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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김화상 정중무상(淨衆無相)

차인열전 ③ 차와 선(禪)을 하나로 열어 동아시아 정신문화를 바꾸다
[라석의 차와 시서화] 17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한국 차문화의 역사를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신라 흥덕왕 때 김대렴(金大廉)이 당나라에서 차씨를 들여온 사실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차 재배에 관한 첫 공식 기록일 뿐, 차가 지닌 정신문화의 깊이까지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실제로 신라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차를 수행과 연결하여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정신 수양의 매개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신라 출신의 고승 정중무상(淨衆無相, 684~762)이다. 중국에서는 김화상(金和尙)이라 불렸던 그는 단순한 선승이 아니었다. 그는 차(茶)와 선(禪)을 결합하여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열어 놓은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무상선사는 신라 왕족 출신으로 전해졌다. 젊은 시절 당나라로 건너간 그는 사천성 성도(成都)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선종의 중요한 한 계통을 형성하였다. 특히 성도의 정중사(淨衆寺)를 중심으로 교단을 이끌었기 때문에 후대에는 그의 법맥을 정중종(淨衆宗)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의 존재는 중국 선종사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였다. 당대 이후 선종의 정통 법맥이 육조 혜능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무상선사의 위치는 점차 줄어들거나 역사 속에 가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가운데 돈황문서와 여러 고문헌이 발견되면서 그의 실체가 다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북경대학의 철학자 호적(胡適)과 한국ㆍ중국 학자들의 공동 연구를 통해 무상이 초기 선종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단순히 신라에서 건너간 수행승이 아니라 중국 선종의 한 흐름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국제적 사상가였던 것이다.

 

 

무상선사의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는 차와 선을 하나의 수행체계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오늘날 "선차일미(禪茶一味)" 혹은 "차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은 너무도 익숙하다. 그러나 차와 선의 결합을 수행문화로 정착시킨 초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무상선사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이미 차가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상은 차를 단순한 기호음료로 보지 않았다. 그는 차가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좌선 수행을 돕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신라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던 수행차례(修行茶禮)의 전통은 중국에 건너간 무상에 의해 더욱 철학적으로 정리되었다. 그에게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한 음용이 아니었다. 물을 끓이고, 향을 맡고,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는 모든 과정은 곧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수행이었다. 그래서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라는 선의 가르침은 자연스럽게 차문화와 결합하게 되었다.

 

무상의 선차사상은 사천의 정중사와 대자사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후대 선승들을 통해 중국 선종의 중요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돈황문서(敦煌文書)인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에 따르면 그의 문하로 알려진 마조도일(馬祖道一)을 비롯하여 남전보원(南泉普願), 조주종심(趙州從諗) 등으로 이어지는 선종의 흐름 속에는 이미 차와 선을 함께 이해하는 선차지법(禪茶之法)의 문화가 깊이 스며들게 되었다.

 

뒷날 일본 다도(茶道)의 정신적 토대가 되는 "차선일미"의 사상 역시 이러한 흐름 위에서 성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무상선사의 영향력이 중국과 일본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법맥은 하택신회 계통과 화엄사상 계열과도 교류하였으며, 당시 실크로드와 중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선불교ㆍ밀교ㆍ화엄학의 융합 과정에서 티벳불교 형성기에도 일정한 영향을 남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중국 불교계에서는 그의 공덕을 높이 기려 오백나한(五百羅漢)의 한 분으로 봉안하는 전통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 여러 사찰의 나한전에는 김화상(金和尙)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그가 단순한 외국 승려가 아니라 선불교의 중흥조로서 중국 불교사 속에서 구화산 지장보살 김교각과 더불어 성현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존경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전에는 신라인으로 중국에 건너갔으나, 입적 뒤에는 중국 불교문화의 일부가 되어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것이다. 무상선사의 존재는 한국 차문화사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단지 중국에 간 신라 승려가 아니라 한국 차정신을 세계 속에 펼친 첫 국제적 차인이었기 때문이다.

 

원효와 의상이 한국불교의 철학적 기틀을 세웠다면, 무상은 차와 선을 통하여 한국 정신문화의 깊이를 동아시아 세계에 드러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선차사상은 고려와 조선을 거쳐 한국 차문화의 정신적 저류로 이어졌으며,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마음을 닦는 수행의 길로 바라보게 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차를 마시며 향과 맛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상선사는 그보다 먼저 "차를 통하여 마음을 보는 길"을 열어 놓았다. 한 잔의 차 속에 고요한 선정(禪定)을 담고, 일상의 행위 속에 깨달음의 가능성을 심어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정중무상은 단순한 선사가 아니다. 그는 한국 차문화가 세계 정신문화와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난 신라의 위대한 차인이며, 동아시아 선차문화의 뿌리를 이루는 거목이다. 천삼백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그가 남긴 차 한 잔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대는 지금 차를 마시는가, 아니면 차를 통하여 자기 마음을 보고 있는가.” (중국 태원 한고산정 한조사-漢祖寺에서)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