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시사 합작시 64. 무념무상(無念無想)

  • 등록 2026.03.08 11: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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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무념무상(無念無想)

 

   말 잊고 생각 없이 바라보네 (달)

   염에 이르러 염을 다한 마음 (돌)

   이제 아쉬움 다 없어졌느니 (빛)

   지금 여기 이미 갖춰진 자리 (초)

  

                                   ... 25.2.10. 불한시사 합작시

 

옥광 시벗이 산책길에서 보내온 구절에서 합작시의 초구(初句)로 삼았다. 그의 “말을 잊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바라보네. 이것!”은 단순한 정경 묘사가 아니다. 그는 언어 이전, 사유 이전의 자리에서 세계를 마주한 체험을 건네주었다. ‘말을 잊는다’라는 것은 분별의 언어를 거두는 일이며,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라는 것은 개념의 그림자를 거두는 일이다. 그리하여 남는 것은 대상도 관념도 아닌,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드러나는 ‘이것’의 현전이다.

 

 

그가 말한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이것'은 멀리 있는 초월적 대상이 아니라, 각자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하는 생생한 현존이다. ‘이것’은 주관적 심상도 객관적 사물도 아니다. 마음과 사물이 나뉘기 이전, 곧 심물합일(心物合一)의 장에서 드러나는 일물(一物)이다.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한 “Es spricht(그것이 말한다)”의 ‘그것’ 또한 존재의 드러남을 가리키지만, 여전히 언어의 틀 안에 머문다.

 

선가에서 말하는 ‘그것’은 개념으로 지시되는 대상이 아니라, 직접 체득되는 자각의 자리다. 옛 선사들이 말한 ‘일물’은 하나의 물체가 아니라 분별 이전의 통일된 실상이다. 서산대사가 자기 초상화에 남긴 시,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곧 저것이다”라는 주객의 전도를 통해 시간의 허상을 드러낸다. ‘저것’이라 하던 대상과 ‘나’라 붙들던 자아는 서로 갈라진 실체가 아니다. 순간순간 형상은 변하되, 그 바탕의 '일물'은 항상 그대로다.

 

 

승구(承句)는 스승의 말씀 가운데 “염도념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에서 가져왔다. 이는 생각을 억지로 끊으라는 뜻이 아니다. 잡다한 생각이 스스로 한계에 이르러 잦아들 때, 분별이 뿌리를 거두는 자리를 가리킨다. 무념은 청정이며 무감각이 아니다. 염이 다해 집착이 멎은 자리, 망념이 사라진 곳에서 밝음이 스스로 드러나는 상태다. 그 자리가 곧 일심의 무념처(無念處)다.

 

이 합작시는 말과 생각의 그물을 거두면, 지금 여기에서 일물(一物)은 스스로 드러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자리가 곧 도(道)의 자리이며, 무념무상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이미 온전히 갖추어진 '지금 여기' 심물합일의 현존이다.(라석)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행 44자로 정착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으로 싯구를 주고받던 옛선비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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