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시사 합작시 91. 가을 오는 소리

  • 등록 2026.09.13 11:07:08
크게보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가을 오는 소리

 

   달빛 젖은 귀뚜리 울음소리 (돌)

   소리로 존재 깨닫는 가을밤 (심)

   보이는 소리 들리는 저 달빛 (초)

   둥근 달을 품고 서성이노라 (달)

 

                ... 25.9.6. 불한시사 합작시

 

 

 

  

여기 불안산방에는 이미 가을이 깊어지는 듯 벌레 소리도 처량하고 달빛도 청량하다. 다 자기가 맡은바 자기의 몫에 저마다 충실하는 것일 게다. 윤달이 들어 한가위가 한 달도 남지 않고 있고 내일이 벌써 백로절(白露節)이니, 밤기운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이나 거미줄에 은구슬 이슬이 맺힌다. 초로(草露)의 인생이라 했던가! 오늘은 윤달의 보름이니 어젯밤 달빛이 유난히 청량하다. 달을 보며 요양소와 병원에 있는 벗들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계절은 지구촌 곳곳에 다른 시기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5월인데 가로수가 누렇게 물들어 가는 가을이었다. 오래전 지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이해가 되기도 했던 이색 체험이었다. 마야인들은 13개월 28일 고정 달력을 쓴다. 요임금 때 없어진 마고력도 같은 체제 달력을 썼다고 신라시대 박제상이 저술한 《부도지(符都志)》란 책에 기록되어 있다. 백두산에는 9월이면 눈이 내린다. 북방의 가을과 겨울은 우리보다 먼저 온다. 대륙에 두고 온 벗들도 떠오른다.(라석)

 

*덧붙임 : 어느새 올해도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 들었다. 나무 위의 매미 소리 사그라지고 풀숲 귀뚜리 소리 요란하다. 위의 합작시는 작년 백로절에 쓴 불한시사 시우들의 합작시다. 그때도 설명을 내가 썼는데 1년 만인 오늘 백로절을 맞아 시를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 합작시는 달빛과 벌레 소리가 서로 스며드는 백로 전야의 감각을 네 사람의 시선으로 이어 놓았다.

 

첫 구절의 귀뚜라미는 풀숲에 몸을 감추고 있지만, 울음의 파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보이지 않는 물(物)이 소리를 통하여 마음(心)에 이르고, 마음은 그 소리를 받아 가을이라는 형상으로 되비춘다. 그러므로 “소리로 존재 깨닫는 가을밤”은 단순한 계절의 묘사가 아니라, 물의 파동이 마음에 비치고 마음의 감응이 다시 세계의 의미를 밝히는 심물영사(心物映寫)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보이는 소리 들리는 저 달빛”은 시각과 청각의 경계를 허무는 공감각적 표현이다. 귀뚜라미 울음에는 서늘한 달빛이 젖어 있고, 말없이 비치는 달빛에서는 가을의 적막한 소리가 들린다. 소리와 빛, 귀와 눈, 마음과 사물이 둘로 나뉘지 않고 하나의 가을밤을 이루는 것이다. 마지막의 “둥근 달을 품고 서성이노라”에는 차고 기우는 천체의 시간과 그 달을 바라보며 벗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시간이 포개져 있다. 심월지명(心月之明), 달은 하늘의 물(物)이지만, 그 달을 품는 순간 그리움과 기다림을 비추는 마음의 달이 된다.

 

 

백로는 음력의 특정 날짜가 아니라 태양이 황도상의 일정한 위치, 곧 황경 165도에 이르는 때를 가리키는 태양 절기다. 그래서 해마다 양력 9월 7일이나 8일 무렵 찾아온다. 2026년의 백로는 9월 7일이다. 가을이 깊어지는 징후는 북반구에서도 위도와 지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남반구의 계절은 북반구와 반대이다. 아르헨티나에서 5월의 단풍을 보며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던 경험은, 인간이 익숙하게 여기는 계절의 질서 또한 지구라는 물(物)의 위치와 운동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양력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약 365.2422일을 한 해의 기준으로 삼는다. 오늘날의 그레고리력은 평년을 365일로 두고 윤년을 366일로 만들어 그 차이를 보정한다. 반면 음력의 한 달은 달의 삭망주기인 약 29.53일을 따르므로, 열두 달은 약 354일이 되어 태양년보다 열하루가량 짧다. 우리 전통의 음력은 순수한 태음력이 아니라 태양의 절기까지 함께 반영하는 태음태양력이어서, 계절과의 차이가 커지면, 윤달을 넣어 조정한다. 따라서 백로와 같은 절기는 태양의 운행을 따르고, 보름과 윤달은 달의 운행과 관련된다.

 

《부도지》 제23장의 역법 서술에는 한 해(一祀)를 13기(期)로 나누고, 한 기를 28일, 다시 네 요(曜)로 나누며 한 요를 7일로 헤아리는 체계가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13기×28일은 364일, 곧 52주가 되고, 해마다 해의 첫머리에 별도의 하루를 더하여 365일을 이루며 일정한 주기에는 다시 하루를 보태 366일로 조정한다.

 

이 구조에서는 모든 달이 정확히 네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같은 날짜가 언제나 같은 요일에 놓인다. 따라서 월ㆍ일ㆍ요일만 표시한 기본 달력판은 해마다 다시 만들지 않고 되풀이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365번째 날과 윤일은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별도의 날로 처리해야 하며, 해마다 달라지는 음력 날짜ㆍ절기 시각ㆍ공휴일ㆍ천문현상까지 하나의 인쇄판으로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현존 《부도지》는 박제상이 저술한 《징심록》의 일부라고 전하지만, 현재의 책은 원본이 아니라 후손 박금이 1953년 기억을 바탕으로 복원했다고 밝힌 문헌이다. 전승 과정에 학술적 의문이 남아 있으므로, “요임금 때 실제로 마고력이 폐지되었다”라고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보다는 “《부도지》의 서술에 따르면 요임금이 부도의 역법을 버린 것으로 설명된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마야력에 대해서도 구분이 필요하다. 고대 마야의 대표적인 태양력 하아브(Haab)는 20일씩 이루어진 18개월과 별도의 5일을 합하여 365일을 이루며, 13개월×28일의 달력은 아니다. 마야에는 이와 별도로 13개의 수와 20개의 날짜 이름이 순환하는 260일의 신성력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13’이라는 수가 중요하게 쓰였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13개월 28일 고정력은 마야력이라기보다 20세기 초 제안된 국제고정력과 같은 달력 개혁안에 가깝다.

 

이처럼 달력은 천체의 운동을 숫자로 옮겨 놓은 시간의 그릇이지만, 시인은 그 숫자 너머에서 계절의 마음을 읽는다. 달은 말없이 차고 기울며, 풀벌레는 제때 울고, 이슬은 밤기운이 내려간 만큼 맺힌다. 저마다 맡은 몫에 충실한 천지 만물이 서로의 존재를 비추어 하나의 가을을 이룬다. 백로의 청량한 달빛 아래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 또한 그 거대한 순환 속에 놓여 있다. 사람은 달력을 넘기며 시간을 보내지만, 자연은 소리와 빛과 이슬로 스스로 때를 알린다. ‘가을 오는 소리’는 바로 그 천지의 무언(無言)을 마음으로 듣는 시다.(2026.9.7. 불한산방에서 라석)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 105, 5층-J45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팩스 : 032-441-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편집고문 서한범 | 편집자문위원장 김슬옹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