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렴(金大廉)과 흥덕왕(興德王)

  • 등록 2026.08.14 12: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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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차씨를 심어 천년의 차밭을 열다
[라석의 차와 시서화] 25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신라 차문화는 충담사의 차공양으로 향기를 얻었고, 월명사의 향가로 정신을 얻었다. 그러나 그 향기와 정신을 천년의 차밭으로 키운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김대렴과 흥덕왕이다. 한 사람은 당나라에서 차씨를 가져왔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나라의 땅에 심게 하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한 알의 씨앗을 심은 일을 넘어, 한국 차문화사의 새로운 문명을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흥덕왕조에는 짧지만 매우 중요한 기록이 전한다.

 

“흥덕왕 3년(828)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씨를 가지고 돌아오니, 임금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왕 때부터 있었으나, 이때 이르러 크게 성행하였다.”

불과 몇 구절에 지나지 않지만, 이 기록은 한국 차문화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바다를 건너온 작은 차씨가 임금의 뜻을 만나 지리산에 심어지고, 마침내 천년을 이어 갈 차문화의 뿌리가 되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은 김대렴을 우리나라에 차를 처음 들여온 인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료는 분명히 “차는 선덕왕 때부터 있었다”라고 기록한다. 김대렴 이전에도 신라에는 차가 알려져 있었으며, 왕실이나 절을 중심으로 음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김대렴의 공적은 차를 처음 전래한 데 있다기 보다, 당나라에서 차씨를 가져와 국가 차원의 재배가 이루어지도록 한 데서 찾아야 한다.

 

그는 단순히 외국의 물품을 가지고 돌아온 사신이 아니었다. 새로운 품종과 재배문화를 옮겨 온 문명의 전달자였으며, 한 알의 씨앗에서 한 나라의 미래를 내다본 문화 사절이었다. 흥덕왕 또한 진귀한 외래 물품을 왕실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생명을 지닌 씨앗으로 땅에 심도록 하였다. 김대렴이 문명의 씨앗을 가져왔다면, 흥덕왕은 그것이 이 땅에 뿌리 내리도록 한 군주였다.

 

왜 하필 지리산이었을까.

멀리 남해의 따뜻한 기운을 받아들인 지리산은 봉우리마다 구름과 안개가 머물고, 깊은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끊이지 않는다. 겨울 추위는 차나무가 견딜 만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이 뜨거운 볕을 가려 준다. 산비탈의 돌과 자갈이 섞인 흙은 물을 머금으면서도 고이게 하지 않아 차나무가 뿌리를 내리기에 알맞았다.

 

섬진강 물길을 따라 지리산 남쪽으로 들어가면 화개동천이 열리고, 골짜기 깊숙한 곳에는 쌍계사가 있다. 봄이면 십리벚꽃길이 화사하게 피어나지만, 벚꽃이 지고 난 뒤의 산빛을 오래 지키는 것은 차나무의 푸른 잎이다. 대숲과 계곡 사이, 돌담 아래와 산비탈에 뿌리 내린 차나무들은 가지런한 평지의 차밭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풍경을 이룬다. 이른 봄 안개가 걷히면 어린 찻잎에 맺힌 이슬이 햇빛을 받아 작은 구슬처럼 빛난다.

 

쌍계사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새벽 범종 소리가 겹칠 때,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산사의 호흡이 된다. 스님은 맑은 물을 길어 차를 달이고, 피어오르는 차향은 법당의 향 연기와 어우러져 고요한 골짜기를 채운다. 한 잔의 차는 잠을 물리치는 수행의 벗이 되고, 부처님께 올리는 정성스러운 공양이 되며, 산문을 찾아온 길손의 지친 마음을 씻어 주는 따뜻한 인사가 된다.

 

 

지리산의 서쪽 기슭에는 화엄사가 있다. 노고단과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산기운을 품은 화엄사에서는 계곡물과 숲바람, 돌계단과 오래된 전각이 서로 깊은 고요를 이룬다. 각황전의 장엄한 지붕 아래 서면 한 건물 속에 수많은 세월이 포개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봄날 산사의 차 한 잔에도 이와 같은 화엄의 이치가 깃들어 있다. 햇빛과 구름, 흙과 물, 차를 기른 사람과 차를 달이는 사람의 정성이 한 찻잔 안에서 서로 만난다.

 

쌍계사가 섬진강과 화개골의 차향을 품은 산문이라면, 화엄사는 지리산 서쪽의 깊은 수행과 장엄한 화엄세계를 간직한 도량이다. 두 절은 지리산의 동서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리 잡았지만, 차와 수행과 자연을 하나로 잇는 정신에서는 서로 통한다. 산은 다르지 않고 물길 또한 마침내 이어지듯, 차 한 잔의 맑은 마음도 절과 마을, 수행자와 백성의 경계를 넘어 흘러갔다.

 

차씨는 흙을 만나야 싹을 틔운다. 그러나 문화의 씨앗은 사람을 만나야 꽃을 피운다. 김대렴이 가져온 것은 작은 차씨였지만, 흥덕왕이 지리산에 심게 한 것은 하나의 차문화였다. 씨앗은 지리산의 흙과 물을 만나 뿌리를 내렸고, 절의 수행전통과 백성의 생활을 만나 이 땅만의 차로 자라났다. 중국에서 건너온 차씨가 그대로 중국의 차로 머문 것이 아니라, 신라의 산천과 사람의 마음을 받아 한국의 차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처음에는 왕실과 절에서 귀하게 쓰였을 차가 점차 지리산 자락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스님들은 새벽마다 차를 달여 부처님께 올리고, 참선하는 선객들은 맑은 차로 마음을 깨웠다. 마을 사람들은 찻잎을 따고 덖으며 산이 내준 향기를 생활의 지혜로 바꾸었다. 차는 귀한 기호품에 머물지 않고 공양과 수행, 접대와 나눔을 잇는 생명의 음료가 되었다.

 

어린 찻잎을 따는 손길에는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불이 너무 세면 잎이 타고, 너무 약하면 풋내가 남는다. 손으로 비비고 덖어 향기를 일으키는 과정에는 서두르지 않는 기다림과 세심한 정성이 따른다. 차 한 잔에는 산천의 기후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노동이 함께 들어 있다. 자연이 잎을 내주고 사람이 그 이치를 따라 완성한다는 점에서, 차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빚은 심물합일의 결정이다.

 

심물철학으로 바라보면 차씨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씨앗은 물(物)이지만, 그 씨앗을 구하고 가져와 심으려는 뜻은 심(心)이다. 땅과 물과 햇빛도 물이지만, 그것을 가꾸고 나누며 문화로 승화시키는 것은 마음이다. 씨앗 하나가 천년의 차밭을 이루듯, 한 사람의 뜻은 천년의 문명을 열 수 있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숲을 이룰 수는 없다. 아무리 큰 뜻도 씨앗과 흙, 물과 햇빛을 만나지 못하면 현실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좋은 씨앗과 비옥한 땅이 있어도 그것을 알아보고 가꾸는 마음이 없으면 황무지에 묻히고 만다. 심이 물을 만나 생명을 낳고, 생명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 문화가 되며, 문화는 세대를 건너 역사를 만든다. 김대렴과 흥덕왕의 차씨는 바로 이러한 심물상생의 이치를 보여 준다.

 

김대렴이 차씨를 가져온 행위는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도 일깨운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남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일이 아니다. 좋은 씨앗을 골라 자기 땅에 심고, 그 땅의 기후와 사람의 생활에 맞게 길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일이다. 차씨는 당나라에서 왔지만, 지리산의 비와 안개를 마셨고, 신라인의 손길과 정신을 만나 우리 차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도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비롯한 새로운 문물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기술을 들여오는 것만으로 새로운 문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우리 삶의 토양에 어떻게 심을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가꾸고 누구를 위하여 사용할 것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기술이라는 씨앗이 탐욕과 경쟁의 땅에 심기면 지배의 도구가 되지만, 생명과 공공의 마음에 심기면 사람을 살리는 문명이 될 수 있다.

 

김대렴이 가져온 차씨는 신라의 흙에서 한국의 차가 되었고, 한국의 차는 이제 세계인에게 우리의 자연과 정신을 전하는 문화의 향기가 되었다. 흥덕왕은 지리산에 차나무를 심게 하였지만, 더 깊이 보면 백성의 생활 속에 한 그루의 정신을 심고 있었던 것이다. 차나무의 뿌리는 흙 속으로 내렸으나, 그 문화의 뿌리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뻗어 갔다.

 

오늘날 화개와 하동의 오래된 차밭을 거닐다 보면 천여 년 전 김대렴이 가져온 씨앗의 기억이 잎새마다 살아 있는 듯하다. 섬진강에서 피어난 물안개가 산비탈을 감싸고, 쌍계사의 아침 종소리가 골짜기를 건너면 차밭의 어린잎들이 바람을 따라 가만히 몸을 흔든다. 지리산 서쪽 화엄사의 저녁노을 아래에서는 차향 한 줄기가 천년의 적막을 깨우며 오래된 전각 사이로 번진다.

 

그 잎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바다를 건넌 한 사신의 뜻과 그것을 알아본 한 군주의 결단, 차밭을 일군 백성의 손길과 차로 마음을 닦은 수행자의 정신이 함께 살아 있는 문명의 기억이다. 차는 한 알의 씨앗에서 시작되지만 차문화는 사람의 마음에서 완성된다. 김대렴과 흥덕왕은 씨앗과 뜻,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이 서로 만나 천년의 문명을 이룰 수 있음을 몸소 보여 준 신라의 위대한 차인이었다.

(2026.8.13. 불한산방에서 라석)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

 

 

손병철 박사/시인 lasoks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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