국장) 선생을〈2023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라고 밝혔다.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하였다. 세 분의 선생은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서 활동하다가 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 이어 제2지대로 편입하여 활동했다. * 1939년 11월에 창설되어 항일전투에 참여하고, 초모(招募) 공작활동을 벌였다. 1941년 1월 1일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광복군 제5지대로 재편되었다. 경기도 시흥 출생인 이재현(1917년생) 선생은 1919년 부친을 따라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이후 상해소년동맹, 한국특무대독립군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1941년 전지공작대를 비롯해 광복군 공작대 행동대장으로 활약하였고, 1944년에는 광복군 제2지대로 배속되어 정훈을 담당하며 ‘제2지대가’를 작사하기도 하였다. 부산 동래 출신의 한형석(1910년생) 선생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서울 강북구(구청장 이순희)는 이준 열사 주검 봉환 60돌을 맞아 지난 8일부터 오는 11월 30일까지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추모특별전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를 연다고 밝혔다. 이준 열사는 일제의 사법권 침탈에 맞서 싸우다 해임된 대한제국 1세대 검사이자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애국계몽운동가다. 고종의 특사로 임명돼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조약 체결이 일본의 강제에 의한 것이었음을 폭로하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와 열강의 외면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열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국제사회 여론에 호소하는 외교활동을 펼쳤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순국하고 말았다. 이준 열사의 주검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1963년 9월 30일 환국했고, 10월 4일 강북구 수유리에 안장됐다. 이번 추모특별전은 ▲법무대신을 고소한 호법신(護法神) 검사 ▲일제 침탈에 맞선 국권수호운동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돌아오지 못한 특사의 귀환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에서는 이준 열사의 검사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한성재판소 검사 시보 임관안, 대한제국 법관양성소 교재 등 다양한 자료들이 공개된다. 친필 유묵과 고종황제가 수여한 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8일(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의 배우자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주검이 키르기스스탄 에서 사후 70여 년 만에 대한민국으로 봉환됐다”라고 밝혔다. 최 엘레나 여사의 주검은 7일(월) 키르기기스탄 비슈케크에서 출발해 인천에 도착하는 TW604편으로 봉환되었으며 민간기업 티웨이 항공과 페이버스 그룹의 후원이 있어 적기에 모실 수 있었다. 국내로 봉환된 최 엘레나 여사의 주검은 8일(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되어 서울현충원 봉안식장에 임시안치될 예정이다. 또한,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을 11일(금) 국내로 들여와 12일(토), 13일(일) 이틀 동안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마련되는 국민추모공간에 최재형 선생의 위패와 함께 모실 계획이다. 12일(토) 국민추모일부터는 러시아 등 나라 밖 각 나라에 사는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파벨, 증손자 최 표토르, 외증손녀 박 따띠아나 등 직계 후손들이 귀국해 유족으로서 함께한다. 이어서, 제78돌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월)에 “백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10일 “11일(금)~13일(일) 2박 3일 일정으로 박민식 장관이 정부대표로 일본을 방문해 일본 내 유일한 생존 독립유공자이자 광복군인 오성규 애국지사를 영주 귀국의 목적으로 13일(일) 국내로 모신다”고 밝혔다. 11일(금) 일본에 가는 정부대표단은 바로 도쿄로 이동해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오성규 애국지사(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를 위문하고 자녀들과 면담을 통해 국내로 모시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정부대표단의 방일은 2018년 배우자의 사망 이후 아파트에 홀로 거주 중인 오성규 지사가 본인 생의 마지막은 고국인 대한민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국가보훈부에 밝히면서 이루어졌다. 1923년생으로 올해 100세인 오성규 지사는 일제 강점기 ‘주태석’이라는 가명으로 중국 만주 봉천 소재 동광중학을 중심으로 이영순, 조승회 등과 비밀조직망을 만들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에 조직망이 노출되자 동지들과 함께 만주를 탈출해 안휘성 부양의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한 오 지사는 1945년 5월 한미합작특수훈련(O.S.S 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8월 15일 광복을 맞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