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11월 주막의 밥값 정보를 기록하다

  • 등록 2026.09.10 10: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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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정읍, 영지원의 풍경들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97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포크는 1884년 11월 12일자 여행 일기에 금구(오늘날 김제에 속함) 사람들의 인상을 이렇게 기록한다.

 

“ 오늘 본 금구 사람들은 일반 조선인들보다 얼굴이 더 둥그스럼했다.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까만 눈동자와 두꺼운 속눈썹이었다. 곱고 부드러운 얼굴들도 더러 보였다.”

 

다음날(13일) 일기의 일부다.

 

“6시 30분, 잠을 깨다.

7시 45분, 출발

.8시 25분, 언덕에 올라 전망을 굽어보며 간단한 요기를 하다. 금구 골의 끝이다.

8시 35분, 나팔 소리가 들린다. 용안에서 보낸 나팔수들이라 한다. 나는 태인을 그냥 지나치겠다는 전갈을 보낸다. 고맙다는 쪽지를 전하면서 나팔수들을 돌려보낸다. 조금 더 가니 악단이 나타난다. 이들을 멈춰 세우고 뒤편으로 보낸다.

 

태인을 바라본다. 크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당당한 관아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큰 연못이 보인다. 지름이 135m. 평야를 따라 많은 마을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마중 나온 관리들이 식사를 하자고 하나, 나는 사양한다. 한두 명의 길나장이만 붙여 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길라장이들은 돌려 보낸다.

 

남남서 방향으로 계속 이동한다. 470~510m 높이의 황량한 산등성이를 가로질러 계곡을 건넌다. 붉은 점토는 보이지 않고 대부분 화강암 모래지역이다. 고구마와 고지대 작물을 재배하는 밭이 약간 있다.

 

11시 30분, 휴식. 나무가 우거진 곳들이 보인다. 목재용 나무가 많다. 아직 많은 볏단이 논에 쌓여 있다. 농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눈이 이불처럼 덮고 있다. 날이 우중충하다. 한기가 스며든다. 길은 험하다.

 

11시 55분, 언덕마루를 넘으니 멋진 평야가 나타난다. 들을 따라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다. 물길 앞에 정읍Chungup 읍내가 있다. 눈이 내린다. 어제 밤엔 얄포름히 쌓였는데 오늘은 많이 쌓였다. 길이 그만큼 나쁘다. 볏단 뭉치가 군데군데 보인다. 노적가리를 마치 벽처럼 쌓아 올렸다. 다음 해까지 그대로 보관해 두는 것 같다.

 

 

12시 30분, 영지원(Yon-chu-won, 迎支院: 조법종, 조현미 번역서에 의함) 주막에 든다. 방에 들어간다. 관리의 방석과 병풍, 베개가 있다. 아까 관아에서 온 서리를 만났다. 전주 감사가 모든 읍에 내가 온다는 것을 알린 모양이다. 전양묵의 말에 따르면, 전주 감사의 편지에는 길라잡이만 지원하라고 되어 있지만 읍내 관리들이 지나치게 공손한 것 같다.

 

주막 음식이 매우 훌륭하고 정갈하다. 값이 30푼으로 전주나 그 일대보다 더 비싸다. 한편, 서울 근교와 송도의 밥값은 70푼, 80푼, 100푼이었다.

 

잠을 잔 뒤 주막에서 3시 18분 출발.

3시 40분, 기압은 30.51. 기온은 섭씨 9도.

6시 5분, 군령다리 마을 도착.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김선흥 작가 greensprou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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