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학수사 지침서 《무원록(無冤錄)》

  • 등록 2026.08.14 08: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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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7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무원록언해(無冤錄諺解)》를 펴냈다. 이보다 앞서 상이 《무원록》이란 책은 사형에 관한 옥사를 판결하기 위한 것인데 본문이 까다로워 누구나 쉽게 알기 어렵다고 하여, 능은군(綾恩君) 구윤명(具允明)에게 언해를 짓도록 명하였다. 이때 와서 책이 완성되자 형조에 명해 간행하여 안팎에 널리 퍼뜨리도록 하였다.” 이는 《정조실록》 32권, 정조 15년(1791년) 3월 15일 내용으로 《무원록언해(無冤錄諺解)》를 펴내도록 했다는 기록입니다.

 

 

원래 《무원록(無冤錄)》은 '죽은 사람에게 원통함(冤)이 남지 않도록 하라'는 뜻을 담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과학 수사 및 법의학 지침서입니다. 본래 중국 원나라의 왕여가 1308년에 펴낸 책이었습니다. 먼저 세종은 최치운 등에게 명하여 원나라의 원본에 주석을 붙이고 내용을 증보하여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펴냈는데 1442년부터 조선의 모든 법률적 검시는 이 책의 규정을 따르도록 법제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증보하여 영조 24년 (1748년)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을 펴냈고, 정조 때에 한문을 모르는 지방의 하급 관리도 쉽게 읽고 수사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글로 토를 달고 뒤쳐 《무원록언해》를 펴낸 것이지요.

 

《무원록》에 있는 내용을 보면 시체의 입안에 은비녀를 넣거나, 밥을 입에 넣었다가 꺼내어 닭에게 먹여 반응을 살핀 독살 여부 판별, 살아있는 상태에서 물에 빠진 사람은 숨을 쉼으로 기도와 손톱 사이에 흙이나 모래가 남아 있지만, 죽은 뒤 던져진 시체는 깨끗하다는 점으로 익사 감별,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경우와 다른 이가 목을 조른 뒤 죽인 경우 목에 남는 밧줄 자국과 색을 견주는 타살과 자살의 구분, 주검을 향나무나 초를 끓인 물로 깨끗이 닦아내어 숨겨진 타박상이나 상처 부위를 명확히 드러나게 한 은폐된 상처확인법이 있습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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