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월하 여사의 손녀, ‘김윤서가 들려주는 할머니, 월하 명인의 이야기<1>’을 소개하면서 할머니는 근면한 생활태도와 선(善)한 심성(心性)의 소유자였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할머니는 잘못했을 때, 특히 늦게 귀가할 때,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하며 평생, 근검절약을 일상에서 실천해 오신 경험담도 일부 소개하였다.
이번 주 이야기도 글쓴이가 묻고, 명인의 손녀, 김윤서가 당시 경험을 소개하는 형식의 월하 명인 이야기 <2>를 진행한다,
- 월하 선생의 근검절약은 널리 알려진 미담이다. 관련하여 일상에서 경험한 실례가 생각난다면?
“휴지 한 장, 빈 상자도 재활용하셨고, 버릴 물도 여러 번 거치고 거쳐서 쓰신 다음, 마지막으로 버리시고, 휴지를 써도 일일(一日) 달력을 뜯어서 부드럽게 만들어 쓰셨지요. 흔히,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몸이 불편하다’거나 특히 ‘다리가 아프고, 피곤한’ 자기를 위해서 택시를 타시는 경우가 있지 않겠어요? 또는 좋은 옷을 사서 입거나, 맛있는 비싼 음식도 드시고 싶지 않겠어요?. 월하 선생님, 아니 우리 할머니는 이런 것들이 일체 허락되고 용납되지 않으셨다니까요.”
손녀 김윤서의 경험담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자 한 분이, 비싼 과일을 사 왔는데, 이걸 다시 돌려보내서 필요한 생필품으로 바꾸게 하셨다니까요. 집에서 가끔 과일을 사드실 때도 있지만, 절대로 비싸고 좋은 과일이 아닌, 흠 있는 과일을 싸게 사서 먹었어요. 이웃에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비단, 월하 여사만이 지닌 생활 습관이라기보다는, 과거 어려운 시대를 힘들게 살아온, 나이 드신 어른들의 공통적인 생활태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윤서가 기억하는 월하 여사의 절약정신은 남달랐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할머니는 남달리 절약하고 저축하는 일이 생활화 되신 분이셨어요. 가령, 10원이 생기면 100원이 될 때까지 모으시고, 또 백 원이 모이면 다시 천원을 만들어 은행에 가셨어요. 집 앞에, 단골 은행이 있었는데, 그곳에 날마다 가셔서 VIP고객이 되셨고, <저축왕 상>도 받으셨다는 소문은 방송 뉴스에도 나왔어요.”
월하 여사의 일상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그의 절약 정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둘이 아니어서 일일이 소개하는 자체가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일상이었다. 글쓴이에게도 70년대 초로 기억되는 선생과의 경험담 하나가 잊히지 않아 여기에 소개한다.
당시, <국립국악원>이 장충동(현, 국립극장 자리)에 있을 때, 월하 여사는 그곳에서 정가를 가르치고 계셨는데, 어느 날, 급히 걸어 나가시는 모습이 시간에 쫓기는 듯 보여, 나는 “선생님, 바쁘신 모양인데, 택시를 잡아 드릴까요?” 했더니, (이미 손안에 준비해 둔 버스 토큰 하나를 보여주시면서) “아, 이거 하나면 000 그 앞까지 가고도 남는데, 택시는 왜 타누? 바쁜 분들이나 타는 차를.” 나는 할 말을 잊었던 경험이 있다.
- 그렇게 절약하고, 저축해서 구두쇠 소리도 들으셨지만, 명분 있는 일에는 아낌없이 나누셨다고 알려지지 않았는가?
“네, 그랬어요. 소년 소녀 가장들의 지원이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원불교와 인연이 되어 집 뒤쪽에 종로 교당을 매주 나가셨는데, 원불교 성지 순례를 가 보시고, 기도원을 지으라고 선뜻 큰 금액을 희사하셨다고도 합니다. 또 있어요. 할머니가 그렇게 평생 모으신 돈으로 <월하문화재단>을 설립하신 것은 다 아실 거예요. 무엇보다도 국악계의 발전을 위해, 국악인들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특히 ‘정가(正歌)의 올바른 전승’을 위해, 할머니의 피와 땀, 헌신으로 모은, 전 재산을 뜻깊은 일에 쓰라고 세우신, 그 재단 말이에요.”
가객, 김윤서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면서, 또한 빨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이 소식들은 신문 방송들이 앞다투어 소개했는데, 그 일부 제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정가에 평생 바친 74세의 황진이, ‘영혼의 소리’로 토해내는 유창한 가락” - 경향신문
“ 시가 7억 원 국악 위해 내놔, 바느질, 공연 수입으로 모은 재산, 사재 털어 문화재단 설립” - 조선일보
“인간문화재 시조창 김월하 씨, 후진양성 50억 희사” - 동아일보
“김월하씨, 죽을 목숨, 국악으로 다시 살았어요. 월하문화재단 설립한 여성가곡 인간문화재 장학사업, 문화상 제정계획” - 여성신문
“평생 모은 전 재산, 후학위해 내놓아, 바느질삯, 강사료 아껴 수십억 원 전 재산, 국악전문학교 설립위해 <월하문화재단>에” - 한국써비스신문
실로, 거액의 희사금을 국악계에, 그리고 후학들을 위해 내놓은, 월하 김덕순 선생의 통 큰 결단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