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무는 공간이 운을 바꾼다

2024.04.01 11:00:10

《운을 만드는 집》, 신기율, 위즈덤하우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운은 그저 다가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운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고, 그저 나쁜 일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 《운을 만드는 집》의 지은이 신기율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운’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명(命)’은 고정불변의 것이고 정해져 있는 것이라지만, 사람이 사는 공간은 자신의 의지로 길흉을 바꿀 수 있는 ‘운(運)’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돈ㆍ건강ㆍ관계의 흐름이 바뀌는 공간의 비밀’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좋은 공간에 사는 것은 재운과 건강,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공간이 가진 특별한 치유의 힘과 가능성, 에너지를 알고 다스릴 수 있다면 이는 공간이 좋은 운수가 열리는 지름길이 된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400년을 이어온 최부잣집의 남다른 스페이스로지’다. ‘재불백년(財不百年)’, 곧 ‘100년 가는 재산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산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무려 400년 동안 부를 이어간 최부잣집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간 설계’라는 것이다.

 

글쓴이는 최씨 집안의 부가 지켜진 비밀로 우선 ‘육훈’이라 불리는 가훈을 이야기하며, 사방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고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주효했다고 짚는다.

 

다만, 좋은 가훈을 둔 것과 그것을 대대로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세상에 좋은 가훈을 지닌 집은 많다. 최씨 집안에는 부의 오랜 세습을 가능하게 한 다른 ‘한 끗 차이’가 있는데, 지은이는 그 흔적을 ‘집’에서 발견했다.

 

최씨 고택은 일반적인 한옥 양식을 그대로 따른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다. 일단 모든 건축물이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다. 가장 좋은 목재로 지어진 고급스러움은 있지만, 공간을 채우는 방식이 소박하고 검소했다.

 

집은 의도적으로 ‘아담해 보이게’ 지었다. 주변 향교와의 갈등을 피해 터의 위치와 용마루를 낮췄기 때문이다. 다른 집들에 비해 솟을대문도 작다. 위엄과 권세를 나타내는 집안의 얼굴인 솟을대문을 낮춘 것은 사람으로 치면 몸을 바짝 낮춘 것이다.

 

이렇듯 겸허한 공간의 기운이 과객을 불러들였다. 물이 낮은 곳으로 모이듯, 하루에만 100명이 넘는 과객과 유랑객이 낮아진 문턱으로 넘나들었다. 최씨 집안은 이런 과객들은 모두 차별 없이 받아들이고 극진하게 대접했다.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은 과객이 전국에 ‘입소문’을 내면서 최씨 집안은 흔히 부자가 받기 쉬운 질시와 모함을 비껴갈 수 있었다. 권력의 참견을 받지 않으며 민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은 것은 그 집에 머물며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이들의 보이지 않은 후원과 지지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최부자 고택에서 곳간이 가장 크고 눈에 띄게 만들어져 있는 점도 공간 활용의 슬기로움이다. 사랑채에 드나들던 수많은 손님은 사랑채 옆에 있는 커다란 곳간을 마주할 때마다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곳간이 재력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가 아닌, 비상식량 저장고처럼 흉년에 든든한 구휼미가 되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오히려 안심되었을 것이다.

 

(p.173)

작은 문과 큰 곳간은 결과적으로 최씨의 집을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개방성은 시간이 쌓일수록 최씨 집안을 명문가로 만들어 주었고 스스로를 단속하는 명분이 되었다. 절이나 교회처럼 최 부잣집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어 구성원들로 하여금 이곳에 살고 있는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것이다. 이는 세대를 넘어 부를 유지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이 되었을 것이다.

 

최씨 가문의 사례에서 공간이 가지는 특별한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공간에 구현해 놓으면 몸이 기억하게 된다. 좋은 생각이 생활 방식으로 체화되고, 이렇게 쌓인 좋은 습관이 좋은 운을 불러들여 마침내 삶을 바꾸는 것이다.

 

공간을 잘 다루기만 해도 숨통이 트이고, 돈 그릇이 커지고, 다른 운명이 펼쳐진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일리 있는, 공간에 대한 깊은 통찰로 가득하다. 인간은 언제나 어떤 물리적 공간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공간을 좋은 방향으로 다룰 수 있다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혹시 내가 사는 공간에 답답함을 느끼거나, 뭔가 정체되어 있고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평소 공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며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는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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