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삽니다.
손안에는 더 많은 소유를, 머릿속에는 더 다양한 지식을,
마음속에는 더 많은 욕망을 채워 넣어야 비로소 안심되곤 합니다.
그러나 턱끝까지 차오른 소유의 포만감이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하던가요?.
오히려 꽉 찬 방 안에서는 숨을 쉬기 어렵듯,
과잉된 삶은 종종 우리 영혼의 산소를 앗아갑니다.
역설적으로 비어 있기에 가득 찬 찰나의 경지가 있습니다.
한국화의 미덕은 화폭을 가득 채우지 않는 여백에 있습니다.
그 비어 있는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가 아니라,
보는 이의 상상력이 파도치고 바람이 드나드는 유(有)의 공간입니다.
우리 삶도 이와 같습니다.
빽빽한 일정표 사이에 틈을 내고, 움켜쥐었던 손동작을 잠시 멈출 때,
그 빈자리로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본질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소란스러운 소망들을 비워낸 자리에 고요가 들어차는 것,
그것이 바로 충만한 비움의 시작입니다.
조각가가 돌을 깎아내는 것은 무언가를 더하기 위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어 그 안에 숨겨진 형상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삶에서 비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의 시선, 부질없는 집착,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불안을 깎아낼수록
우리는 투명해집니다.
그렇게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남은 단 하나의 핵심,
곧 지금, 이 순간의 현존만이 남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결핍 없는 만족을 경험합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가벼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놓았기에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텅 빈 충만은 결여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해 질 녘 텅 빈 절 마당을 채우는 저녁노을처럼,
혹은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세상을 덮어버린 뒤의 정적처럼 따스하고 밀도 높은 평온이자
더 이상 채울 것이 없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이미 충분하다는 자각입니다.
마음의 방을 비워보세요.
먼지를 털어내고 가구를 치우면,
그곳엔 이내 맑은 햇살과 따뜻한 바람이 찾아와 머물 것입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영혼은 더 웅장한 소리로 공명하게 될 것이니까요.
진정한 풍요는 채움에 있지 않고, 비움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