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천재 풍속화가 김홍도, 서민들 삶 그리다

  • 등록 2026.07.13 11: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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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 !> 특별전 열리는 중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김홍도는 조선 후기에 태어나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들을 다양하게 그린 천재화가였다. 그는 현재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서 태어난 화원으로 산수화, 풍속화, 화조화, 불화 등 자신이 살면서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매우 독창적으로 그렸다. 특기 당시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그린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알 수 있으면서도 매우 정겹게 그려서 후대에 남겼다.

 

김홍도의 집안은 그림과는 무관한 양반가로 아버지는 수문장을 지냈다. 그런데 어린시절 김홍도는 근처에 사는 당대 최고 도화원 화가인 강세황을 만나게 된 것이 그림공부를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강세황은 당시 정조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는데, 김홍도에게 왕세손 시절 정조의 어진을 그릴 수 있도록 추천해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어진을 그린 공로로 김홍도는 1773년 장원서의 별제로 임명되었고, 1774년 왕실 소유의 채소재배를 관장하는 사포서에서 종6품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규장각도를 그려서 바쳤고, 1781년(정조5년) 다시 영조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리하여 김홍도는 도화서의 별제로 임명받았다. 

 

김홍도는 정조의 신임을 받아 40살이 되던 1784년 부터 '단원'이라는 호를 썼는대, 이때부터 지방의 관리로도 임명받아 근무하기도 하였고, 또한 화성 용주사의 대웅전에는 서양화기법을 활용하여 당시 불화와는 매우 다른 삼세여래후불탱화를 대웅전의 후불탱화로 그리기도 하였다. 지방의 관직으로 살면서는 관리로서는 잘 하지 못하였는지 백성을 학대한다는 홍대협의 비리 보고에 따라 51살이 되던 해인 1795년 파직된 이후로는 관직과 담을 쌓은채, 오직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더욱 발전시켜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는 많은 그림을 그리고 명성도 높았지만 삶은 고단하였고 건강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평범하게 사는 가운데에도 마음만은 넉넉하게 살았던 조선의 보배같은 화가였다. 

 

그런데 1800년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한 뒤로 김홍도의 활동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자취는 1805년 12월에 쓴 편지 한통만 전해지고 있고 있을 뿐, 이후의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행적이나, 늘 그림속에 살았던 사람이 더 이상의 작품도 전하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그의 마지막 삶은 1805년 또는 1806년 즉 61살 또는 62살까지 조선 어디에선가 살았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처럼 1700년대 말 당시 풍속화로 한국인의 삶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천재화가 김홍도의 진품 풍속화와 다양한 작품들이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전시중이다. 김홍도의 진품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전시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시기간은 2026년 8월 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최우성 기자 cws01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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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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