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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음운론 빠진 국평원의 한국어문법 교육과정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하루빨리 표준교육과정을 고쳐라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국어학자·한국어교육 2급 강사]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학점은행제 한국어교원 양성과정 '한국어문법론' 과목 개요를 확인한 순간, 학자로서, 전문 교육자로서 눈을 의심했다. 음운론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공시된 과목 개요를 그대로 옮긴다.

"문법론의 범위, 문법 범주 개관, 한국어 형태론, 한국어 통사론, 형태소와 단어의 개념, 품사 분류, 체언과 용언, 조사와 어미, 단어 형성…" 누리집(https://www.cb.or.kr/creditbank/stdPro/nStdPro1_1_2.do)

 

학습 항목 전체를 훑어도 '음운'이라는 두 글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한국어 문법론을 형태론과 통사론, 단 두 분야로 토막 낸 것이다. 이 문제를 확인하고 따지기 위해 국가평생교육원 누리집 공개 전화로 담당자와 통화를 여러 번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이것이 왜 심각한 문제인가?

 

첫째, 학문적 정설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순수 문법론의 3대 분야는 '음운론·형태론·통사론'이다. 의사소통 관점을 더한 《한국어 표준 문법》(유현경 외, 2019)의 4대 분야는 '음운론·형태론·통사론·담화론'이다. 이는 학계의 합의이자 언어 단위의 위계적 구조 — 음운 → 형태소 → 단어 → 문장 → 담화 — 가 강제하는 필연적 분류다. 토대인 음운을 빼고 그 위층만 가르치라는 것은, 1층 없이 2층부터 짓는 집을 설계하라는 말과 같다.

 

 

둘째, 한국어의 '한국어다움'을 가르치지 못하게 만든다. 한국어 문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평음-경음-유기음' 삼중 대립(달/딸/탈), 다양한 단모음과 이중모음 체계, 풍부한 음소 변동이다. 모두 음운론적 특성이다. 외국인 학습자가 발음 오류를 일으킬 때, 교사가 그 원인이 음운 체계에 있음을 모른다면 교정은 불가능하다.

 

셋째, 형태론조차 음운론 없이는 가르칠 수 없다. 과목 개요가 나열한 '조사와 어미'를 보자. '이/가, 을/를, 은/는'의 변이 형태 선택, '-아/-어'의 모음조화, '듣다 → 들어'의 'ㄷ' 불규칙, '가+아 → 가'의 동음 탈락 — 이 모든 형태론 현상이 음운론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음운론 없이 형태론을 가르친다는 것은, 원인을 가리고 결과만 외우게 하는 주술 교육이다.

 

넷째, 가장 부조리한 모순이 있다.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도 음운 체계와 음운 변동은 엄연히 다룬다. 모국어 화자인 한국 학생들에게는 음운론을 가르치면서, 외국인 학습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교사를 양성하는 과정에서는 음운론을 뺀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음운론적 지원이 가장 절실한 학습자 집단을 가르칠 교사에게 정작 그 도구를 박탈하는 이 기괴한 역설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이 사태를 '행정적 누락'으로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은 곧 강사들의 강의 내용이 되고, 출판사의 교재가 되며, 양성된 교사가 현장에서 외국인 학습자에게 전달하는 한국어가 된다. 잘못된 토대 위에서 잘못된 강의가 만들어지고, 잘못된 교재가 양산되며, 결국 학습자에게 불구의 문법 체계가 주입된다. 이것은 학문적 무지가 행정 권력의 옷을 입고 자행하는 교육과정 폭력이며, 국가 차원의 교육 왜곡이다.

 

세종대왕이 1443년 창제하고 1446년 반포한 문자 이름 자체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훈민정음)'였다. 우리 문법학의 출발점은 음운이었다. 그 음운을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이 한국어교원 양성과정에서 통째로 들어냈다는 사실은, 학문사의 후퇴이자 부끄러움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잘못된 교육과정으로 심사 횡포를 저질러 음운론이 들어간 강의 심사 청구를 탈락시켰다는 점이다. 몇몇 한국어교육 전문 기관들이 이 문제로 행정 낭비와 예산 낭비를 하고 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요구한다. 첫째, '한국어문법론' 과목 개요에 즉시 음운론을 복원하라. 둘째, 음운론이 빠진 의사결정 과정과 학계 자문 절차를 공개하라. 셋째, 앞으로 한국어 교육 관련 국가 교육과정 고시할 때는 학계의 표준 합의를 반영하는 검증 절차를 제도화하라.

 

주춧돌 없는 집은 무너진다. 음운론 없는 문법론은 무너진 문법론이다. 그리고 무너진 문법론으로 양성된 교사가 가르치는 한국어는 결국 무너진 한국어가 된다. 국가는 지금 한국어의 주춧돌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즉각 중단하고 시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