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사(月明師)와 경덕왕(景德王)

  • 등록 2026.08.07 10: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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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와 차향으로 나라를 깨우다
[라석의 차와 시서화] 24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신라 차문화는 산중의 수행에서만 꽃핀 것이 아니었다. 왕궁에도 차향이 스며 있었고, 불전에도 차연이 올랐으며, 향가의 선율 속에도 차 한 잔의 맑은 정신이 흐르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경덕왕(景德王)과 월명사(月明師)가 있다.

 

경덕왕은 신라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성숙한 시대를 이끈 군주였다. 황룡사 구층목탑이 나라를 상징하고, 불교예술과 향가가 절정에 이르렀으며, 왕실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예(禮)와 공양, 그리고 덕을 나누는 문화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삼국유사》 월명사의 도솔가 (月明師兜率歌)에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 전한다. 경덕왕은 월명사의 향가를 듣고 크게 감동하여 '품다(品茶) 일습(一襲)'을 내렸다고 하였다. '품다'는 문자 그대로는 차를 음미한다는 뜻이며, '일습'은 한 벌의 의복이나 예물을 가리킨다. 학자들 사이에는 차와 다구를 함께 하사한 것으로 보는 견해와 차를 마시는 예를 베풀었다는 해석이 함께 존재한다.

 

어느 해석을 따르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있다. 임금이 차를 으뜸 예물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는 신라 왕실에서 차가 이미 정신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월명사는 승려이면서도 뛰어난 시인이었다. 「도솔가」는 미륵세계를 향한 간절한 서원이었고, 「제망매가」는 죽음을 생명의 연속으로 승화시킨 불후의 명편이었다. 그는 차를 달이며 수행하였고, 시를 지으며 백성을 위로하였다. 차와 향가는 모두 마음을 맑게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 준 인물이었다.

 

차는 입으로 마시지만, 향가는 마음으로 마신다. 향이 코를 적시듯, 노래는 영혼을 적신다. 월명사는 이 두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그의 차는 향기로 수행을 돕고, 그의 시는 울림으로 중생을 깨웠다.

 

심물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차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찻잎은 물(物)이지만, 그것을 달이는 정성은 심(心)이며, 함께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동은 심물이 서로 감응하는 문명의 현상이다. 월명사는 바로 그 감응의 예술가였다.

 

경덕왕 또한 단순한 애다인(愛茶人)이 아니었다. 그는 충담사가 달여 올린 차의 향기를 알아보았고, 월명사의 노래가 지닌 정신적 깊이를 알아보았다. 좋은 차를 알아보는 안목은 곧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었다. 차를 귀히 여긴 것은 잎을 귀히 여긴 것이 아니라, 그 차를 달이는 사람의 마음을 귀히 여긴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차를 건강식품으로 소비하고, 커피와 음료를 기호품으로 선택한다. 그러나 신라인에게 차는 마음을 씻는 수행이었고, 사람을 공경하는 예법이었으며, 하늘과 인간을 잇는 공양이었다.

 

월명사의 향가가 천년을 넘어 오늘까지 전해지는 것은, 노래만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 노래가 차 한 잔처럼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기 때문이다.

 

경덕왕과 월명사는 임금과 승려라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차문화를 꽃피웠다. 한 사람은 나라를 다스렸고, 한 사람은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남긴 것은 권력이 아니라 문화였고, 제도가 아니라 향기였다.

 

신라의 차는 이렇게 왕궁에서 백성에게, 절에서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차향은 향가가 되었고, 향가는 다시 민족의 정신이 되었다. 신라의 절은 산중에만 있지 않고 서라벌의 도시 속에도 즐비하였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차문화의 일상적 풍속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한다. (2026.8.3. 불한산방에서 라석)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

 

 

손병철 박사/시인 lasoks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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