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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아유타공주 허황옥

차인열전(茶人列傳) ① 가야 차문화의 첫 숨결
[라석의 차와 시서화] 16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차는 언제부터 이 땅에 뿌리 내렸을까.

우리는 흔히 신라 흥덕왕 3년(828),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씨를 들여왔다는 기록을 한국 차문화의 시작처럼 배워 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으로부터 차씨를 공식적으로 들여온 기록일 뿐, 이 땅에 차문화가 처음 시작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기록보다 먼저 삶이 있었고, 문헌보다 먼저 사람들의 기억과 풍습이 존재하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가야와 허황옥, 그리고 차의 관계를 추적해 오면서 우리 차문화의 가장 오래된 숨결이 어쩌면 가락국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붉은 돛을 단 배를 타고 머나먼 바다를 건너왔다. 그녀는 단지 한 나라의 왕비가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배에는 새로운 문화와 신앙, 생활양식과 정신세계가 함께 실려 있었다. 바닷길을 따라 움직이던 고대 해양문명의 숨결이 함께 도착한 것이었다.

 

나는 오래전 졸시집 《허황옥이 가락국에 온 까닭》(1995)에서 그 장면을 이렇게 적어 두었다.

 

“첫날밤을 보낸

아유타 공주님은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는 듯

옥합에 넣어 온

귀한 차씨를 꺼내 심었다.”

 

 

역사는 침묵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시는 때로 기록보다 오래 기억한다.

허황옥이 차씨를 가져왔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정사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가야지역에 남아 있는 오래된 전승과 지명, 차와 관련된 민간 기억들은 그것이 단순한 상상만은 아니었음을 조용히 말해 주고 있다. 창원 북면 백월산 기슭에는 지금도 죽로차(竹露茶)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숲 아래 이슬을 머금고 자라는 차라는 뜻이다. 이름만으로도 이미 선기(仙氣)가 감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것을 허황옥이 심은 차의 후손이라 이야기해 왔다.

 

나는 80년대 부산시절 쓴 같은 시집에서 다시 이렇게 적었다.

 

“지금도 창원군 북면

마금산온천 가는 길목

백월산(白月山) 기슭에 가면

허황후가 심은

차나무 후손들이

오손도손 자라고 있다.”

 

어쩌면 차는 기록보다 먼저 뿌리내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거등왕 때 이미 차가 제례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떡과 술, 과일과 함께 차를 올렸다는 내용이다. 이는 적어도 2세기 무렵 가야에서 차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제의와 정신을 잇는 문화적 매개였음을 보여 준다. 신라가 중국으로부터 차씨를 공식 수입했다는 기록보다 수백 년 앞선 이야기다.

 

더 주목할 것은, 그 시기의 가야에 이미 불교문화의 흐름 또한 매우 이른 시기부터 스며들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들이다. 김해와 창원을 가르는 불모산(佛母山)의 장유암은 허황옥과 함께 왔다는 오라비 장유화상 전설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으며, 지리산 칠불암 역시 가락국과 인연된 초기 불교 전래의 기억을 품고 있다.

 

물론 그것이 오늘날의 체계적 불교 교단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도와 남방 해양문화의 흐름 속에서 차문화와 수행문화, 그리고 명상과 수행의 정신이 이미 한반도 남단에 전해지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상징적 흔적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차는 원래 수행과 가까운 문화였다. 뜨거운 물을 끓이고, 향기를 음미하며, 마음을 맑히고 정신을 가다듬는 일은 단순한 기호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래서 차는 언제나 조용히 사람의 내면과 연결되어 있었다. 가야의 차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니었다. 바다를 건너온 문화의 향기였고,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는 자리에서 피어난 융화의 상징이었다. 마음을 맑히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정신문화의 한 형태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가야문화를 단순한 지방 고대문화로 보지 않았다. 가야는 해양문화였고 개방된 국제문화였다. 인도와 동남아, 중국 남부 보주의 해양문화가 서로 이어지던 동아시아 해상교류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허황옥은 바로 그 흐름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녀는 금은보화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을 가져왔다.

차 한 알의 씨앗.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식물의 씨앗이 아니었다. 향기를 통해 마음을 맑히고, 뜨거운 물 속에서 자신을 비우며, 함께 나누는 가운데 인간의 정을 이어가는 문화의 씨앗이었다.

그래서 차는 늘 조용하다.

칼과 군대처럼 세상을 정복하지 않는다. 다만 한 잔의 온기로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허황옥이 먼바다를 건너가져 온 것도 어쩌면 바로 그런 숨결이었을 것이다.

 

나는 또 다른 시에서 이렇게 적었다.

 

“향기로운 발걸음을 옮겨

길짐승 날짐승 파헤칠까

꼭꼭 숨겼다.”

 

숨긴 것은 차씨만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었고, 오래된 문화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 김해와 창원 일대에 남아 있는 다호리(茶戶里), 다곡(茶谷), 차밭골 같은 지명들, 가야토기의 잔들, 차례(茶禮)의 흔적들, 그리고 죽로차 전승은 모두 그 오래된 시간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신라의 다례보다 앞서고, 고려의 다풍보다 먼저였던 가야의 차.

그 시작점에 한 이국의 공주가 있었다.

 

머나먼 나라에서 온 한 여인이 대숲 이슬 맺힌 땅에 차씨를 심고 있었던 모습. 나는 어쩌면 우리 차문화의 시작은 바로 그 조용한 손끝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차는 결국 어느 한 나라의 소유물이 아니다. 차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가는 숨결이며, 문명과 문명이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향기다.

 

그리고 그 향기는 지금도 백월산 대숲 사이에서, 불모산 옛 바람 속에서, 가야의 오래된 시간과 함께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다.

(5. 22. 중국 오대산에서)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