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종실록 183권, 16년(148년) 9월 16일 기록에 보면 노사신의 상소가 눈길을 끕니다. “대장경은 이단의 책이므로 비록 태워버린다 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더욱이 인접한 나라에서 구하니 마땅히 아끼지 말고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장경 1건을 만들려면 그 경비가 매우 많이 들어서 쉽사리 조달할 수가 없습니다. 요전번에는 대장경이 나라에 무익하였기 때문에 왜인들이 와서 구하면 문득 아끼지 않고 주었으나 지금 몇 건 남아있습니까? 다 주고 나면 또 달라는 억지에 골치가 아플 것입니다.” 말하자면 싹 주어 버려도 아깝지는 않지만 한꺼번에 다 주고 나서 다시 달라고 떼를 쓰면 만드는데 돈이 드니까 대장경을 달라고 할 때마다 조금씩 주자는 말이지요.
이 무렵 일본은 무사들이 권력을 잡았던 시절로 그들은 자신들의 번영과 안전을 위해 절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에 사신을 보내면 으레 수준 높은 고려대장경을 달라고 졸랐지요. 마침 불교를 천시하고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은 고려대장경을 별로 중요치 않게 생각하고 하나 둘 일본에 넘겼습니다. 물론 일본 사신에게 종이를 가져오면 찍어주겠다고도 했지만 일본 사신이 들고온 종이는 워낙 조악해서 대장경을 찍을 수 없었다는 기록도 있지요. 그렇게 해서 건너간 고려대장경이 이곳에 있게 된 것입니다. 와서 달라 조른다고 덥썩 내준 사람들이나 대장경 하나 못 만들고 80여 회(조선왕조실록 기록)나 대장경을 요구했던 일본 쪽이나 모두 '불심(佛心)'과는 먼 행동을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