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4경(四更, 새벽 한 시에서 세 시 사이) 초에 임금이 면복(冕服)을 입고 걸어서 회맹단(會盟壇) 아래에 이르니, 왕세자가 먼저 나아가 맞고 승지(承旨)ㆍ사관(史官)이 좌우로 나뉘어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손을 씻고 신위에 이르러 북향하여 네 번 절을 하고, 단(壇)에 올라 판위에 꿇어앉아 세 번 향(香)을 올린 다음 술을 올리고, 내려와 북향하여 꿇어앉았다. 우승지(右承旨)가 혈반(血盤, 회맹제 때 가축의 피를 받아두던 쟁반)을 받들어 바치니, 임금이 술을 마시고 훈신(勳臣)들이 차례로 피를 마셨다. 축문을 읽은 다음 임금이 네 번 절을 하고, 예가 끝나고 걸어서 돌아왔다.”
위는 《영조실록》 18권, 영조 4년(1728년) 7월 18일 기록으로 회맹제를 했다는 얘기입니다. ‘회맹제(會盟祭)’는 조선 시대에 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왕실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공신 사이 단합을 맹세하던 제사 의식입니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들을 공신으로 임명 뒤, 왕권의 안정과 지배층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내용은 임금과 공신이 "서로 의리를 지키고 왕실에 충성을 다하겠다"라는 맹세를 신명 앞에 고하는 것으로 고대 중국의 회맹 전통에서 유래했습니다.
회맹제는 짐승을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그 피를 나누어 마시거나 바르는 등의 엄숙한 의식을 치렀습니다. 제사가 끝나면 임금이 참여자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리는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주로 왕위 찬탈, 정변, 전쟁 등 왕조의 중대한 변화나 위기 직후에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