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새해를 기다렸다. 한반도를 떠나 동해 한 가운데 울릉도에서 새해를 기다린다. 춥다. 그러나 잠시 세상을 덮었던 어둠이 서서히 밀려난다. 그러고는 자연의 함성들이 들려온다. 우리에겐 어둠만 보이는데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은 그 속에서 자연의 마음을 본다. 시대의 증언을 기다린다. 어둠은 아직 짙다 하여도 새벽이 오면 동은 트고야 말리 동햇가 미명의 언덕 위에 발돋움하고 바라보며 더 멀리 더 높은 곳을 향해 새 증언을 기다리는 마음! 아직은 짙은 안개와 구름으로 머리 위를 무겁게 누르는 하늘 빛 속에서 어둠을 보듯이 어둠을 뚫고 빛을 보는 눈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 황금빛 햇살을 받아들이자 마침내 밝아오는구나. 떠오르는구나. 먼저 햇살을 보내어 위세를 뽐내고는 서서히 동쪽 하늘을 물들인다. 마침 하늘엔 구름도 없구나. 햇님의 자태를 그대로 다 보여주는구나. 살육과 공포에 사로잡혀 무덤 속 같이 어두운 여기 이 인욕의 땅에 부활의 종소리 들려 오려나 평화를 잉태한 새날의 언약인가 돋아오르는 저 아침햇살! 동해는 푸른 바다 아침 햇빛 눈부신 푸른 바다 흰 갈매기 날개조차 물에 잠기면 푸른 물 들고 혈관 속 돌아가는 피조차 푸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신일용 화백이 교양만화 《현대미술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그동안 신 화백은 《라 벨르 에뽀끄》로 유럽인들이 아름다운 시대로 그리워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유럽 역사를, 또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로 정말로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역사를 만화로 알기 쉽게 우리에게 보여주었었지요. 그런데 신 화백이 이번에는 미술 이야기를, 그것도 난해하고 어려운 현대미술 이야기를 펴내다니요!!! 책을 읽어보니 이건 현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낼 수 없는 책임을 실감합니다. 그것도 만화로 집약하여 그린다는 것은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뿐입니까? 현대미술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르네상스부터 서양미술의 흐름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고 또 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밑바탕으로 얘기해줘야지 밑도 끝도 없이 현대미술만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책을 보니 신 화백은 완전히 서양미술을 꿰뚫었네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다고 하는데, 신 화백은 한 권의 《현대미술 이야기》를 내기 위해서 그 얼마나 많은 서양미술사 책을 섭렵했을까요! 아! 참!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60돌을 맞이하여 준비한 <2023 MOVEMENT EWHA>가 2023년 12월 28일 목요일 밤 8시 대강당에서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고등교육에 무용과를 신설한 이후 졸업생을 예술분야의 주요 요직에 진출시키며 명실상부한 무용계의 명문을 이루고 있다. 이번 무용과 60돌을 기린 공연은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이 직접 안무를 한 9편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학부생 작품 7편, 대학원생 작품 2편으로 개성 넘치는 춤과 자신들만의 독특한 이야기로 펼쳐냈다. 기성 무대에서 볼 수 없는 그들의 춤은 도전적이고 섬세하며, 열정적이고 우아하였다. 처음 시작을 알리는 작품은 석사생 김민선 안무로 최우민ㆍ정예주ㆍ최시울ㆍ문승연ㆍ우다윤ㆍ김민선과 중국유학생 웅강이ㆍ호결우가 출연한 ”찌그러진 진주의 노래“ 이다. 이 작품은 바로크의 어원인 브라코(Barroco)에 관하여 찌그러진 진주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안주하지 않고 변혁을 선도하는 이화는 찌그러진 진주와 같다고 한다. 진주의 찌그러짐이라는 이 심오한 뜻에 이화의 춤은 도전정신과 용기에 있음을 말한다. 역동적이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왕비로 산다는 것. 뭔가 제목에서부터 잔잔한 엄중함이 느껴지는 ‘왕비’라는 자리는, 참 높고도 어려웠다. 한 나라의 왕비 역할을 잘 해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음은 고금의 예에서 잘 알 수 있지만, 복잡한 정치 셈법이 얽혀 있었던 조선의 왕비는 특히 더 어려웠다. 이 책 《왕비로 산다는 것》의 지은이 신병주는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주부들이여 왕비가 되자’라는 주제의 특강 요청을 받고, 왕비를 주제로 한 강의를 할 수는 있지만 제목을 ‘왕비로 산다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실제로 그렇게 강의했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도 조선의 왕비는 동화나 사극 속 왕비처럼 아름답고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누릴 수 있는 것보다 제약이 더 많았고, 엄격한 궁중에서 비슷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힘든 직업이었다. (p.8-9) 왕비는 권력과 부가 보장되는 지위라기보다 정치적 상황에 휩쓸려야 했고 답답한 구중궁궐에서 왕의 내조에 전념하는 역할을 요구받는 위치에 있었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에 있는 인공 정원 아미산이나 궁궐 후원을 산책하는 일 또는 궁궐에서 독서를 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왕비의 숨통을 터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임금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정(情)이란 무엇일까? 가수 조용필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운 것 정을 쏟고 정에 울며 살아온 살아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모르게 무지개 뜨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공기처럼 보이지 않은 정의 기운을 주고받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짐 속에서도 가슴과 가슴으로 보이지 않게 흐르는 것이 정일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정이란 우리 마음속에 따뜻한 감정의 원천이며 무형(無形)의 보시며 사랑이다. 정은 우리 혈관을 통해서 흐르는 피와 같다. 또 정을 생각하면 모정(母情)을 떠오르게 한다. 어머니 사랑이야말로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어머니 사랑을 잘 받고 자란 아이는 밝고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누구나 모성애 같은 정을 받기를 원한다. 정은 무엇보다 받는 쪽보다 베푸는 쪽에 값어치를 둔다. 이처럼 정에 근접한 용어를 찾는다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되 베풀었다는 생각마저 같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거문고 연주자 박은혜가 계묘년이 저물어 가는 2023년 12월 27일 밤 8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다섯 번째 거문고 독주회를 열었다. 중앙대학교 이형환 교수의 사회로 문을 연 거문고 독주회는 전통을 바탕으로 한 연주곡들로 가득하였다. 신쾌동류 거문고 풍류 상현도드리와 하현도드리에 이어 거문고 독주곡의 백미인 신쾌동류 짧은 산조가 연주되었다. 이수자의 길을 걷고 있는 박은혜 연주자의 거문고연주는 관객들의 추임새를 끌어내기에 충분하였다. 필자가 숱한 거문고 독주회 가운데 박은혜 연주자의 공연을 보고 글을 쓰게 된 것은 산조 때문만은 아니다. 거문고 산조 연주 이후 소개되는 곡들이 기존의 독주회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거문고 창작곡인 ‘행복한 우리 살림ㆍ첫봉화’가 눈에 띄었다. 개방현을 우렁차게 울리며 박력있고 화려하게 연주하는 것이 한국의 창작곡들과 다르다. 오른손으로 줄을 뜨는 연주법이 인상에 남는다. 북한은 1960년대부터 악기 개량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때 거문고는 개량되지 못해 거문고가 단절되었다. 그래서 현재 남아있는 북한의 거문고 창작곡은 모두 9곡이며 가야금 연주자들이 부전공으로 명맥을 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금은 반짝이며 노란색을 띠는 금속이다. 원소기호 ‘Au’는 금을 나타내는 라틴어 'aurum'에서 따온 것이다. 한자로는 '金'으로 표기하는데, 이때의 금은 ‘쇠 금’으로서 금속(金屬)'을 말한다. 곧 金은 금과 금속 두 가지 뜻이 있다. 금속의 우리말은 쇠붙이이며 금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남아있지 않다. 신라인은 금을 비롯한 금속 전반을 모두 金이라는 한자로 옮겼고 색깔을 나타내는 표현을 앞에 붙여 구분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인은 금을 나륜세(那論歲)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중세 한국어 어휘 '노ᄅᆞᆫ쇠〮(노란 쇠)'에 대응한다. 이후 조선 초기부터는 금을 그냥 한자어인 '金'이라고 불렀고, 노란 쇠를 비롯한 고유어 표현은 이에 밀려 도태된 것으로 보인다. 금은 전성(展性)이 매우 우수해서 얇은 판이나 실로 가공할 수 있다. 전성이 강하다는 것은 물렁물렁하기는 하지만 잡아 늘이거나 강한 힘을 가한다고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금을 얇게 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펴지며 1μm (1/1000 mm) 이하의 두께까지 펼칠 수 있어서 뒤가 비쳐 보이는 얇은 금박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무언가를 금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정말로 이번 주가 2023년의 마지막 한 주구나. 올해가 며칠 남았다고? 그래, 나흘 있으면 새해가 온다. 적어도 달력으로는 말이다. 그런데 무사히 새해는 오겠지? 이 며칠이 길다고 느껴지는 것은 올해 하도 예상도 못 한 일들이 터졌기에 또 무슨 일이 터지는가 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왜 연말이면 공연히 마음이 어두워지는가? 왜 거리마다 휘황한 불을 내걸고 있고 사람들은 그 불빛을 찾아 몰려가는 것일까? 그것은 한해 가운데 밤이 제일 긴 날이 있는 달이고, 그것으로 해서 밤이 가장 긴 때이고, 또 날씨도 추워서 조건반사적으로 이뤄지는 현상이라고 일단 해두자. 며칠 전 세상을 밝혀주었다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불빛과 장식들이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가 꺼지고 있다. 이제 차분하게 한 해를 되돌아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리라.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을 되새기는 날이라면 진정 예수가 탄생했을 때의 풍경은 어땠을까? 베들레헴의 어느 마구간이었다면, 거기는 북위 31도쯤 되는 구릉지대로서 원래 생일은 어떻든 12월 말이라고 몹시 추운 날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 탄생설화가 북유럽으로 올라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전설과 혼합된 것이 오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열심히 정치하라는 뜻의 한자어는 근정(勤政)입니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가장 중심 건물이 근정전(勤政殿)이니 그 중요성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할수록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근정적망국군(勤政的亡國君)이라고 표현합니다. 일을 잘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쓸데없는 일을 부지런히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와 친하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친명배청(親明背靑) 정책을 썼습니다. 그 결과가 병자호란으로 이어져 삼전도의 굴욕으로 남아있기는 하지요. 어찌 되었거나 명나라가 망하고도 조선의 명나라 사랑은 지속되었습니다. 명나라의 마지막 16대 황제가 숭정황제인데 그 숭정 연호를 200년 넘게 사용했으니까요. (원래 연호는 황제가 죽거나 바뀌면 연호가 바뀌어야 정상입니다.) 대부분 나라의 멸망을 초래한 마지막 임금이나 황제의 기록은 좋지 않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숭정제는 망국의 황제인데도 비교적 평가가 좋습니다. 아주 특이한 사례지요. 숭정제는 통찰력이 있고, 신중하며, 주도면밀해서 부지런하다는 장점이 있는 군주였습니다. 업무 능력과 근면함은 명나라 역사상 비슷한 황제를 찾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세계적인 부자는 참 많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부를 쌓았는지에 대한 관심은 넘쳐나도,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관심은 그만 못하다. ‘그들은 부자가 된 뒤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서사는 많아도, 부자가 되어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보여주는 서사는 훨씬 적다. 이향안이 쓴 책, 《나눔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든 진짜 부자들》은 나눔을 실천한 전 세계의 부자들과 지식인,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다룬 책이다. 기부 문화를 만들어 낸 사업가 워렌 버핏부터 나눔의 정신을 세계에 퍼트린 배우 오드리 헵번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인물은 김만덕, 후세 다츠지, 전형필 세 명이다. 잘 알려진 대로 김만덕은 굶주려 죽을 위기에 처한 제주 백성들을 구한 제주의 거상이며, 전형필은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쓴 수장가다. 그런데 후세 다츠지는 무척 새롭다. 그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법정에 선 일본 변호사다. 1880년 미야기현에서 태어나 메이지 법률학교에서 법 공부를 한 뒤, 23살의 젊은 나이로 판검사 시험에 합격한 촉망받는 법조인이었다. 인정받은 실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