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포크는 1884년 11월 1일부터 44일 동안 조선 남부지역을 여행했다. 한 달 반가량의 일정 가운데 가장 성대하고 화려한 행사가 전주 감영 선화당에서 펼쳐졌다.
포크는 선화당으로 이동하여 감사를 만나고 자기를 위해 벌이는 연회를 놀란 눈으로 감상ㆍ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다. 기록은 다음 날 새벽 3시 너머까지 이루어진다.
다음은 기록의 일부다.
내가 앉아 있는 방의 문이 열린다. 웅장한 감영의 큰 대청이 눈앞에 펼쳐진다.
툇마루에는 키 큰 여섯 명의 악대가 앉아 있다.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잠시 뒤, 나이 든 여성 두 명이 앞쪽에서 들어온다.
머리에 커다란 머리 장식을 올렸고, 옷차림은 화려하다.
그 가운데 한 명은 두 개의 나무 패들을 손에 쥐고 박자를 맞추며 걸어온다.
뒤를 이어 네 명의 화려하게 치장한 젊은 기녀들이 천천히 행렬을 이루며 등장한다.
머리에는 높이 약 10인치, 폭은 18인치나 되는 거대한 장식이 치켜들려 져 있다.
그 무게에 고개를 곧게 유지하기조차 어려워 보인다.
기녀들 가운데 두 명은 녹색 치마를, 한 명은 짙은 청색, 다른 한 명은 옅은 청색의 치마를 입고 있다. 치마는 길고 풍성하며 뒤로 길게 끌린다. 치마 위쪽은 겨드랑이 바로 아래에 단단히 묶여 있다. 그 위에는 노란 비단 저고리를 걸쳤다. 소매는 붉은색ㆍ파란색ㆍ초록색ㆍ노란색ㆍ흰색의 넓은 띠가 곧게 이어진 형태이다. 저고리 위에는 굵은 붉은색 띠를 둘러 몸을 단단히 조여 묶고 있다.
젊은 기녀들은 팔을 곧게 뻗은 채로 미끄러지듯 느리게 회전하며 춤을 시작한다. 방 한가운데에는 노란색ㆍ파란색ㆍ흰색 비단 조각으로 장식된 큰 북이 놓여 있다. 기녀들은 때로는 일렬로, 때로는 둘씩 짝을 지어 서로 마주 보거나 등을 맞대고, 혹은 네모진 형태를 이루며 북 주위를 돈다.
바닥에는 붉은 술이 달린 북채 네 쌍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얼마쯤 뒤 기녀들은 그 앞에 줄을 맞춰 서서 천천히 팔을 뻗고 몸을 틀어 북채를 집어 든다. 이후 다시 북 주위로 모여들어 느린 동작을 유지한 채 움직이며, 때때로 북을 함께 두드린다.
춤은 처음부터 끝까지 느리고 미끄러지듯 이어졌고, 약 30분 이상 계속되었다.
내가 감사와 함께 앉아 있는 방에서 기녀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술잔을 내밀며 권주가를 부른다.
옛 제왕은 아침 이슬을 모아 마시고
장수를 누렸다오.
이것은 술이 아니라 감로수라오
마음껏 마시고 오래 사시기를.
포크는 이 모든 장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문명국가의 젊은 외교관인 자신이, 화려한 의복을 입은 이국의 지방 수령과 나란히 앉아 있고, 그 주변에는 화려한 복장의 무사들, 기녀들,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장식들이 가득했다.
책에나 있을 법한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압도되었다.
감사는 그에게 “나는 쉰 살이지만 바깥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당신은 스물여덟인데 내가 오히려 아이요, 제자다. 나는 많은 사람을 거느린 고위 관리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솔직히 토로한다. 포크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는다.
식사 중에도 기녀들은 술을 따르며 간간이 노래를 불렀고, 한쪽에는 감영의 많은 관리들이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기생 한 명이 툇마루로 나가 날카롭고 길게 “다 잡수었소!”라고 외쳤고, 다른 기녀들이 뒤따라 외쳤다. 그 외침은 감영 아래까지 남자들의 합창으로 이어졌다. 포크는 연회의 분위기가 중국에서 본 어떤 행사보다 훨씬 고상하고 장엄했다고 평가한다. 포크에게 그것은 위압적이고 장엄하며, 전제적 권위가 주는 경외감을 극대화하는 진기한 광경이었다.
그는 여행기에 “눈이 너무 아프다. 11월 12일 새벽 3시. 더는 쓸 수 없다.”라고 적으며 마무리한다.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