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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시사 합작시 78. 선원전(璿源殿) 현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선원전(璿源殿) 현판

 

   선원전 그 현판 찾아오다니 (돌)

   먼지 덮인 저 글자 낡은 목괴 (달)

   부끄러운 역사 숨고 싶은 듯 (초)

   망국과 광복이 현판의 운명 (심)

 

                 ... 25.2.5. 불한시사 합작시

 

 

 

 

선원전(璿源殿)은 경복궁 안에 있던 조선 왕실 으뜸 전각 가운데 하나로, 역대 임금과 왕비의 어진(御眞)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던 왕실 정신문화의 중심 공간이었다.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역사, 그리고 선조에 대한 예(禮)의 정신이 집약된 상징적 장소였으며, 궁궐 내에서도 가장 높은 위계를 지닌 전각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1910년 국권이 침탈되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선원전의 운명도 크게 바뀌었다. 일제는 조선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을 헐거나 이전하였고, 궁궐 중심부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워 식민지 지배의 권위를 과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선원전 역시 철거되었고, 전각에 걸려 있던 현판 또한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한 나라의 왕실을 상징하던 현판은 그렇게 본래의 자리에서 쫓겨나 일본의 한 지방 창고 천장에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비바람도 맞지 못한 채 먼지 속에 숨어 있던 그 나무판은 단순한 목재가 아니라, 나라를 잃은 겨레의 기억과 함께 유랑한 역사의 증언자였다.

 

2023년 일본 후쿠오카의 한 경매장에 이 현판이 모습을 드러내자, 한국 문화재 당국은 긴급히 매입 절차에 나섰다. 마침내 10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현판은 단순한 문화재 환수가 아니라, 빼앗긴 역사와 정체성을 되찾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오늘날 경복궁에서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선원전 권역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언젠가 복원된 선원전 처마 아래에 이 현판이 다시 걸리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단순한 건축물의 복원이 아니라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고 겨레의 존엄을 회복하는 문화적 귀향의 완성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현판의 귀환을 단순한 기쁨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 이러한 문화재가 다른 나라 창고 천장에 숨어 있어야 했는지, 왜 우리의 궁궐과 전통문화가 식민지배 속에서 훼손되고 유린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성찰해야 한다.

 

선원전 현판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망국의 아픔도 있고, 광복의 기쁨도 있으며, 역사를 잊지 말라는 엄숙한 경고도 담겨 있다. 먼지에 덮여 있던 낡은 목판 한 장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겨레에게 미래는 있는가?"

선원전 현판의 귀환은 문화재의 귀환인 동시에 역사적 양심의 귀환이며, 잊혔던 기억을 다시 일깨우는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인 것이다.(라석)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