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백련(白蓮)
푸른 바위 연못에 핀 백련꽃 (돌)
그대 그리워 다시 돌아보네 (달)
창백한 순수로 오롯한 자태 (빛)
진흙 속에서 하얀꽃 피우네 (심)
... 25. 6. 25. 불한시사 합작시
지난해 오늘, 불한시사 시벗들과 함께 한 편의 합작시를 지었다. 짧은 네 행의 시였지만, 그 속에는 옥광과 한빛, 심중과 라석이 하나의 연꽃으로 피어나듯 시의 뜻이 담겨 있다. 올해 같은 날, 그 시를 다시 펼쳐 읽으니 문득 코로나 펜데믹 시절 불한산방 벌바위에서 썼던 졸시 [연꽃 추억 셋]도 떠올랐다.
세월은 365일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같은 날짜를 데려왔지만, 이미 같은 시간은 아니다. 같은 자리 같으나 이미 다른 자리이고, 같은 사람 같으나 이미 더 늙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강물은 같은 물이 아니고, 연못의 연꽃도 해마다 새롭게 피어난다. 그러나 그 향기만은 시간을 건너 마음속에서 다시 피어난다.
[연꽃 추억 셋]에는 세 송이의 연꽃이 있다. 황련(黃蓮)은 성북동 산정(山丁) 화백의 무송재(撫松齋)에서 처음 만난 귀한 황금빛 연꽃이다. 세상의 인연은 흔하지만 귀한 만남은 드물다. 해마다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황련은 사람 또한 때를 만나야 비로소 아름다움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황련이 필 때면 지인을 불러 함께 감상하던 그 주인도 떠나고 이젠 빈 집만 남았다.
홍련(紅蓮)은 오랜 세월 묵묵히 시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지하(之荷) 시인과 함께한 추억이다. 로터스상에 빛나는 이름을 돌에 새긴 것이다. 진흙 속에서 붉게 피어난 연꽃처럼, 삶의 고단함을 견디어 낸 사람만이 깊은 향기를 품는다. 꽃은 붉었지만 그 안에는 세월을 이겨 낸 수행자의 모습처럼 거룩한 침묵 역시 거기 스며 있었다.
그리고 백련(白蓮). 불한시벗 옥광 사백이 보내온 편지 속 흰 연꽃 그림이다. 새벽 꿈속에서 먼저 피어온 꽃이었다. 꿈에서 맡은 향기가 깨어난 뒤에도 오래 남아 있었던 그 신비한 기억은, 연꽃이 단지 눈으로 보는 꽃이 아니라 마음으로 피어나는 꽃임을 알려 주었다. 순백의 꽃잎은 티 없는 마음이었고, 맑은 향기는 시심(詩心)의 본래 자리였다.
지난 불한시사 합작시에서 다시 백련의 향기가 피었다. 혼자 바라본 꽃이 아니라 시벗들과 함께 피워 올린 꽃이다. 돌과 달, 빛과 심중이 서로의 언어가 되어 하나의 백련을 이루었듯, 시 또한 혼자의 작품이 아니라 인연이 함께 빚어낸 한 송이 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 시벗들 가운데에는 오래도록 시심을 나누어 온 문우도 함께 있다. 그래서 이번 백련은 한 사람의 추억이 아니라 함께 걸어온 우정의 꽃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진흙에서 피어나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꽃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연꽃은 진흙 없이 피는 꽃이 아니라, 진흙이 있었기에 더욱 맑게 피는 꽃이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아픔과 기다림, 그리움과 인연이 있었기에 오늘의 시도, 오늘의 우정도 더욱 향기로워지는 법이다.
황련은 귀한 만남을 말하고, 홍련은 세월의 열정을 말하며, 백련은 마음의 순수를 말한다. 이 세 송이 연꽃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루는 세 가지 빛깔이며, 불한산방과 벌바위, 그리고 불한시사를 이어 온 아름다운 시간의 꽃이기도 하다.
오늘 다시 합작시를 읽으며 알게 된다. 연꽃은 해마다 새롭게 피지만, 그 향기는 인연 속에서 맑게 이어진다. 그리고 좋은 시 또한 꽃처럼, 사람보다 오래 살아 독자의 마음속에서 향기로 다시 피어난다. (2026. 6. 25. 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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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