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미스 K는 사귀어볼 만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미모와 지성과 재능을 겸비했다면 도전해 볼만한 값어치가 있는 여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녀의 이혼 여부였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K 교수는 조강지처 아내를 팽개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미스 K가 혼인해서 잘 살고 있다면 식당 여주인 이상의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정말이지, 두 가정을 파괴하면서까지 사랑의 불장난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스 K가 이혼녀라면?
K 교수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모범생이었다. 한눈팔지 않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인생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자기와는 다른 삶을 산 친구들을 보니 자기의 삶이 너무 단조롭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업하는 친구들을 보면 술집 여자, 유부녀, 또는 이혼녀를 대상으로 한 두 번은 외도 경험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는 맨정신으로는 잘 못하고 으레 술자리에서 꺼내게 되는데, 평생 한 우물만을 파온 K 교수로서는 그것이 그렇게 부러워 보인다. 어떤 때에는 친구가 유능하고 자기는 무능해 보이기조차 하다. 남들이 잘도 피우는 그 외도, 우리말로는 바람의 느낌은 어떠할까? 외도는 모든 수컷의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닐까?
진화심리학에서 외도 현상은 오랜 기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진화론적으로 수컷은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려는 본능이 있고, 암컷은 더 나은 유전자를 가진 배우자를 찾으려는 본능이 있다. 최초의 인류 집단은 배우자가 정해져 있지 않는 원숭이 무리와 다르지 않았다. 인류에게 일부일처제가 정착된 지는 수천 년밖에 되지 않는다.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의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아직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 외도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이다. 알기 쉽게 말해서 인간의 유전자에는 아직 ‘바람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인류에게 일부일처 제도가 등장한 이후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는 윤리와 법을 통하여 남녀의 외도를 통제해 왔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 외도는 십계명에 어긋나는 죄악으로 간주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교를 따랐던 조선 시대에 남자의 외도는 묵인되고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대한제국 시절인 1905년 제정된 형법에서 간통죄는 기혼 여성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1953년에 개정된 형법에서 간통죄의 당사자 남녀 모두를 처벌 대상으로 확대했다. 남자나 여자나 외도를 하려면 감옥에 갈 위험을 감수하고서 모험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였다.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국가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게 되었다. 남녀는 평등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엄격한 기독교 국가였던 유럽에서부터 간통죄가 폐지되기 시작하였다. 덴마크(1930년), 스웨덴(1937년), 일본(1947년), 독일(1969년), 프랑스(1975년), 스페인(1978년), 스위스(1989년), 아르헨티나(1995년), 오스트리아(1996년) 등에서 잇따라 간통죄가 폐지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폐지된 간통죄가 왜 우리나라에서만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산업화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게 되자 여성들도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직장에서 또는 교회나 산악회에서 남녀의 만남이 빈번해지자 외도와 불륜이 늘어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2015년 2월에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처벌하는 형법 제241조를 위헌으로 결정하였다. 이제는 불륜의 당사자들을 간통죄로 고발하여 감옥에 보낼 수는 없게 되었다. 기껏해야 주거침입죄로 형사 고발하거나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 불교의 핵심 사상이 나타내는 바대로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등산하다 보면 길이 갈라지는 곳이 있다. 주 등산로를 따라가다가 샛길을 만나게 된다. K 교수의 삶은 주 등산로를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그러한 산행이었다. 샛길로 가면 길을 잃고 조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K 교수는 한 번도 샛길로 들어선 적이 없다. 그러나 친구들은 샛길로 갔다가 다시 주 등산로로 되돌아오는 모험을 즐긴 그런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K 교수는 용기가 없어서 샛길로 가면 어떤 세계가 전개되는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샛길을 걷는 느낌이 어떠한지 궁금하지만, 지금까지 꾹 참고 살아왔다.
K 교수는 생의 에너지가 쇠퇴 해지기 전에 “한 번쯤 모험해 보면 어떨까?”라는 호기심 반 본능 반의 유혹을 때때로 받곤 한다. 단, 조건은 결혼생활을 깨뜨리지 않는 것이다. 지천명이라는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내와 헤어지고 아이들에게서 손가락질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 그런데 정말로 궁금하다. 정도를 벗어난 외도의 세계는 어떠할까?
외도의 상대가 유부녀라면 그녀는 남편을 속여야 하고, 자신은 아내를 속여야 한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죄책감을 떨칠 수는 없겠지. 그러나 상대가 이혼녀라면 자신만 아내를 잠깐 속이면 되므로 유부녀보다 훨씬 위험 부담이 적을 것이다. 미스 K의 이혼 여부는 그래서 외도를 꿈꾸는 K 교수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K 교수는 상상의 날개를 타고 꿈을 꾸고 있었다. 이효석의 빼어난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 허생원은 달밤의 물레방앗간에서 우연히 만난 동네 처녀와의 하룻밤 정사를 평생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간다. K 교수가 그녀와 꿈속에서라도 한 번의 정사를 가진다면? 그건 불륜이 아니라 로맨스일 것이다. (헐! 전형적인 내로남불!)

그렇더라도 물론 아내를 버리고 그녀와 남은 인생을 같이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한 번의 외도, 또는 좋게 말해서 한 번의 로맨스는 괜찮지 않을까? 나중에 늙어서라도 회고할 수 있는 과거의 비밀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멋진 일이 아닐까?
일찍이 천재 작가 이상(1910~1937)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K 교수는 어느 날 미녀와 하루를 보내는 황홀한 꿈을 꾸기도 했다.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비밀은 재산과 같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