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머니, 나의 어머니
먼 문중 무덤도 아닌 가까운 곳인데
사는 게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이제야 찾아와 머리를 조아립니다
납골당 한 뼘 공간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어머니
세파에 시달려 당신을 잊고 살던 자식은
부끄러움에 차마 눈을 맞추지 못합니다
나는 잠시 어머니를 놓치고 살았는데
당신은 늘 나를 기억하고 계셨나 봅니다
그 깊은 미소로 나를 안아주시니...
아이고, 어머니!
목놓아 불러보아도 대답 없는 이름
당신이 떠나신 지 어느덧 여섯 해 하고도 여덟 달
어머니 품을 떠나 방황하던 청춘은 가고
당신의 품이 그리운 이 자식도
어느새 머리에 흰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내 얼굴에 주름이 깊어져도
어머니 눈에는 여전히 품 안의 아이겠지요
보고 싶습니다,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납골당에 계신다. 가끔 찾아뵙는 어머니가 계신 곳에 갈 때마다 작은 꽃다발을 사서 가는데 예전에는 조화가 주종을 이뤘으나 요즘은 생화가 대부분이다. 플라스틱 조화가 환경을 해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납골당 입구에 줄지어 선 꽃집에도 생화 바람이 불고 있다.
그래서인지 납골당 여기저기에 '생화'를 가져오라는 펼침막이 나부낀다. 그래, 말이야 바른말이지 살아생전에 생화 한번 변변히 못 드렸는데 죽어서도 생기 없는 플라스틱 조화로 싸구려 장식을 하는 것은 계면쩍은 일이다.
생화가 시들면 관리사무소에서 버려도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조화는 영원한 골칫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이곳 납골당에서는 참배객이 다녀간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생화든 조화든 모든 꽃을 납골함에서 떼어내어 창가 쪽에 잠시 보관했다가 치우고 있다.
사시사철 향기 없는 조화로 가신 이의 무덤(산중 무덤이든 납골 무덤이든)을 장식하려는 마음을 바꾸어 친환경 노력에도 일조하는 참배를 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