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학이 필요하다

  • 등록 2026.07.16 11: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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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내한 140돌 학술제, 서울YMCA회관에서 열려
헐버트학, 한글ㆍ어원ㆍ아리랑ㆍ역사 아우르는 통섭학으로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첫 한글전용 교과서 《사민필지》(1891)를 지은 푸른 눈의 한글학자며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박사가 조선 땅을 밟은 지 140돌을 맞았다. 이를 기리는 ‘불후의 민족 은인 헐버트 박사 내한 14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지난 7월 7일 낮 서울 종로 서울YMCA회관 2층 우남 이원철홀에서 열렸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서울YMCA와 사업회가 공동 주관했으며, 국가보훈부ㆍ한글학회ㆍ한문화재단ㆍ한글누리가 후원했다. 대주제는 '헐버트(Homer B. Hulbert)의 한민족 탐구와 독립운동이 후대에 끼친 영향'이었다. 이날 학술대회는 헐버트 한 사람의 업적을 넘어, '헐버트를 어떻게 학문으로 세울 것인가'라는 물음을 우리 앞에 놓았다. 종합토론에서 모두들 “이제 '헐버트학(Hulbert Studies, Hulbertology)'을 세워야 한다”라는 공통 인식을 확인하며 이번 학술제의 의미를 빛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이 워싱턴에서 찾아낸 고종 친서 원본

낮 2시 영화배우로서 2025년에 헐버트 평전 독후감 대회에서 무궁화상을 받고 홍보대사로 활약중인 최미교 배우의 사회로 문을 연 개회식에서는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이 개회사를 했고,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 이종찬 광복회 회장,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 김인복 서울YMCA 이사장이 차례로 축사를 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연주한 이상현의 대금 축하 공연이 분위기를 한층 띄웠다.

 

이날 학술대회의 무게를 더한 것은 김동진 회장이 지난 4월 21일 미국 워싱턴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에서 발굴한 고종 황제 친서 원본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을 저지하기 위해 고종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이 친서는 헐버트가 대미 특사로 직접 전달을 시도했던 바로 그 문서로, 헐버트가 번역한 영문본과 함께 이번 자료집에 공개됐다.

 

김 회장은 기조 강연 '헐버트 박사가 통찰한 한민족 정체성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1886년 스물세 살의 청년 헐버트가 관립 근대학교 육영공원 교사로 조선에 왔지만, 그는 교육자ㆍ한글학자ㆍ언어학자ㆍ언론인ㆍ역사학자ㆍ선교사ㆍ황제의 밀사ㆍ독립운동가로 63년을 한민족과 함께한 진정한 겨레의 스승이자 벗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헐버트가 일찍이 확신했던 한민족의 생존력(viability)과 잠재력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성공과 어떤 인과성을 갖는지에 강연의 초점을 맞췄다.

 

'한국사ㆍ한국어ㆍ독립정신' 세 주제로 헐버트를 재조명

 

이어진 본 발표는 김명구 서울YMCA 이사(월남시민문화연구소 소장)를 좌장으로 세 개의 주제로 진행됐다.

 

 

제1주제는 복기대 인하대학교 교수(고조선연구소장)가 '헐버트의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와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의 《조선사》의 사관(史觀) 비교 고찰'을 발표했다. 헐버트가 영어로 펴낸 《한국사》와 《대한제국의 종말》 등이 영어권에 조선을 알린 대표 저작임을 짚으면서, 같은 시기 일본인 학자의 조선사 서술과 역사관을 견주었다.

 

제2주제는 최용기 국어학자(헐버트학당 부학당장)가 '근대 한국어학자 헐버트의 한국어와 드라비다어 비교 연구 고찰'을 맡았다. 최 발표자는 “그동안 국어학자들이 헐버트 선생의 한글 업적만을 연구해 온 좁은 시야를 비판하고 헐버트의 한국말 어원 연구는 헐버트가 한국어 전반에 걸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라고 역설했다.

 

제3주제는 나손인문학연구실의 설성경 실장(연세대 명예교수, 헐버트학당 학당장)과 최영 연구원(헐버트학당 간사)이 '광통학(光通學)으로 본 헐버트와 젊은 그들: 안중근, 윤동주'를 발표했다. 헐버트의 정신이 안중근 의사의 '무장의거'와 윤동주 시인의 '문학의거'로 이어졌다고 보고, 특히 헐버트가 1925년 미국에서 지은 동화 《마법사 엄지》가 윤동주의 저항시 〈간〉의 핵심 소재가 되었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설 실장은 이를 밝혀내는 방법론으로 헐버트의 정신을 계승한 '광통학'을 제시했다. 두 발표자는 마치 깊이 있는 학술 발표를 공연하듯 발표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헐버트학은 통섭학이자 광통학… 대학 강의로, 기념관으로“

 

발표에 이어 김명구 좌장의 진행으로 종합토론이 열렸다. 서영석 협성대 명예교수,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소요한 감리교신학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필자는 필자의 《한글학》(2024)에서 헐버트를 한글 중시조급의 한글 진흥 공로자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필자는 토론에서 헐버트는 한글학자에서 국어학자로 이제는 융합 통섭학자로 자리매김하고 헐버트학을 "한글과 한국어 어원, 아리랑, 한국 역사 등 여러 분야를 하나로 아우르는 한국학으로서의 통섭학(統攝學)"으로 규정했다.

 

헐버트가 한글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처음 논증하고, 한국어의 계통을 탐구하고, 아리랑을 최초로 오선보에 채보하고, 최초의 종합 역사서를 펴낸 인물인 만큼, 그 업적은 한 분과 학문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는 것에 발표자, 토론자 모두 동의했다. 설성경ㆍ최영 발표자가 제시한 '광통학' 역시 이러한 통섭적 접근의 한 갈래로 헐버트학을 새롭게 조명하는 영어다.

 

김동진 회장도 "헐버트학을 학문으로 세우는 데서 그치지 말고, 대학에서 정식 강의로 이어져야 한다"라며 "헐버트의 삶과 학문, 정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연구하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또한 "흩어져 있는 헐버트의 자료와 업적을 한데 모으고 후대에 전할 헐버트 기념관 건립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

 

헐버트는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고 여러 번 단언했고,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말했다. 1949년 국빈 초청으로 40년 만에 귀환했다가 내한 일주일 만에 서거한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라는 뜻에 따라 서울 합정역 옆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잠들어 있다.

 

올해는 헐버트 박사 내한 140돌일 뿐 아니라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이 겹치는 해다. 나라가 망해가던 시기에도 한민족의 미래를 확신했던 한 이방인을, 이제 우리가 '헐버트학'이라는 학문의 자리로 온전히 모셔야 할 때다. 이번 학술대회가 그 주춧돌을 놓은 자리가 되었다.

 

김슬옹 교수 tomul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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