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로 가다듬는 선비의 정신세계

2023.03.27 11:11:17

거문고 이재화 명인의 새 음반 ‘가곡’에 침잠하다
[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6]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국가무형문화재 거문고 산조 예능 보유자 이재화 선생님을 처음 뵈러 갔던 날이 생생하다. 온화한 미소와 꿰뚫어 보시는 듯한 눈빛, 단호하나 정 있는 말씀 속에서 거문고와 그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찍이 여러 사정으로 거문고 실기 전공에서 이론 전공으로 노선을 바꾼 나였지만 지금까지도 나의 첫사랑, 거문고를 손에 놓고 있지 않은 까닭은 거문고가 주는 깊은 울림과 멋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 호기심은 석ㆍ박사 학위논문에 그대로 남아 있다. 거문고를 미취학 아동에게 가르쳐 볼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하여 어린이용 거문고를 제작하고 아동들에게 적용을 해보면서 개량 거문고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더욱 깊어져 갔었다.

 

그러나, 아무 지식 없이 악기의 길이만 줄여서 어린이용 거문고를 제작했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이후 이러한 아쉬움을 박사논문에서 개량 거문고 “화현금(6현 거문고에서 줄을 늘린 것)”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로 현재 거문고 앙상블 더 거문고의 대표이자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에 계시는 이선희 선생님의 소개로 이재화 선생님을 처음 찾아뵙게 되었다.

 

 

거문고 개량에 대한 역사적 전개를 보았을 때, 연주자가 직접 악기 개량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악기의 전체 개량, 부분 개량을 모두 시도하고 창작곡으로서 그 역량을 선보이도록 하여 창작국악단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사례는 화현금 뿐이라고 한다. 현재 창작국악단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현금은 국악관현악단에서 가야금과 부딪히지 않도록 9개의 줄로만 제작되어 보급되었다는 얘기다.

 

이런 귀한 인연으로 한갑득류 보존회 회원으로 있던 중 선생님께서 음반을 내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음반을 샀고 다시 찾아뵙게 되었다.

 

뵙자마자 선생님께서는 음악을 먼저 들려주셨다. 집안 가득히 울리는 거문고 가락은 계속 귀를 기울이게 하였다. 바쁘게 살던 나의 일상에서 거문고의 깊은 울림은 음과 음이 끊임없이 연결 지고 쉬어가며 노래하고 있었다. 여기에 국가무형문화재 여창 가곡 예능 보유자 김영기 명인이 조화롭게 노래하고 있었다.

 

가장 남자다운 남성의 소리 거문고와 여성의 소리를 대표할 여창 가곡이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을 선생님께서 음과 양의 조화에서 오는 대비의 미라고 말씀하셨다. 실로 그러했다. 가곡의 반주라는 것은 거문고를 비롯하여 가야금ㆍ대금ㆍ해금ㆍ세피리ㆍ장구ㆍ북ㆍ양금ㆍ단소 등 줄풍류 편성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뿐이 아니라 악기 수가 줄어든다고 하여도 장구의 반주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렇게 구성한 이유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거문고는 관악기처럼 노래의 수성가락을 따라가지 않았다.

 

마치 남녀가 함께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거문고는 단순히 반주의 역할만 하지 않았다. 거문고의 술대는 여창 가곡의 호흡을 쥐고 풀었다가 또 풀었다가 쥐었다. 그래서 따로 장구가 없어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거문고와 노래만으로 구성하여 공연을 해보자는 제안으로 시작한 것은 2013년 남미 프렌치 기아나와 프랑스 파리로 오갔던 프랑스 상상 축제의 여창 가곡 순회공연 중에 <계면조 이수대엽>부터다. 이후, 2016년 평창동계올림픽 G-500 기념공연이 있었던 ‘강릉 선교장 열화당’의 <우조 이수대엽>, 2018년 2월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던 ‘한국음악명인전’의 <평롱> 등 그 이후로도 여러 무대에서 거문고와 함께 가곡을 부르는 과정이 쌓여, 오늘의 음반을 결과물로 맞이하게 되었다.

 

 

사자성어 가운데 ‘과유불급’이라는 속담이 있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큼이나 나쁘다.’라는 뜻이다. 요즘 음악이 그렇다. 갖가지의 양념을 쏟아 넣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는 시대다. 다양한 매체들이 난무하고 세계 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다양이란 이름 속에서 어떤 맛을 느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갑득류 산조의 국가무형문화재이신 선생님께서 굳이 풍류 음악의 가곡을 연주하시고 음반까지 내게 된 계기를 여쭈어보았다. 선생님은 “풍류 음악은 산조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그래서 산조라는 음악에 본래 판소리 등의 민속악뿐만 아니라 풍류 음악도 함께 녹아 있다. 한갑득류 산조는 자연스러운 음악을 추구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는 음악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시대를 반영한다. 멜빈 레이더와 버트럼 제섬은 《예술과 가치》라는 책에서 “실제 경험으로서의 생활경험은 특이하고 단편적이며 매우 빨리 지나가지만 계속해서 일어나는 주기적인 변화에서 어느 한순간의 일을 구성하고 표현해서 내놓은 가상적 경험은 충분히 깨닫고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공해준다.“라며 예술에 관한 견해를 이야기 한 바 있다.

 

산조의 명인이 풍류 음악을 하고 개량 거문고를 만들고 창작 음악을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떻게 예술을, 음악을 한 획으로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시대를 살아내는 동안 일상생활에서 느끼고 성찰했던 것들을 모아 특별한 음악으로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다름 아닌 예술인 것이다.

 

이재화 명인, 우리의 선생님. 이재화 선생님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 시대 예술가의 방향을 연주자로서 직접 보여주시며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거문고를 연주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해보았다.

 

”거문고는 마음을 다스리며 수련의 기능으로 연주한 선비 오의상의 오불탄을 생각한다.

첫째, 폭풍우 속 에서 연주하지 않는다.

둘째, 속인(속된 사람) 앞에서 연주하지 않는다.

셋째, 저잣거리에서 연주하지 않는다.

넷째, 앉을 자리가 적당치 못할 때 연주하지 않는다.

다섯째,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을 때 연주하지 않는다.

 

곧 위의 다섯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연주하지 않는다.

 

이어서 아래의 다섯 가지 자세를 갖추고서 연주에 임하는데 이를 ‘오능’이라고 한다.

첫째, 앉는 자리를 안정감 있게 한다.

둘째, 시선은 한곳을 향하도록 한다.

셋째, 생각은 한가롭게 한다.

넷째, 정신은 맑게 유지하도록 한다.

다섯째, 지법은 견고히 하도록 한다.

 

‘오불탄’과 ‘오능’은 오의상을 비롯한 선비들이 거문고를 탈 때마다 지켜야 했으며, 이를 통해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가다듬는 악기 이상의 악기다. 단순히 선율을 구사하는 기교적인 악기가 아니기에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은 수련하는 것과 같으며 도를 닦는 것과 같다.“

 

구구절절 거문고를 연주하는 이들에게 금과옥조 같은 말씀이다.

 

이를 두고 선생님은 거문고를 예부터 금도라고 일컫는다고 말씀하셨다. 곧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은 내 마음을 수행하며 도를 닦는 것이라는 말이다. 심장을 건드리는 소리로 심장에 누구나 금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 ‘심금을 울린다’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에서 ‘금’은 거문고를 가리킨다고 말씀하신다.

 

선생님의 일상에서 이러한 거문고 음악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늘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고 하셨고 악기 연주할 때, 자세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셨다. 음식을 절제하시는 까닭도 이와 같은 이유에선 듯하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고, 이러한 정신으로 깊은 성음을 낼 수 있다고 하시며 악기와 연주자의 혼연일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이렇게 언행일치의 예술적 삶을 이어가시는 선생님과 거문고의 첫 만남은 학생 시절부터란다.

 

국악 중ㆍ고등학교의 전신인 국악양성소에서 처음엔 제1지망이었던 대금을 공부했는데 몸이 아파 휴학했다가 복학하게 되면서 제2지망이었던 거문고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1년 늦게 시작한 거문고를 만나 무현이 내는 저음 소리에 대한 감동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거문고의 울림이 선생님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지금 거문고가 나의 심금을 울린 것처럼 말이다.

 

음악이 흐르는 내내, 심금을 울리는 거문고 소리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일상의 경험을 어떻게 특별한 경험으로 살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침잠의 시간이 흐르고 또 흘렀다.

 

어떤 이는 서양 음악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들으며 나날을 보낸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서양 악기 첼로에 견줘 거문고의 침잠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다. 일상에 지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분들에게 또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고민인 분들에게 거문고와 가곡이 조화롭게 노래하는 이 음반을 소개하고 싶다. 이 음반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정화가 된다. 또 태교로 배 속의 아이에게 들려주어도 좋다. 이 음반을 듣는다면 일상을 완전히 다르게 바꿔 놓을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임을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이진경 문화평론가 jksoftmil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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