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김진묵 선생이 이번에 《꽃 그리고 새》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부제는 「우리 노래 속의 민중사」인데, 동학농민혁명부터 한국전쟁을 지나, 1960년대 초까지 우리 노래 속에 스며든 민중의 삶을 노래 가사와 가락 속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민중의 삶을 읊조리는 노래라면 아무래도 민요가 먼저 떠오를 것이고, 일제 강점기 이후로는 트로트가 떠오를 것입니다. 트로트는 소위 고상한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뽕짝’이라고 천히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 노래에는 민중의 슬픔과 한, 기쁨과 눈물이 녹아있습니다. 그렇기에 민중은 본능적으로 그러한 노래에 끌리는 것이고, 그래서 요즘은 방송을 틀면 트로트가 대세인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김진묵 선생도 월간 <객석>에서 클래식 전문기자로 출발하였으나, 이후 재즈, 인도음악, 월드뮤직을 거쳐 지금은 트로트의 세계에도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춘천에서 <김진묵 악단>을 만들어 해마다 공연도 합니다. 전에 공연을 보러 갔을 때, 김진묵 선생이 눈을 지그시 감고 색소폰과 혼연일체가 되어 연주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김진묵 선생은 재즈에 빠져들었을 때는 재즈에서 흑인의 눈물과 한을 보고는 아예 《흑인 잔혹사》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트로트에 빠져서는 트로트에서 우리 민족의 슬픔과 한, 기쁨과 환희를 보고는 코로나 전부터 우리 노래 속의 민중사를 쓰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여러 해 전에는 그중에 일부 원고를 저에게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묵히면서 그윽한 장 냄새를 풍기던 우리 노래 속의 민중사가 이번에 드디어 《꽃 그리고 새》로 세상에 태어났네요. 김진묵 선생은 이 땅의 여인들은 꽃처럼 아름답고 남정네들은 새처럼 자유롭다는 뜻에서 책의 제목을 《꽃 그리고 새》로 하였다고 하십니다.
김 선생은 책을 펼치는 글에서 마흔 살 이전에는 우리말로 된 노래를 간과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아니,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인류가 개발한 모든 음악을 거치고 나서야 우리 언어로 된 노래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음악 전문가로서 사용치 않던 뇌의 부위를 사용하며 새로운 인생의 맛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클래식이나 재즈는 내게 ‘뜨거운 예술의 맛’을 알게 해주었지만, 삶의 속살까지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 노래는 나보다 먼저 이 반도에서 살던 사람들,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겪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도 그 맥을 이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삶의 비밀’ 하나를 안 것이다. ‘봄이 왔다길래 꽃 찾아온 산을 헤매다 집에 돌아오니 마당에 꽃이 피어 있더라’라는 어느 시인의 노래가 생각난다.”
《꽃 그리고 새》는 1부에서는 ‘나라를 잃고’라는 제목으로, <새야 새야 파랑새야>로부터 <고향만리>까지 20곡에 녹아있는 민중의 삶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형제들이 총을 쏘았다’라는 제목으로, <가거라 삼팔선>부터 <과거를 묻지 마세요>까지 9곡에 녹아있는 민중의 삶을 얘기합니다.
그 가운데서 몇 곡에 얽힌 우리 민중사를 소개하겠습니다. 가수 김정구 선생이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은 우리 민족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곡이지요? 1935년에 창립된 신파극단 「예원좌(藝苑座)」가 중국 동북 지방의 동포들을 상대로 순회공연을 하면서,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 북간도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의 한 여인숙에 짐을 풀었을 때입니다. 작곡가 이시우 선생이 깊어지는 밤에 잠 못 이루고 방에서 뒤척이는데, 돌연 여인의 통곡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 여인은 독립운동한다고 두만강을 건넌 남편을 찾아 만주를 헤매다가 마침 같은 여인숙에 들어왔던 여인입니다.
여인은 거기서 여인숙 주인으로부터 그렇게 오매불망 찾던 남편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일본군에 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한 지 이미 오래 되었다니... 독립투사의 이름은 문창학, 아내인 그 여인의 이름은 김증손녀였습니다. 여인은 여관집 주인이 차려준 생일상 겸 제사상에 술을 따르던 중 통곡이 터진 것입니다. 그 통곡을 뒤척이던 이시우가 들은 것이고... 사연을 들은 이시우는 이 사연을 한명천에게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얘기에 울림을 받은 한명천이 가사를 써내려 갔고, 여기에 이시우가 곡을 붙인 것이 바로 <눈물 젖은 두만강>입니다.
또 하나 곡을 볼까요? 유호 작사, 박춘석 작곡의 <고향만리>는 1947년 현인이 불러 히트하였지요?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십자성? 남십자성? 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십자성이 가사에 나오지?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보르네오 깊은 밤에 우는 저 새는...” 그러니까 노래 가사의 주인공은 머나먼 남쪽 보르네오에서 십자성을 쳐다보며 아득히 떨어져 있는 고향을 생각하고 있던 것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가사의 주인공은 일제에 징병을 당하여 보르네오 정글 속에 던져진 조선 청년입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42년 전선을 남쪽으로 확대하여 필리핀을 거쳐 보르네오까지 점령하였지요. 그러다가 히틀러가 자살하고 전쟁도 막바지에 달하자, 영국은 일본 침략 전에 이 지역에 대해 갖고 있던 영향력을 영영 잃을까 봐 초조해집니다. 그래서 영국은 미국을 설득하여 1945. 5. 1. 호주군과 네덜란드군과 연합으로 보르네오를 공격합니다. 이를 오보에 작전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시작된 오보에 작전은 6차까지 이어지며 일제가 항복한 1945. 8. 15.에 끝납니다.
일제가 항복선언을 하였을 때 보르네오를 비롯한 남방의 섬에는 일제 패잔병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요? 그중에는 본인 뜻과는 무관하게 끌려간 조선 청년들도 많았고요. 그중에 한 청년이 보르네오 어느 밀림에 홀로 떨어져 십자성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고향만리>입니다. “눈에 익은 너의 모습 꿈속에 보면... 고향산천 가는 길이... 절로 보인다”, “보르네오 깊은 밤에 우는 저 새는/ 이역 땅에 홀로 남은 외로운 몸을/ 알아주어 우는 거냐 몰라 우는 거냐” 이런 가사를 음미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감상하려니, 어느덧 가슴은 뭉클해지고 저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히려고 하네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조선의 청년을 전쟁터로 끌고 간 것뿐만 아니라,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창씨개명,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아예 조선의 혼을 말살하려고 하였지요. 책에는 ‘일억 총진군’, ‘결사대의 아내’ 등 40곡의 군국가요 목록도 싣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렬 이인석 상등병>이라는 나니와부시를 한 꼭지로 소개합니다. 나니와부시는 서사적 내용을 담은 문예 작품을 소재로 한 일본식 판소리입니다. 1937년 7월 9일 자 동아일보에 이인석 상병의 전사 소식이 실렸습니다. 이를 본 이서구가 <장렬 이인석 상등병> 가사를 썼고, 최팔근이 곡을 붙였는데, 전반부는 노래이고, 후반부는 대사입니다.
“일장기 물결치는 옥천 정거장/ ‘이인석 일등병 만세’ 소리/..... 이같이 전송받아 전장에 나가 큰 공을 못 세우고 돌아오겠나/ 일곱 번 죽어서 다시 살망정 나라에 바친 충성이 변할 것인가”
그동안 나약한 당시 지식인들이 천황에 바치는 글이나 시만 보다가, 노래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합니다. 음악도 들어보려고 하였으나, 유투브를 검색하여도 곡은 나오지 않네요. 화가 나고 서글프지만, 노래에 담긴 일제 강점기 민중사를 쓰려면, 이런 노래도 책에 실어야겠지요.
책에 실린 노래 가운데 가장 최근의 노래는 1964년에 나온 한운사 작사, 박춘석 작곡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입니다. 1964년 나올 때는 곽순옥이 불렀지만,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특별 생방송에서 설운도가 부르며 크게 유행했지요. “맞다! 맞아! 00아! 엄니!!!” 화면에서 서로 얼싸안고 통곡하는 장면이 나올 때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이를 보는 제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반공포로로 남한에 정착한 제 아버님도 혹시나 하시면서 KBS 벽에 붙여진 수많은 벽보를 살펴보시고, 스튜디오에서 상봉하는 가족들을 지켜보셨지요. 아버님은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부산에서 우연히 6촌 형님을 만나셨습니다. 그 형님은 사리원에서 바로 이웃에 사시던 형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형님으로부터 부모님(제 할아버지, 할머니)은 군에 간 아들(제 아버님) 생각에 내려오시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특별 생방송이 시작되자, 아버님은 혹시나 하여 눈물의 상봉 현장을 찾았던 것입니다.
아버지! 생전에 그토록 북의 고향땅을 밟고 그리운 부모, 형제를 만나고 싶으셨던 아버지!! 그렇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으신 아버지!!!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부모님 만나 행복하게 잘 계시는가요? 글을 쓰며 다시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으~음~~ 《꽃 그리고 새》 독후감을 쓴다는 것이 마지막에 제 사부곡(思父曲)이 되었군요. 김진묵 선생님! 책 잘 보았습니다. 오항리 뒷산 깊은 숲속에 홀로 떨어진 집에서 지금도 잘 지내시나요? 선생님 댁에서 하룻밤 보낸 게, 벌써 13년 전 추억이 되었군요. 언제 다시 한번 선생님 댁을 찾아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숲의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선생님과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싶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