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빚어낸 고결함

  • 등록 2026.06.08 11:52:32
크게보기

마음의 방을 비우면 맑은 햇살과 따뜻한 바람이 찾아와 머물 것
[정운복의 아침시평 312]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삽니다.

손안에는 더 많은 소유를, 머릿속에는 더 다양한 지식을,

마음속에는 더 많은 욕망을 채워 넣어야 비로소 안심되곤 합니다.

 

그러나 턱끝까지 차오른 소유의 포만감이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하던가요?.

오히려 꽉 찬 방 안에서는 숨을 쉬기 어렵듯,

과잉된 삶은 종종 우리 영혼의 산소를 앗아갑니다.

 

역설적으로 비어 있기에 가득 찬 찰나의 경지가 있습니다.

한국화의 미덕은 화폭을 가득 채우지 않는 여백에 있습니다.

그 비어 있는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가 아니라,

보는 이의 상상력이 파도치고 바람이 드나드는 유(有)의 공간입니다.

 

 

우리 삶도 이와 같습니다.

빽빽한 일정표 사이에 틈을 내고, 움켜쥐었던 손동작을 잠시 멈출 때,

그 빈자리로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본질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소란스러운 소망들을 비워낸 자리에 고요가 들어차는 것,

그것이 바로 충만한 비움의 시작입니다.

 

조각가가 돌을 깎아내는 것은 무언가를 더하기 위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어 그 안에 숨겨진 형상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삶에서 비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의 시선, 부질없는 집착,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불안을 깎아낼수록

우리는 투명해집니다.

 

그렇게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남은 단 하나의 핵심,

곧 지금, 이 순간의 현존만이 남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결핍 없는 만족을 경험합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가벼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놓았기에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텅 빈 충만은 결여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해 질 녘 텅 빈 절 마당을 채우는 저녁노을처럼,

혹은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세상을 덮어버린 뒤의 정적처럼 따스하고 밀도 높은 평온이자

더 이상 채울 것이 없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이미 충분하다는 자각입니다.

 

마음의 방을 비워보세요.

먼지를 털어내고 가구를 치우면,

그곳엔 이내 맑은 햇살과 따뜻한 바람이 찾아와 머물 것입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영혼은 더 웅장한 소리로 공명하게 될 것이니까요.

 

진정한 풍요는 채움에 있지 않고, 비움에 있습니다.

 

정운복 칼럼니스트 jwb11@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 105, 5층-J45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팩스 : 032-441-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편집고문 서한범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