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 잘못을 뉘우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은 책이 있다면 어떨까요. 놀랍게도 그런 책이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땅을 짓밟은 일본인들이 손수 쓴, 90명의 회고 90편을 모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역(逆)징비록》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징비록에서 ‘역징비록’으로
임진왜란의 참화를 겪은 서애 유성룡은 《징비록(懲毖錄)》을 남겼습니다. ‘징비(懲毖)’란 《시경》의 “미리 징계하여 훗날의 근심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온 말입니다. 곧 자기 잘못까지 뼈에 새겨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말자”라고 다짐한 반성의 기록이지요.
그런데 여기, 정반대의 책이 있습니다. 침략한 쪽이, 반성은커녕 “우리가 조선을 잘 다스렸다”라며 스스로 칭찬한 책입니다. 반성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자화자찬이 들어선 셈이니, 저는 이 책을 뒤집힌 징비록, 곧 ‘역징비록’이라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유성룡의 징비록만큼이나 뼈아프게 읽어야 할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조선 통치의 회고와 비판》은 우리가 지은 책이 아니라 옮긴 책입니다. 원본은 1936년, 조선총독부 무렵의 인사들이 ‘조선 통치 25주년’을 기념해 펴낸 일본어 책입니다. 조선신문에 실렸던 일본인 90명의 글 90편을 한데 모았습니다.
글쓴이들의 이력을 보면 이 책의 성격이 한눈에 드러납니다. 통감ㆍ총독ㆍ정무총감ㆍ경무국장ㆍ도지사ㆍ고등법원장ㆍ조선은행 총재ㆍ대기업 사장ㆍ제국의회 의원…. 하나같이 식민 통치의 최고위 실무자들입니다. 심지어 값을 싸게 매겨 널리 읽히려고 8포인트짜리 아주 작은 활자로 빽빽하게 찍었습니다. 통치의 정당함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려는 홍보용 책이었던 것이지요.
책을 펼치면 — 회고만 있고 반성은 없다
90편을 아무리 넘겨도 침략을 사죄하는 문장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대신 일본과 조선을 한 몸으로 묶는 ‘내선(內鮮)’, 천황이 일본인과 조선인을 똑같이 사랑한다는 ‘일시동인(一視同仁)’ 같은 말이 수백 번 되풀이됩니다. 하지만 제암리 학살도, 3·1운동을 짓밟은 진실도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저들 입맛에 맞는 과거만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느 전직 경상남도지사는 조선에서 보낸 25년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돌아보면 조선에서 보낸 20여 년은 마치 꿈과 같다. …
— 55. 꿈과 같은 조선에서의 25여 년 / 스도 스나오(須藤素), 전 경상남도지사
침략의 세월이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꿈’이었습니다. 마치 자기최면에 걸린 사람들 같습니다. 그 꿈은 원자폭탄이 떨어지고서야 비로소 멈추었습니다.
때로는 교과서가 한 줄로 스쳐 지나간 장면의 뒷이야기가 소름 끼치도록 자세히 나옵니다. 1909년, 이재명 의사가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려다 실패한 사건을 우리는 “이완용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라고만 배웁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 이완용을 살려낸 일본인 명의(名醫)의 회고담이 실려 있습니다. 그는 이완용의 가슴에 침을 놓아 피와 물을 빼내 목숨을 구했다며, 한국 정부에서 훈장까지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우리에게 이재명은 독립투사지만, 그의 글에서는 한낱 ‘자객’일 뿐입니다. 같은 사건을 이렇게 정반대로 기록한 문장 앞에서, 우리는 역사가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읽어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책은 1995년 일본에서 영인본으로 다시 나왔는데, 그 편집 책임자조차 “이 책에는 반성과 참회가 없다”라고 인정하면서도 “근대사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결코 버려서는 안 될 자료”라고 못 박았습니다. 잘못된 본보기이기에 오히려 교훈이 된다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에 ‘역징비록’의 참뜻이 있습니다. 일본은 이런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런 피해를 두 번 당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거짓과 왜곡의 역사도 엄연한 역사입니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들의 자화자찬 속에 감춰진, 때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실과 진실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광복 81돌, 이 책을 다시 펴는 까닭
광복절은 기쁨의 날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 어디에서 왔는지 되묻지 않는다면, 광복의 의미는 이내 흐려지고 맙니다. 저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침략을 ‘통치’라 부르고, 수탈을 ‘개발’이라 부르며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는지를 오늘 우리가 두 눈으로 똑바로 보는 일 — 그것이야말로 광복의 의미를 오늘의 것으로 되살리는 길이라 믿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옮기는 일은 고통스러운 번역이었습니다. 읽을수록 피가 솟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이 뼈아픈 기록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징비록이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 책 인세의 일부는 독립운동의 뜻을 잇는 시민단체 〈시민모임 독립〉(이사장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에 기부됩니다.
광복 여든한 돌, 해방의 함성이 잦아든 자리에서 저는 오히려 이 침략자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뼈아프지만, 그래서 더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