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제 갈 길을 가는 뿌리의 시간

  • 등록 2026.03.06 10: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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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피워내는 단단한 자람의 결
[오늘 토박이말]그루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공공기관에서 길나무(가로수) 가지치기를 할 때 '전정'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을 꼬집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문제를 넘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소홀히 여기는 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앙상하게 잘려 나간 나무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성과라는 잣대에 맞춰 삶을 조급하게 다듬으려 했던 마음과도 닮아 있습니다. 오늘은 겉모습은 조금 볼품이 없을지라도, 바뀌지 않는 됨됨이로 삶의 자리를 지켜온 여러분에게 '그루'라는 말을 조용히 건네고 싶습니다.

 

 

'그루'는 본디 풀이나 나무를 베어 낸 뒤 땅에 남아 있는 그 아랫동아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비록 윗부분은 사라졌을지라도 그 안에는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나이테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다시금 새순을 틔울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이 숨어 있지요.

 

 

우리는 흔히 무언가 온전히 남아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덜어내고 남은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진짜 내 모습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한 그루, 두 그루처럼 수를 세는 하나치(단위)로 쓰일 때 이 말은 저마다의 생명이 가진 고유한 값어치를 존중한다는 뜻을 품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싹을 틔우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니까요.

 

바쁜 나날 속에서 우리는 성과라는 열매에만 집착하며 정작 나무의 밑동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살피지 못합니다. 남들과 견주며 자신의 속도를 의심할 때, 문득 멈추어 서서 당신이라는 나무의 '그루'를 들여다보았으면 합니다. 당신이 그동안 겪어온 시련과 인내의 시간은 결코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마음의 밭을 더 기름지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겨울을 견딘 그루터기에서 가장 연하고도 강인한 새순이 돋아나듯, 당신의 삶도 가장 아름다운 때에 맞춰 분명히 피어날 테니까요.

 

[여러분을 위한 덤]

 오늘은 눈앞의 성과보다

나라는 사람의 중심이 얼마나 단단한지 가만히 헤아려 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깊어진 마음의 결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주시길 바랍니다.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나라는 나무가 참 대견합니다."라고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바탕으로 나만의 중심을 지켜냈는지 적어봅니다."와

같이 짧은 글을 남겨도 좋습니다.

당신이 지켜온 그 고요한 시간의 무게는 무엇인가요?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단단한 '그루'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의 토박이말]

 ▶ 그루

    뜻: 1. 풀이나 나무 따위의 아랫동아리. 또는 그것들을 베고 남은 아랫동아리.

         2. 작물을 심어 기르고 거둔 자리.

         3. 식물, 특히 나무를 세는 단위.

         4. 한 해에 같은 땅에 농사짓는 횟수를 세는 단위.

    보기: 도심 속 가로수가 싹둑 잘려 나간 자리에도 이듬해 다시 잎이 돋는 그루의 강인함을 봅니다.

 

[한 줄 생각]

 꽃은 철이 되면 피지만, 뿌리는 언제나 묵묵히 땅을 붙들고 제 길을 만듭니다.

 

이창수 기자 baedalmalji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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