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효자가 숙종 때에도 있었지요.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 아버지 김주신은 아버지 김일진이 세상을 뜬 뒤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 모셨는데 뫼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갈 때 멀리 십리(4km) 정도 떨어진 송강고개에 당도해 아버지의 뫼가 보이면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김주신(1661~1721)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하경, 호는 수곡으로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자라면서 아버지가 없는 것을 한으로 여겨 글공부에 전념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밤 늦도록 글 읽는 것을 안쓰럽게 여기자 김주신은 밤늦은 시간에는 목소리를 낮추어 어머니의 걱정을 덜었을 만큼 어머니에 대한 효도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무덤을 만들 때는 비석을 소등에 얹어 실어 날랐는데 소가 숨이 차서 혀를 빼물고 헐떡이는 것을 보고 너무 측은하여 그 뒤로부터는 소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할 만큼 인정이 넘쳤던 선비였지요.
김주신은 딸이 숙종임금의 왕비가 되었음에도 거들먹거리지 않고 겸손하였으며 항상 예의 바른 몸가짐으로 궁궐 안팎의 칭송을 받았다 합니다. 이는 딸에 대한 예우를 통해 임금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으로 충과 효는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잘 말해주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