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을 지켜본 사물들이 끝내 남아 전하려는 이야기

2021.04.12 11:19:02

고현주 사진전 <기억의 목소리> 4월 20일부터 류가헌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제가 세 살 때 돌아가셨으니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는데, 그나마 이 옷이 하나 남아서 손주들도 보여주고 그럽니다.”

 

동백꽃 사이에 눕히니, 꽃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고운 저고리.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신 강은택 씨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입었던 옷이다. 제주 4.3이 일어난 1948년 그해 12월에 토벌대가 외도리 주변 지역 주민들을 밭으로 끌고 가 학살했는데, 그때 학살된 139명 중에 그의 아버지도 포함돼 있었다. 민간인 희생자 3만 명이라는 숫자 속에 그의 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당시 세 살이던 아들은 칠순 노부가 되었지만, 꽃분홍 저고리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바라지 않은 채 70여 년 전 ‘기억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사진가 고현주는 2018년부터 제주 4.3 관련 유품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기억의 목소리> 작업을 이어왔다. 아버지의 저고리에서부터 또 다른 어머니의 놋쇠숟가락, 은반지, 할머니의 궤, 형님의 엽서까지, 희생자 유족들의 보따리와 궤 속에 오랜 세월 보존되어 있던 사물들을 꺼내서 그 각각의 서사를 하나씩 마주하며 사진에 담은 것이다.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소박한 사물들은 지극히 평범하기에 더 큰 슬픔으로 증폭되어 전해온다. 그들이 살았던 생의 이력, 삶이라는 추상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나며, 소리 없이 묻힌 4.3의 죽음과 비극을 되새기게 한다.

 

73돌을 맞은 올해 4월, 수년간 작업 해온 <기억의 목소리>가 사진집으로, 시인 허은실이 인터뷰를 기록하고 시를 쓴 같은 제목의 단행본 책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희생자 유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글과 유품 22점, 수장고에 보관된 신원불명 희생자의 유품 5점까지, 모두 27점의 사물을 중심으로 만나는 제주4.3의 이야기다.

 

 

 

 

 

사진가는 작업 노트에 ‘사물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왜곡된 역사, 소외되었던 개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온전히 애도 받지 못한 영령들을 위로코자 했다.’라고 쓰고 있다. 우리가 왜 이런 사물에 스민 제주 4.3의 이야기를 보고 들어야 하는지는, 허은실 시인이 들려준다. ‘평화를 소망하기 위해서는, 평화의 반대 감각 또한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현주 사진전 <기억의 목소리>는 4월 20일부터 류가헌 전시2관에서 열린다. 전시장에서는 사진집을 포함해 여러 버전의 책을 만날 수 있다. 4월 2일 토요일 4시에는 사진가 고현주와 허은실 시인이 함께하는 작가와의 만남이 열린다.

 

전시 문의 : 류가헌 02-720-2010

 

 

이한영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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