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4. 디즈니 10년 계약과 ‘주의력의 경제‘
그래미를 둘러싼 변화는 상징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래미는 2027년부터 새로운 미디어 시대를 맞는다. 레코딩 아카데미와 디즈니의 10년 글로벌 계약에 따라 그래미 시상식은 2027년부터 ABC를 비롯해 Disney+와 Hulu를 통해 방송ㆍ스트리밍될 예정이다. 이 계약은 2036년까지 이어지는 장기적 미디어 협력이다.
이것은 단순히 텔레비전 채널이 바뀌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 시상식의 값어치는 상패와 방송 시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청률, 스트리밍 가입, 검색량, 소셜미디어 대화, 짧은 영상의 확산, 세계 팬덤의 실시간 참여가 모두 하나의 문화적 자산이 된다.
따라서 BTS의 불참과 관련하여 확인되지 않은 거액의 위약금이나 특정 손실액을 성급히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 수치는 공식적 계약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 손실의 의미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오늘날 문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의 주의력과 감응의 집중이다.
BTS와 ARMY가 만들어 온 실시간 검색, 공유와 번역, 스트리밍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숫자로만 환산하기 어려운 거대한 네트워크 자산이다. 심물철학의 언어로 말하면 이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다. 수많은 마음이 디지털 승강장(플랫폼)이라는 그물을 통하여 서로 연결되고, 그 연결이 다시 경제와 산업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의 감응이 물적 값어치로 변환되고, 물적 구조가 다시 마음의 흐름을 조직하는 시대. 이것이 오늘날 문화산업의 심물적 구조이다. 제69회 그래미상부터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를 도입한다고 발표한 것과 BTS의 조용한 거부는 그래미에 어떤 경제적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5. ARMY ― 소비자를 넘어선 분산된 문화주권
오늘날 팬덤을 단순한 소비자 집단으로 보는 것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현대의 팬은 음반을 사고 공연을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번역하고 기록한다. 해석하고 공유한다. 새로운 영상을 만든다. 기부와 공익활동을 조직한다.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제도에는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현한다.
제도가 기록하지 않는 기억을 팬덤이 기록하고, 중심 언론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내용을 세계 각국의 팬들이 자신의 언어로 번역한다. 이러한 팬덤현상은 소비자가 아니라 하나의 분산된 새로운 문화주권에 가깝다. 세계의 누구나 스스로 문화주권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그 주체가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경계도 필요하다. 팬덤이 크다고 해서 예술적 값어치의 모든 기준을 독점할 수는 없다. 팬의 열정이 가수의 양심과 판단을 대신해서도 안 된다. 가수는 팬을 소유할 수 없다. 팬 역시 가수의 자유로운 판단을 소유할 수 없다. 서로 상생하는 공동체적 존재 관계일 뿐, 소유관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팬덤문화의 핵심은 ‘더 많은 권력‘이 아니라 더 성숙한 쌍방향성에 있다. 가수는 팬의 헌신에 응답하고, 팬은 창작자의 독립성을 존중하며, 제도는 이 둘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시대의 목소리를 듣는 구조. 이것이 소비자 민주주의를 넘어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화적 공명의 질서이다.
6. 군복무 뒤의 귀환이 증명한 신뢰의 시간
BTS의 선택이 더욱 큰 상징성을 갖는 이유는 그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적 공백을 견딘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멤버들은 각자의 병역 의무를 이행했고, 2025년 6월을 기준으로 일곱 명 모두 복무를 마쳤다. 세계 정상의 인기를 예외의 근거로 삼지 않고 4년 동안의 공백을 감수한 시간이었다. 문화산업의 논리만으로 보면 위험한 선택일 수 있었다.
그러나 공백은 반드시 소멸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귀 이후 BTS를 향한 세계의 기대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보여 주었다. 문화적 영향력은 끊임없는 노출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신뢰와 기억, 관계의 깊이도 하나의 문화적 자산임을 보여 준 것이다.
BTS의 귀환과 새 활동은 서울을 유일한 출발점으로, 미국을 유일한 중심으로 설정하는 구조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연결되고 있다. 서울, 런던, 파리, 뉴욕, 멕시코시티, 마닐라의 팬들은 더 이상 하나의 중심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문화를 전달받는 주변이 아니다.
각 지역은 자신만의 언어와 해석을 통하여 새로운 감응의 중심이 된다. 이것이 탈중심적 세계화이다. 패권 시대와는 달리 중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탈중심은 중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중심이 서로 연결되는 심물 네트워크의 시대를 뜻한다.
7. MTV와 다른 시상식이 보여 주는 다원적 권위
세계 음악의 권위는 하나의 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2025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한국인 로제와 미국인 브루노 마스의 「APT.」가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상을 받은 것은 K팝과 세계 팝의 경계가 실제 음악시장과 대중문화 속에서 얼마나 복잡하게 섞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러한 사례가 곧 MTV가 그래미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미의 음악 전문가 중심의 평가와 MTV의 대중 참여 중심의 평가 방식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문제는 어느 하나가 세계 음악의 모든 값어치를 독점하려 할 때 일어난다. 탈중심 시대에 역행하는 질서는 점차 대중의 환영을 받기 어려워진다.
예술적 전문성은 필요하다.
대중의 감응도 필요하다.
창작자의 자유도 필요하다.
팬덤의 참여 역시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의 음악 권위는 하나의 왕좌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다른 평가체계가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하는 다원적 권위의 생태계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이 탈중심 시대의 새로운 문화적 민주주의이다.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