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곡, 긴 시간 속에서 무르익어야 하는 음악”이라는 이승윤이 전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김영기와 함께 월하(月荷) 명인의 전수 장학생이 된 뒤, 주로 교육현장에서 후진들을 양성해 왔다는 이야기, 그가 부른 <중거-中擧>는 <이수대엽>에서 파생된 변주곡으로 <중허리>, 또는 <중허리 드는 자진한잎>으로도 부르며 노랫말은‘청조야 오도고야’로 시작한다는 이야기, “가곡에서 음정이나 장단은 기본이나, 가곡을 대하는 태도나 그 정신이 먼저”라는 가르침이라든가, 가곡이야말로 긴 시간 속에서 무르익어야 하는 음악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승윤은 평소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성품과 탄탄한 공력이 장점이어서 현재까지 대학 강단에서 후진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가곡의 전승이나 교단에서 이루어지는 전승이, 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가객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월하의 제자들이 출연한 <가곡, 달 꽃을 피우다〉라는 공연에서 <우조평거-羽調平擧>라는 곡을 불러 객석의 호응을 끌어냈던 조일하 가객을 만나보기로 한다.
조일하는 스승, 월하 선생과 만나게 된 인연의 계기를 묻는 말에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무대에서 공연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대하고 감동하였던 순간”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본격적으로 스승과 제자로서의 인연은 “서울 음대 국악과에 합격하고, 종로의 월하 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 그의 인생길이 이미 정해진 듯한 묘한 충격을 받았다”라고 했다. 그가 전해주는 말 속에 월하 명인의 수업 분위기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선생님의 가곡은 육성(肉聲)과 가성(假聲), 곧 겉 소리와 속 소리의 표현이라든가, 노랫말의 전달, 그리고 강약의 표현, 등등이 너무나 아름다우셨지요. 선생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이렇게 동그랗게 앉아서 선생님의 손동작을 따라 하며 함께 노래를 부를 때, 저는 선생님의 눈과 입을 보면서 따라 부르기를 즐겨 했지요. 선생님께선 항상 눈으로 말씀을 해 주셨거든요. 예를 들면, 그 부분의 표현이 ‘잘 안된다,’ 또는‘괜찮다’, ‘잘했다’ 하셨지요. 지금도 선생님의 삶 안에서 배우고 있는 듯, 제 삶의 중심에는 늘 선생님이 함께해 주시는 듯합니다.”
말끝을 흐리며 잠시 선생께 배우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는 눈물을 머금고,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스승을 기리는 공연에서 조일하는 ‘일소백미생(一笑百媚生)’으로 시작하는 <우조 평거>를 불러 객석으로부터 큰 손뼉을 받았다. 이 노래, 평거(平擧)라고 하는 곡은 《가곡원류(歌曲源流)》에 <막 드는 자진한닢>이라는 이름으로도 소개되어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삭대엽(數大葉)의 순수 우리말 이름이 바로 <자진한닢>이다, 곧 삭(數)=잦은, 대(大)=한, 엽(葉)=잎이란 뜻의 우리말 이름이라는 점은 앞에서 소개한 바 있다.
가곡의 원형으로 알려진 만대엽(慢大葉)이 이미 1500년대 후반의 악보, 《금합자보-琴合字譜》에 보이고 그 이후, 1600년대에는 중대엽과 삭대엽의 이름이 보이며 그 이후에는 각각 1,2,3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는데, 삭대엽의 제2곡이 바로 <이삭대엽>, 또는 <이수대엽>이라고 칭하는 악곡이다.
이 곡, 곧 <이수대엽>에서 파생되어 나온 악곡들이 <중거>, <평거>, <두거> 등등인데, <중거>라는 이름은 이수대엽의 제1장 중간부분을 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중허리 드는 자진한잎>이라는 이름으로도 전해오고, 평거는 <막 드는 자진한닢>, 두거(頭擧)는 처음 부분을 높게 들어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일하가 부른 곡은 평거(平擧)였다. 이를 <막 드는 자진한잎>, 또는 <막 내는 자진한잎>이라고도 부르는 재미있는 별칭의 노래이다. 그 이름에서 <든다>라는 말의 의미가 높은 소리를 낸다는 뜻이라면, <막>은 또한 무슨 의미일까? 평거라는 악곡의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첫 음이 낮지도, 높지도 않은 평평한 음으로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창 선율의 흐름으로 보면, 처음이나 중간 부분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막 들어낸다는 의미도 되는 듯하다.
실제로 여창 <우조-평거>의 첫 장단의 흐름을 보면, 제1박에서 노래가 시작되지 않고, 제4박(鼓)에서 중(㳞)-태(汰)로 하행하고, 다시 중(㳞)-태(汰)-임(林)으로 내리는 등, 반복적인 선율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노래는 1920년대, 하규일이 전해 준, 가곡 가운데 하나로 모두 6종의 시(詩)가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첫째 바탕이 그 유명한 <일소백미생>이란 시구(詩句)다.
그 밖에 <이 몸 스여져서>, <꿈에 다니는 길이>, <꿈에 왔던 님이>, <일정 백년을 산 들>, 그리고 시작 음을 중(㳞)이 아닌, 남(湳)으로 들어내는 ‘어져 내일이여’ 등등이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주로 불리고 있는 <일소 백미생>을 장별(章別)로 소개하고 그 의미를 새겨 보면 아래와 같다.
대여음(大餘音-관현악기들의 전주 부분)
1장-일소백미생(一笑百媚生)이- 한번 웃음으로 백 가지 교태가 나타남.
2장-태진(太眞)의 여질(麗質이라. 당(唐) 현종이 총애한 양귀비의 고운 모습.
3장-명황(明皇)도 이러므로 만리행촉(萬里行蜀)하였으니,- 당 현종이 머나먼 촉나라로 행차하였으니,
중여음(中餘音-관현악기들의 간주 부분)
4장-지금에,
5장-마외방초(馬嵬芳草)을 못내 설워하노라. 마외방혼(馬嵬芳魂)으로도 쓰는데, 마외역에서 죽은 양귀비를 뜻하는 풀, 또는 그녀의 넋이라는 뜻.
조일하는《국립국악원》무대에서 가곡, 가사, 시조, 기타 정가 부문 창작품들을 불러오면서 가곡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파해 온, 성악계의 중견 가객이다. <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