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 열린선원과 고 오희옥 지사 추선공양

  • 등록 2025.06.09 12:03:52
크게보기

열린선원 개원 20주년 기념식서 가진 추선공양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만 스무 살, 사람으로 치면 이제 청년기에 들어선 나이다. 어제(8일) 은평구 신사동 <열린선원>(선원장 무상법현 스님)에서는 열린선원 개원 20돌을 맞아 조촐한 행사가 있었다. 저잣거리 포교사로 이름난 무상법현 스님이 2005년, 첫 포교지로 자리잡은 곳은 지금의 자리에서 멀지 않은 은평구 갈현동 역촌중앙시장이었다.

 

화장실도 공용화장실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로 불편한 시장의 낡은 건물 2층에 자리잡은 열린선원으로 무상법현 스님을 취재하러 간 것은 한글날을 하루 앞둔 2016년 10월 8일이었다. 스님은 그동안 어려운 각종 불교의식의 한글화를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으로 2010년에는 열린선원 자체적으로《한글법요집》을 펴내 사용하여 신도는 물론 일반 사회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 열린선원이 어제 20돌을 맞이하였다. 행사는 조촐했지만, 행사 이름은 조금 긴 “열린선원 개원 20주년 여성독립운동가 고 오희옥지사님 추선공양원왕생극락 염불 강연(아래, 열린선원 개원 20주년)”이었다.

 

 

20돌 행사를 하기 얼마 전에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열린선원 개원 20주년 행사와 함께 지난해 순국선열의 날인 11월 17일에 타계한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님을 위한 추선공양(追善供養: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명복을 축원하는 의식)을 함께 진행하고 싶다”라는 의견이었다.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였던 오희옥 지사(1990년 애족장, 1926.05.07 - 2024.11.17)께서 6개월여 전에 영면에 드신 것을 기억하시고 열린선원 20돌 개원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 무상법현 스님의 마음에 감복하였다. 그렇게 마련된 자리가 어제 열린선원 개원 20돌 행사였다.

 

어제 행사는 전통염불범패전문스님이신 어산(魚山) 신덕 스님께서 추선공양원왕생 극락 염불을 집전하신 가운데 귀빈으로 참석하신 십여 분의 스님들과, 피리협주 장원진 장악사 대표 그리고 고 오희옥 지사의 아드님인 김흥태 선생, 광복회 해외홍보대사인 황명하 선생과 100여명의 불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는 나에게 재산을 물려주었고 나를 위해 일했네. 그는 나의 가족이고 동료이고 친구였네. 과거에 영가께서 우리에게 했던 일을 이렇게 회상하며 영가들을 위해 공양을 올려야하네. (중간 줄임) 이렇게 후손들은 영가를 위해 공양을 올리고 영가는 이로 인해 좋은 과보를 받고 스님들은 힘을 얻으니 그대들이 얻은 공덕은 적은 것이 아니라네.” -진리 말씀을 여는 참된 말씀(다같이) ‘담장밖경’, 89쪽-

 

 

이는 고 오희옥 지사 추선공양에서 대중이 함께 읽은 우리말 의식 법요집 《가피·수행 불교성전》(한글의식ㆍ경전ㆍ찬불가) 가운데 일부분이다. 한자말이 아닌 우리말이라서 함께한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사실 불교신자가 아닌 기자로서는 어쩌다 불교의식에 참석할 때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길고 긴 의례에 지레 겁을 먹곤 했었지만 어제는 달랐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각종 불경(佛經)들은 마치 내 부모님의 추선공양에 참석한 듯 정갈하면서도 마음 가득 우러나는 추모의 정이 절로 생겼다. 이 밖에도 ‘편히 앉는 참된 말씀(스님), 구업 씻는 참된 말씀(다같이) 모든 신 편케하는 참된 말씀(다같이), 경전 펴는 게송(다같이), 뉘우치는 참된 말씀(다같이), 널리 청하는 참된 말씀(스님), 큰 슬기로운 정토에 이르는 핵심 말씀(다같이) 등등 스님과 함께《가피·수행 불교성전》을 독송하며 고인이 된 오희옥 지사를 비롯하여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헌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새기는 시간은 정말 뜻깊었다. 고맙게도 이 책《가피·수행 불교성전》은 모든 참석자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열린선원 개원 20돌을 맞아 무상법현 스님은 “산속에 사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의 땀이 배어있는 저잣거리에서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을 익혀서 나와 우리에게 유익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게하는 것이 열린선원 정신입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어려운 불교 의례집과 불경 등을 한글화하여 초등학교만 나와도 쉽게 이해하여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참선수행과 가르침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난 20돌을 발판으로 ‘열린마음, 열린포교’ 정신을 구현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오희옥 지사의 아드님인 김흥태 선생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어머니(오희옥 지사)는 광복 뒤, 귀국하여 은평구 대조초등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우셨습니다. 어머니와도 인연이 깊은 은평구에 자리한 열린선원에서 어머니의 추선공양을 마련해주셔서 더욱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어머니의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가겠습니다. 열린선원의 발전을 빕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광복회 해외홍보대사인 황명하 선생은 “고 오희옥 지사님께서 운명하시던 지난해 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을 위해 호주에 있을 때였습니다. 한국에서 호주로 돌아갈 때에 오희옥 지사님의 건강이 안좋다는 말씀을 듣고 내심 걱정하며 순국선열의 날 행사를 치르면서 참석자들과 건강 기원을 했는데 그만 고국에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와 가슴이 아팠습니다. 바로 달려와 장례식(국가보훈부 사회장)에 참석을 못 해 아쉬웠는데 오늘 이렇게 추선공양에 함께 할 수 있어 마음의 빚을 던 기분입니다. 열린선원의 무상법현 스님께서 오희옥 애국지사님의 극락왕생을 비는 추선공양을 마련해주신 깊은 혜량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라고 인사했다.

 

 

‘저잣거리’라는 말을 요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거리’라고 풀이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도 멋이 없긴 마찬가지다. 무엇인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장의 느낌이 저잣거리가 아닐까? 그곳에서 둥지를 튼 지 어언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비록 그 자리가 아니지만 새로 옮긴 신사동의 열린선원 역시 아담하기 마찬가지다. 시설의 미학이 아닌 '내용의 미학을 품은' 열린선원 개원 20돌을 기자 역시 큰 손뼉으로 축하했다.

 

이날 오희옥 지사의 추선공양 의례 뒤에 여성독립운동가에 관한 기자의 강연이 있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활약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풀기에 30분은 매우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개원 20돌 축하 법회 시간을 할애하여 여성독립운동가의 명복을 비는 추선공양을 하고 기자에게 까지 시간을 내어주신 무상법현 스님의 열린 마음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대개의 기념식에는 주최측의 축하인사로 주어진 시간의 절반을 할애하는 게 보통이 아닌가! 

 

 

 

그럼에도 열린선원의 20돌 기념식은 모든 것을 생략하고 오로지 고 오희옥 지사를 위한 추선공양이 중심이었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은 우리소리 피리연주로 품위있게 마무리되었다.  요즘 각종 기념식들이 화려해져 가는 것과는 달리 소박하면서도 정갈함이 배어있는 '열린선원 다운 개원 20돌 행사'를 지켜보며  오랜만에 ‘종교가 갖는 시대의 참신성’을 접한 듯 상큼했다. 

 

   【열린선원장 무상법현(無相 法顯) 스님은 누구인가?】

무상법현 스님은 선 수행을 중심으로 교화를 하고 있으며 범불교, 범종교 교류에 적극적으로 시민사회활동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경실련, 민주평통, 환경연대, 인권위원회, 협치위원회, 생명윤리, 4차산업과 윤리 민관협의체, 3ㆍ1운동백주년기념행사추진위원회 등 여러 분야에서 실천불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동국대학에서 응용불교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학승으로 태고종에서 교류협력실장, 총무원 부원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국장과 상임이사를 지냈다. 아울러 범종교에서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의 종교간 대화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무상법현 스님은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서 열린선원을 개원하여 17년째 전법을 하다가 신사동으로 이운, 개원하였다.(2022.4.24.) 또한 인천공항 제2터미널 불교세계선원을 법호 스님과 함께 이끌고 있으며 아울러 평택 전통사찰 보국사 주지 소임도 맡고 있다.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는 누구인가?】

오희옥(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2024.11.17 타계) 지사는 할아버지 대(代)부터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일가’에서 태어나 1939년 4월 중국 유주에서 결성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및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第5支隊)에서 광복군으로 활약했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오희옥 지사 집안은 명포수 출신인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1867~1935), 중국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아버지 오광선 장군(1896~1967), 만주에서 독립군을 도우며 비밀 연락 임무 맡았던 어머니 정현숙 (1900~1992) , 광복군 출신 언니 오희영(1924~1969)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령(參領)을 지낸 형부 신송식(1914~1973) 등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