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라는 마취에서 깨어나라”

  • 등록 2026.07.20 1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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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선 환경 시집 《탄소중립 너는 알고 있니》
시로 쓴 기후위기 , '자연 예찬'을 넘어 '기후 증언'으로

[우리문화신문=김슬옹 문학박사ㆍ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횡단보도에 선 사람들 / 그림자가 제 몸을 / 따라오지 않는다."

이임선 시인의 새 환경 시집 《탄소중립 너는 알고 있니(고래실)》는 이처럼 낯설고 서늘한 풍경으로 문을 연다. 정오의 폭염 아래 신체와 그림자가 분리되는 이 장면은 온대에서 아열대로 넘어가는 한반도의 기상학적 현실인 동시에, 극한 기후 속에서 인간의 몸과 정신이 풀려서 떨어지는 순간을 암시한다. 시인에게 도시는 더는 인간이 온전한 정신으로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제목이 시사하듯 이 시집은 문학적 감상의 나열이 아니라, 날마다 날씨와 기후변화를 기록한 '일기'이자 '임상 보고서'에 가깝다. 심리상담사이자 치유노래 작사가로 활동해 온 시인은 상처받은 대지를 향해서는 극도로 치유적이면서, 인류를 향해서는 서늘할 만큼 윤리적인 시선을 던진다.

 

 

열병 앓는 도시, 고장 난 계절의 시계

1부 '버려진 얼굴들'에서 자연은 순환하지 않고 정체되고 썩어간다. 생명의 원천이어야 할 햇빛은 「도시 아열대」에서 "독처럼 쏟아진다". 자외선 지수 상승과 오존층 파괴로 자연의 은혜가 위협으로 변질된 단면을, 시인은 도시인의 신체 감각으로 예리하게 포착한다.

 

2부 '붉은 경고'와 3부 '고장난 계절의 시계'에서는 계절의 순환 자체가 무너진다. 「계절의 장례식」에서 시인은 아예 계절의 죽음을 선언한다. "가을꽃은 비에 짓눌려 / 봉오리도 피기 전에 썩어가고", 들판의 벼는 "물기와 열기에 절반만 익은 채" 머리를 떨군다. "여름의 관을 덮지도 / 가을의 문을 열지도 못한 채"라는 구절은 계절의 경계가 무너진 불확실한 경계 상태를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기후위기는 곧 식탁의 위기다. 「쭉정이의 가을」과 「허기진 밥상」은 풍요의 계절이어야 할 가을이 기아와 결핍의 계절로 전락했음을 고발한다. "우리가 심은 것은 곡식이었으나 / 거둔 것은 파괴의 증언이다"라는 구절이 그 인과를 못 박는다.

 

침묵하는 강과 포효하는 비

4부 '추억을 건너는 강'에서 물은 두 얼굴로 나타난다. 「죽어가는 강」의 물은 더 이상 생명의 흐름이 아니라 쓰레기와 오염을 실어 나르는 정지된 액체다. "비닐은 꽃처럼 떠다니고 / 기름은 햇살을 덧칠한다"라는 반어는 인공 쓰레기가 자연을 흉내 내며 점령한 기이한 풍경을 그린다. 「바다거북의 입」에서 시인은 거북의 목소리를 빌려 인간을 직접 겨눈다. "목을 죄는 것은 / 자연이 아니라 / 너희의 편리였다".

 

반대편에서 「물의 분노」와 「그날, 물이 사람을 삼켰다」는 최근 잦아진 극한 호우와 홍수를 다룬다. 여기서 물은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 심판자다. 기후재난이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하는 '기후 불평등'의 구조를 시인은 날카롭게 환기한다.

 

 

중환자실에 누운 지구, 그리고 '비움'의 처방

이 시집의 독창성은 삶의 연륜에서 우러난 임상적 시선에 있다. 시인은 지구를 낭만적인 '어머니'나 '신'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중환자실에 누운 위독한 환자로 대하며 철저한 생태학적 신체성을 밀고 나간다. 표제작 「붉은 경고」에서 고추잠자리의 붉은 날개는 "여름의 노래가 아니라 / 지구의 상처"이자 거대한 경고등이다. "누구의 미래를 태우고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깊은 '생태 슬픔(Ecological Grief)'이 배어 있다.

 

시인은 슬픔에 머물지 않고 처방으로 나아간다. 마지막 5부 '미래와의 약속'에서 그 처방은 기술이 아니라 존재론적ㆍ윤리적 실천으로 제시된다. "우리 모두 불편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 더 적게 소비하고 / 더 천천히 움직이고 / 더 오래 고민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 탄소중립은 허구라는 일갈이다. 「1.5도의 약속」은 "집과 강, 생명을 가르는 경계"라는 수치를 윤리적 명령으로 끌어올리고, 「비움의 미학」에서 "너무 많이 가진 자 / 지구를 먼저 죽인다"라는 선언은 비움을 미덕이 아닌 생존의 명령으로 규정한다.

 

회피를 허용하지 않는 기록

시인은 서문에서 이 시집이 "감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현 상태에 대한 기록"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 책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짜 위안을 건네지 않는다. 썩어가는 가을꽃, 비닐을 삼킨 거북, 독이 된 햇살을 있는 그대로 들이밀며 독자를 깊이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 속에서 한국 생태시가 '자연 예찬'에서 '기후 증언'으로, '추상적 생명 사상'에서 '구체적 데이터 기반의 리얼리즘'으로 이동하고 있음이 선명해진다. 기후회복실천문화원 이사로서 시대의 소명을 문학의 언어로 옮긴 이 시집은, 한 시인의 개인적 고백을 넘어 우리 공동체가 생존을 위해 함께 서명해야 할 엄숙한 '연대보증서'에 가깝다. 기후 붕괴가 가속화되는 지금, 이 책은 문학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ㆍ생태적 책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뜨겁고 선명한 증언이다.

 

김슬옹 문학박사ㆍ세종국어문화원 원장 tomul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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