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공주 숙소에서 아침 8시에 일어났다. 지난밤은 몹시 춥고 피곤했다.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까 했는데 조선인들은 은진미륵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 미륵을 본 다음 강경포를 거쳐 용안(오늘날 익산에 속함)로 가기로 한다.
오늘 아침 화장실에 갔다. 마당에 싸릿대가 쳐져 있는 곳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수 없을 정도다. 족히 150명은 되어 보이는 온갖 행색의 구경꾼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말없이 살펴본다. 실로 그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다. 이 사람들은 도무지 사생활과 예절 개념 같은 건 전혀 없는 듯하다. 신이시여, 저들을 도우소서. 최악의 경험이다. 이 끔찍한 땅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은진미륵을 보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미륵(Miryok)의 이마에는 지름 20cm의 황금 명판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수정구가 박혀 있다. 나는 그곳에서 사진 6장을 찍었다.
스님들의 말로는 미륵상은 고구려Kokoryoh)시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모자 부분이 무척 크고 아래쪽에 조각이 잘 되어 있다. 북서쪽 구석에는 떨어져 나간 곳을 커다란 철제 고리로 아주 잘 고쳐 놓았다. 미륵상은 수리한 흔적이 보이지만 양호한 상태다. 그곳에서 인도 글자(산스크리트)는 발견할 수 없었지만, 한문이 쓰여 있는 비석이 있었다. 전양묵이 읽어 준 내용은 이렇다.
고구려 시대에 한 시골 소녀가 언덕에서 뗄 나무를 모으고 있었다. 그때 근처에서 커다란 바위가 솟아 올랐다. 깜짝 놀란 소녀는 관아로 가서 고했다. 관아에서는 조정에 보고했다. 이에 모든 사람이 이 놀라운 일이 무슨 뜻인지 의문을 품었다. 결국 이것은 부처님의 출현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나라에서 이 미륵상을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