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서울 강북구(구청장 이순희)는 의암 손병희 등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의 모습을 인공지능(AI) 기술로 복원한 영상을 제작했다.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하지만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의암(義菴) 손병희 선생(1861∼1922)이 3·1독립선언을 앞두고 천도교 지도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복원 영상은 이러한 순국선열들의 명언과 옛 사진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 선열들이 실제로 말하는 듯한 생생함과 시청각적 효과를 살렸다. 영상은 강북구에 잠들어 있는 순국선열 ▲현곡 양일동(항일ㆍ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투사) ▲평산 신하균(독립운동과 민주주의 투쟁에 앞장선 애국지사) ▲강재 신숙(무장 항일 투쟁과 민족통합운동의 선봉) ▲상산 김도연(동경 2·8독립선언의 주역) ▲가인 김병로(항일변호사로 활약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심산 김창숙(시대와 맞서 싸운 마지막 선비) ▲동암 서상일(청년교육에 힘을 쏟은 독립운동가) ▲단주 유림(조국독립을 염원한 아나키즘 혁명가) ▲춘헌 이명룡(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당신은 나를 만남으로 편한 것보다 고(苦)가 많았고 즐거움보다 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속히 만날 마음도 간절하고 다시 만나서는 부부의 도를 극진히 해보겠다는 생각도 많습니다만 나의 몸은 이미 우리 국가와 민족에게 바치었으니 이 몸은 민족을 위하여 쓸 수밖에 없는 몸이라 당신에 대한 직분을 마음대로 못하옵니다.”- 1921년 7월 14일 당신의 남편 (안창호) - 이는 도산 안창호(1878~1938)선생이 부인 이혜련(1884~1969) 지사에게 쓴 편지글 일부다. 안창호ㆍ이혜련 부부는 혼인 생활 35년 가운데 함께 산 기간은 13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 안창호 선생이 집을 떠나 중국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동안 부인 이혜련 지사는 다섯 자녀 양육과 동시에 가정의 경제는 물론 대한여자애국단 등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남편 못지않게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부인 이혜련 지사와 같은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숱한 부부독립운동가들이 안창호ㆍ이혜련 부부처럼 시련을 극복해나가면서 조국 광복의 찬란한 꽃봉오리를 피웠지만 이들을 다룬 변변한 책도 없다. 그동안 여성독립운동가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가 간도로 이송하던 15만 원을 빼앗은 사건의 주역인 독립유공자, 윤준희(1963년 독립장), 임국정(1963년 독립장), 한상호(1963년 독립장), 김강(1995년 독립장) 선생을〈2023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라고 밝혔다. 함북 회령 출생(1895년)인 윤준희 선생은 중국 용정촌으로 이주하여 서전서숙*(瑞甸書塾)에서 신학문을 수학했고, 영신학교(용정의 교회가 운영하는 기독교 계열의 민족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며 민족교육을 위해 노력했다. * 서전서숙 : 만주로 망명한 이상설(1962년 대통령장), 이동녕(1962년 대통령장) 등이 한인 자제들을 교육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설립한 민족교육기관 한상호 선생(1900년, 함북 경성)은 중국 연길현 명동중학교를 졸업하고, 와룡소학교의 교원으로 재직하며 한인 청년들의 민족정신 교육에 힘을 썼다. 임국정 선생(1896년생, 함남 함흥)은 창동학교에 수학하며 민족의식을 길렀고, 독립전쟁을 위해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 일제와의 독립전쟁에 필요한 장교들을 양성하기 위해 이동휘와 이종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1일 LG유플러스와 함께, 제78주년 광복절 계기 <문화로 독립을 외치다> 운동을 오늘부터 오는 20일(일)까지 펼친다. <문화로 독립을 외치다> 운동은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나운규(영화), 조명희(문학), 송상도(수필), 최덕휴(미술) 선생의 작품을 디지털 전시관을 통해 감상하고 감사 메시지를 남기면 적립금이 발생해 기부되는 방식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이번 운동은 매체예술(미디어아트)로 재탄생한 문화예술가인 독립운동가 작품을 감상하고 오늘날의 소중한 일상이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헌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국가보훈부와 LG유플러스가 공동으로 기획해 추진한다. 전시 작품은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일제의 고문으로 정신이상이 된 민족 청년 ‘영진’을 주인공으로 한 나운규 감독의 1926년도 영화 작품 <아리랑>, 농촌개혁운동을 펼친 운동가인 ‘박성운’과 ‘낙동강’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식을 드러낸 조명희의 1927년 작품, 소설 <낙동강> 등 모두 8편이 소개될 예정이다. 디지털 작품전시관은 LG유플러스에서 개설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독립운동을 하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지 어언 6년, 철저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들어온 암호화 된 밀서 한 장. “조력자를 찾아 서대문형무소에서 탈출하라.”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1일 “광복 78년을 맞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배경으로 참여자가 손말틀(모바일) 기기를 활용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며,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몰입감 있게 체험할 수 있는 실감형 콘텐츠 <1937>을 공개해 연중 운영한다”라고 밝혔다. 이 콘텐츠는 이미 제작ㆍ공개한 국립4·19민주묘지 배경의 <이 세계에서 자유가 사라진다면>, 전쟁기념관 배경의 <로스트 솔져(LOST SOLDIER)>에 이은 현장체험형 보훈콘텐츠 시리즈의 마지막 콘텐츠이다. “독립”을 주제로 한 <1937>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들의 혼이 서려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자, 대한민국의 시작이 된 임시정부의 역사를 담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배경으로, 참여자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된 독립운동가가 되어 단계별 임무를 해결하면서 조력자를 만나 서대문형무소에서 탈출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1일(화) “최재형 선생(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순국장소로 추정되는 러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 년 동안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주검을 모셔 와, 원래 최재형 선생의 무덤이 있던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합장하겠다”라고 밝혔다. 최재형 선생의 무덤은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되었으나, 이른바 ‘가짜 유족 사건’으로 없어져 현재까지도 해당 묘역은 빈터로 남아있다. 이후 유족들은 없어진 무덤의 복원을 지속적으로 희망해왔으나, 최재형 선생이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이후, 현재까지 주검을 찾을 수 없어 유골이나 주검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수 없었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유골이나 주검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무덤에 합장할 수 있도록 올해 1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6월 30일(금) 국회 통과, 7월 11일(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지난 18일(화) 시행되었다. 이로써,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해 주검을 찾지 못한 최재형 선생을 부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30일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부민관에 폭탄을 터뜨린 독립유공자, 강윤국(1990년 애국장), 유만수(1990년 애국장) 선생을 〈2023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라고 밝혔다. 부민관폭탄의거는 1945년 7월 24일 강윤국, 유만수, 조문기 선생 등 대한애국청년당 소속인 세 분이 일본 침략전쟁 동원행사인 ‘아세아민족분격대회*’ 행사장인 부민관(현재의 서울시의회)에 폭탄을 터뜨린 사건이다. * 1945년 7월 24일 박춘금 등 친일 세력이 한국인을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개최한 어용집회(御用集會) 서울 출생인 강윤국(1926년) 선생과 경기 안성 출신의 유만수(1921년) 선생은 가와사키(川崎) 일본강관주식회사 공장에서 노동자로 만나 일본인들이 한국인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것을 목격하고, 민족차별에 반대하는 농성 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국내로 돌아온 선생들은 우연히 다시 만나 의기투합해 1945년 5월 일본강관주식회사 동료들과 친일 거두(巨頭)와 침략 원흉(元兇) 처단을 위해 비밀결사 단체인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45년 7월 24일 박춘금 주최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인으로부터 종로구 북촌로 5길에 있는 '북촌전시실'에서 여성독립운동가 관련 그림 전시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제(25일) 오후 3시쯤 북촌전시실을 찾았다. 한여름 불볕더위를 뺨치게 하는 무더운 날씨지만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이 제법 있었다. 미리 연락하고 간 덕에 작가 김수빈 씨가 반갑게 맞이한다.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전시라고 하면, 흔히 초상화전이라든가, 인물화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견주어 김수빈 작가의 경우는 조금 독특하다. 이번 전시된 그림들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형상이 아닌, 그들의 삶을 이미지화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발상과는 크게 다른 느낌을 받았다. 시각장애인의 몸으로 개성 만세시위에 앞장섰던 심영식 지사의 그림은 구름과 노란별들 사이에 점자를 집어넣어 이미지화했다. 그런가 하면 평원 고무공장 파업을 주도하며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단식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던 강주룡 지사의 경우는 휘영청 떠 있는 보름달이 손에 잡힐만한 거리감이 있는 초가집 지붕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또한 상하이 임시정부를 돕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독립의 의지를 꺾지 않았던 정정화 지사의 경우는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장강일기》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민족의식’이 단연 으뜸 되는 요소겠지만 다른 또 하나를 들라고 하면 ‘독립자금’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두 가지를 겸비한 인물이 김호(金乎, 1884~1968, 1997년 독립장 추서) 애국지사다. 미주지역에서 활동한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가, 자립형 민족지도자, 털 없는 복숭아인 천도복숭아 개발자, 백만장자 독립운동가 등등 김호 지사에 대한 별칭이 많다.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다. 어제(14일) 낮 2시,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독도서관(관장 이병호) 서울교육박물관에서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 김호 지사의 일생을 조명하는 <임시정부의 든든한 후원자 김호> 특별전 개막식 행사가 있었다. 개막식에서는 김호 지사의 외손자인 안형주 선생을 비롯하여, 신임 이종찬 광복회장의 축사가 있었고, 김호 지사가 졸업한 경기고등학교 김우경 교장과 구자철 경기고등학교 동창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임시정부의 든든한 후원자 김호> 특별전은 1900년 고종이 설립한 첫 근대식 중등교육 기관인 관립중학교(현 경기고 전신) 제1회 입학생이자 제1회 졸업생인 독립운동가 김호 지사의 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구국의 일념으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의병을 일으켜 저항한 독립유공자, 오덕홍(1997년 애족장), 김일언(2010년 애족장), 정래의(2022년 건국포장) 선생을 〈2023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라고 밝혔다. 1907년 8월 일제가 강제한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국가 존망의 갈림길에 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전남 나주 출생(1885년)인 오덕홍 선생은 1909년 8월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부대원 20여 명과 나주 등지에서 활동했다. 1907년 9월 기삼연 의병장*이 이끄는 의병부대가 전남 장성에서 봉기하여 호남지역 의병부대들과 직ㆍ간접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활발히 활동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일본군이 1908년 4월부터 대대적인 의병탄압을 시작했다. * 기삼연(1962년 독립장, 2001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1907년 9월 고창에서 일본군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10월 고창과 정읍, 11월에는 부안에서 연전연승하였으나, 순창에서 일경에 잡혀 순국 이에 맞서 나주지역에서 ‘대동창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