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오래전 완주의 산사(山寺)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절 마당 한쪽 텃밭에 머위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봄볕이 완전히 들지 않는 그늘에서도 싱싱하게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여 바라보고 있는데, 머위를 가꾸던 스님이 지나가며 말씀하셨다. "머위는 독이 조금 있지만 그 독으로 몸의 독을 다스리는 풀이야." 당시에는 무심코 들었던 말이었지만, 오랫동안 환자를 진료하고 여러 음식을 살펴보면서 그 말이 자꾸 떠오른다.
봄이 되면 사람들은 나른함과 피로를 호소한다. 충분히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눈이 무겁고, 몸이 붓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몸이 갑자기 활동을 시작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이지만,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피로가 된다.
한의학에서는 봄을 목의 계절이라 하고, 간(肝)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간은 우리가 먹은 음식을 내 몸에 맞은 구조로 바꾸어 영양분을 만들어 주는 공장으로 기운을 펼치고 소통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겨울 동안 쌓였던 노폐물과 기체증이 남아 있으면 간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해 몸이 무겁고 답답해진다. 이때 함께 살펴보아야 할 장부가 비장(脾臟)이다. 비장은 우리 몸의 재활용 공장으로 혈액을 관리하여 혈액을 맑게 한다.
곧 봄이 힘들고, 계절에 무관하게 몸이 무겁고, 힘들고, 만사가 귀찮으며 찌뿌둥하고, 입맛이 떨어지고, 몸과 마음이 예민해졌다면 단순한 체력 부족이 아니라 간과 비장의 균형이 흐트러진 결과인 경우가 많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시기에 쓴맛이 나는 봄나물을 즐겨 먹었다. 머위도 그 가운데 하나다. 머위는 산과 들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식물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그늘에서도 강인하게 살아간다. 이러한 생명력 때문에 민간에서는 머위를 몸의 정체를 풀어주는 식물로 여겼다. 실제로 옛 기록에는 기침, 가래, 천식, 부종 등에 활용되었다는 내용이 보이며, 몸이 붓고 무거울 때 머위를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머위의 쌉싸름한 맛은 단순한 맛이 아니다.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여러 생리활성 물질에서 비롯된다. 현대 연구에서는 머위에 항염증 작용과 관련된 성분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머위를 단순한 나물이 아니라 몸을 깨우고 정체된 것을 움직이는 음식으로 여겼다.
다만 머위에는 피롤리지딘 알칼로이드(PA) 계열의 성분이 소량 존재한다. 이러한 성분 때문에 일부에서는 머위를 독초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이를 안전하게 먹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가열과 우림 과정이다. 머위를 채취한 뒤 끓는 물에 삶고, 찬물에 충분히 우려낸 다음 조리하면 쓴맛과 함께 불필요한 성분도 상당 부분 제거된다. 특히 머위대는 껍질을 벗긴 뒤 삶아서 하루 정도 물에 담가두었다가 나물로 무치거나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맛도 부드럽고 안전성도 높아진다. 이 과정은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온 선조들의 슬기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을 없애기 위해 모두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은 취하고 해로운 것은 줄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나는 머위를 미나리와 함께 봄철 해독을 돕는 대표적인 채소로 꼽는다. 미나리가 물길을 따라 흐르며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면, 머위는 겨울 동안 정체된 것을 흔들어 깨우는 역할을 한다. 하나는 씻어내고, 하나는 움직인다. 두 채소 모두 봄철 몸의 흐름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봄은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6월은 본래 여름이다. 지금도 햇빛이 쨍쨍해서 낮에는 무척 덥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아직 공기는 차가워서 방심하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시점이다. 이럴 때 머위의 이독제독으로 몸을 맑고 깨끗하게 하여 활기를 얻도록 하자.
식탁에 머위나물 무침, 머위대 장아찌, 머위국 뭐든 한 접시를 올려보자. 쌉싸름한 맛 속에 담긴 맑고 청정한 기운으로 몸을 가볍게 깨워보자. 머위는 몸이 스스로 정리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