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당계회도」 보물 지정 예고

2023.03.13 11:45:33

고려시대 불상 1건, 「이항복 해서 천자문」 등도 함께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조선 중종대 계 모임 그림인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를 비롯해 「안성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安城 靑龍寺 金銅觀音菩薩坐像)」, 「수능엄경의해 권9~15(首楞嚴經義海 卷9~15」, 「이항복 해서 천자문(李恒福 楷書 千字文)」 등 고려시대 불상과 전적문화재 모두 4건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독서당계회도」는 조선 중종 때인 1516년부터 1530년까지 독서당에서 사가독서를 했던 현직 관료들의 모임을 기념하여 그린 작품이다. 계회(契會)는 아래 좌목(座目)에 언급된 인물들의 관직을 《조선왕조실록》과 각종 문집에서 확인한 결과 1531년(중종 26) 무렵 열린 것으로 여겨짐에 따라 이 그림도 당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 사가독서: 젊고 유능한 문신을 골라 휴가를 주어 공무 대신 학문에 전념하도록 했던 인재양성책으로 세종 때 처음 시행되었고 존폐를 거듭하다 중종에 의해 재개됨

* 독서당: 처음 사가독서가 시행되었을 때는 자택에서 독서하도록 하였다가 전용공간으로 성종 때 마포에 남호독서당, 중종 때 두모포에 동호독서당 등이 마련되었음

* 계회: 과거시험 합격 동기 또는 같은 관청에 함께 근무한 동료들끼리의 모임 등을 뜻함

* 좌목: 관리들이 모였을 때 앉는 차례나 그것을 적은 목록

 

 

 

한 폭의 족자 형태로 꾸며진 「독서당계회도」는 화면 맨 위에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라는 제목이 한자의 대표 서체 가운데 하나인 전서체로 적혀 있으며, 가운데 그림은 두모포(豆毛浦) 일대의 자연 풍광과 사가독서의 공간이었던 독서당, 사가독서했던 주인공들이 한강에서 뱃놀이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먹을 위주로 하여 묘사한 산수는 조선 전기 화가 안견의 화풍을 추종한 산수화 유파인 안견파(安堅派)의 화풍을 잘 보여주며, 멀리 있는 산은 남동석을 원료로 한 석청 물감을 써서 짙은 청색으로 표현한 조선 전기의 귀중한 예이다. 화면 아래 좌목에는 계회 참석자 12명의 명단이 보이는데 이들의 호(號), 이름, 자(字), 본관, 생년, 사가독서 연도, 과거 급제 연도, 부친이나 형제 등의 인적사항 등이 정자로 바르게 쓴 한문서체인 해서체로 기록되어 있다.

* 두모포(豆毛浦): 지금의 서울시 옥수동 한강변 일대로 동호대교 북단 근처

 

이 작품은 지난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에서 환수한 것으로, 보물로 지정된 계회도 13점과 견줘 두 번째로 제작된 작품이지만, 후대 제작된 계회도의 전형적인 형식인 상단 표제ㆍ중단 그림ㆍ하단 좌목 형태로는 제작시기가 가장 앞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매우 종요롭다. 아울러 상상 속의 이상적 풍경을 그린 그림이자 조선 초기에 성행한 관념산수화와는 다르게 실제 한강 주변의 풍경을 그린 실경산수화의 시원 양식을 유추케 한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미술사적 값어치가 높다.

* 시원: 사물, 현상 따위가 시작되는 처음

* 전형: 동일한 범주의 특징을 보편적으로 나타냄

 

「안성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고려 후기(14세기)에 제작된 보살상으로,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통겼(촘촘하지 않은 얇은 비단)을 입었으며 대좌 위에 완전히 책상다리하고 앉아 있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내려 각각 검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說法印)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 보관(부처님 머리에 쓰는 관)과 대좌(불상을 올려두는 받침)는 후대에 새로 만든 것임.

 

 

이 보살좌상은 갸름한 얼굴에 복스러운 표정, 보계와 귀걸이, 고개를 앞으로 내민 구부정한 자세 등의 표현에서 고려 후기 전통양식으로 이해되는 보살상 무리와 유사성을 보인다. 동시에 다소 좁고 왜소한 어깨, 긴 허리, 높은 무릎 등의 표현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변화하는 전통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연구자료로서 값어치가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양식의 보살좌상이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진 데 견줘 드물게 금동으로 제작되었다는 점, 복장에서 발견된 중수발원문에 보이는 기록을 통해 그 내력을 확인할 수도 있다는 점 등에서 점 등에서 역사적, 미술사적 값어치가 높다.

 

《수능엄경의해 권9~15》는 인도 승려 반라밀제(般剌密諦: 極量)가 중국 당나라로 전래하여 한역한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권을 중국 남송의 함휘(咸輝, ?~?)가 30권으로 엮은 주해서(註解書) 가운데 권9~15에 해당하는 경전이다. 해당 경전의 간행시기ㆍ간행처, 간행자 등을 적은 각 권말의 간기(刊記)를 통해 조선 세조 8년(1462) 간경도감에서 경판을 만들어 펴낸 사실을 알 수 있다.

* 주해서: 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

* 간경도감: 1461년(세조 7)부터 1471년(성종 2)까지 불경의 번역과 간행을 담당하던 임시 관청

* 경판: 나무나 금속에 불경을 새긴 판

 

 

해당 경판은 현재 전하지 않고, 이 경판으로 찍은 인경본(印經本)도 많지 않다. 그 때문에 지정 예고 대상 《수능엄경의해 권9~15》는 전 30권 판본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비교적 많은 양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유일한 권수로 희귀성이 있는 귀중한 학술적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인쇄 상태도 뛰어나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이항복 해서 천자문》은 1607년(선조 40)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손자 이시중(李時中, 1602∼1657)의 교육을 위해 직접 써서 내려준 천자문이다. 이 천자문은 모두 126면의 분량으로, 본문 125면과 발문 1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 면지 이면에 2개의 백문방인(白文方印)인 ‘청헌(聽軒)’과 ‘월성세가(月城世家)’가 찍혀 있는데, ‘청헌’은 이항복의 6대 종손인 이경일(李敬一, 1734∼1820)의 호이다. 본문은 한 면에 2행으로 행마다 4자씩 8자를 125면에 천 글자를 썼는데 서체는 해서이며, 각 글자 아래에는 한글로 음과 뜻을 달아 놓았는데 이것은 후대에 서사한 것으로 보인다.

* 백문방인: 찍었을 때 글씨가 하얗게 나오는 네모난 모양의 인장

 

 

책의 끝에는 “정미년(1607년) 이른 여름(음력 4월) 손자 이시중에게 써 준다. 오십 노인이 땀을 뿌리고 고생을 참으며 썼으니 골짜기에 던져서 이 뜻을 저버리지 마라[丁未首夏, 書與孫兒時中. 五十老人, 揮汗忍苦, 毋擲牝以孤是意]”라고 이항복이 행초서로 쓴 발문(跋文)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제작자와 제작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으며, 이항복이 후손 교육에 쏟은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 행초서: 약간 흘려 쓴 한자 서체인 행서(行書)와 곡선 위주의 흘림체인 초서(草書)로 구성된 서체

 

《이항복 해서 천자문》은 한 글자가 약 8cm로 가장 크고, 시기도 가장 이른 육필 천자문으로 서예사로도 중요한 자료다. 또한 한자 밑의 한글 음과 뜻은 이 시기 한글 변천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국어사적 자료라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독서당계회도」, 「이항복 해서 천자문」 등 4건에 대해 30일 동안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ㆍ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한성훈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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