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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개성(個性)을 살려, 네 노래를 불러라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9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반우반계(半羽半界)로 이루어진 <반엽(半葉)>이란 노래를 불러 발표회의 분위기를 바꾸어 준 강권순의 이야기를 하였다. 한 곡 내에서 그가 부른 노래처럼 변조(變調)하는 까닭은 단조로운 분위기를 변화시키기 위함이나, 또는 이어갈 악곡을 자연스럽게 예비한다는 이유라 했다.

 

그는 <반엽>의 노랫말 가운데 「남하여 -」로 시작하는 가사를 골라, 깊은 발성과 특유의 호흡으로 역동미(力動美)를 느끼게 해 주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몇 해 전, 월하 명인에게 전수한 여창가곡 전곡을 「천뢰(天籟), 하늘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완창하고, 음반 출시를 한 바 있는데, 전문가들로부터 “여창가곡의 대(代)를 이을 보배로운 소리꾼”이라고 평가받았다고 전했다. 다음 이야기로 이어간다.

 

강권순은 여창가곡의 전통적인 계승에만 열심인 가객이 아니다. 오히려 타고난 성량과 후천적인 노력으로 남다른 소리 세계에 도전해 왔음을 알게 하는 창자(唱者)인데, 무엇보다도 정가의 전통적인 계승 작업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는 현대적 정가의 확장을 위해, 서양음악 등 다른 장르와의 결합이나 협업을 통해서 정가의 대중화, 또는 현대화 작업에 앞장서 온 가객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화 <꽃잎>의 주제곡이라든가, 제주민요 <산천초목>을 불러 대중들과 친숙해진 가객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국악 관련 방송을 위시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일반 대중들과 그리고 젊은 학생들에게 가곡이나 시조, 등을 쉽고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적인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전통 가곡>이 아직도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옛 노래가 아니라는 점, 다시 말해, 현대사회에서도 정가 속에 담겨 있는 미(美)적인 특징들을 들어내 주는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그에게 스승과 관련하여 몇 마디 물었다.

 

- 혹시, 월하 스승을 처음 만나 뵌 자리에서, 스승께 들었던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면?

“네, 처음 배울 때는 앵무새처럼 잘 따라 불러야 하고, 이후에는 자기의 개성을 살려서, 자기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랬을 것이다. 처음 그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마다 얼굴의 모습이 다르고, 또한 성격이나 취향, 특기가 각기 다른 것처럼, 음악에서도 <개성(個性)>이라고 하는 고유의 특성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 하는 점을 너무도 정확하게 일러준 스승의 주문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가 부르는 가곡이나 B가 부르는 가곡, 또는 C가 부르는 가곡이 저마다의 특징 없이, 모두 같은 목소리, 틀에 박힌 가락, 강약, 시김새의 표현, 등등이 모두 사진처럼 같다면, 누가 그 재미없는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을까? 점차로 개성을 살려야 된다는 스승의 주문은 음악 행위에 있어 불변의 진리로 그에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 지금껏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 악곡이 있다면?

“처음 배운 곡이어서 그런지 12가사 가운데 <백구사>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백구사(白鷗詞)」는 12가사의 하나로,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8절로 이루어진 노래다.

-(백구야 펄펄) 나지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성상(聖上)이 바리시니 너를 좇아 예 왔노라. 오류춘광(五柳春光) 경(景)좋은데, 백마금편(白馬金鞭)화류(花柳) 가자.- <아래 줄임>

 

- 가곡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장르의 음악과 만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린 나이에 가곡은 아무리 열심히 불러도 선생님들이나 선배님들을 능가할 수 없다는 판단이 앞섰습니다. 현실적으로 취업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요. 공력(功力)을 쌓아가면서 점차로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영역을 넓혀가야겠다는 다짐을 혼자 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가를 불특정 다수에게 재미있게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 오다가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이란 답을 얻은 셈입니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는 전통 성악을 현대음악 속에 녹여내는 작업 과정에서 여창가곡의 긴 호흡, 육성(肉聲)과 가성(假聲)의 변환, 다양한 요성(搖聲), 그리고 시김새의 활용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 후진들을 양성하면서 월하 스승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면

“글쎄요. 배움에 지쳐 포기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괜찮다’ 또는 ‘잘하고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저에게는 이 한마디가 모든 시련을 잊게 해 주셨지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 하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 순간 스승께 배운 가곡은 평생을 정진해야 하는 수양의 길이었음을 알게 하지요.“

 

- 혹시, 스승이 세상을 뜨신 뒤, 가곡을 대하는 마음에 변화가 있었는지?

“‘선생님께 물려받은 그 노래가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후학들에게 전승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 항상 경계하고 있지요.”

 

- 지금 강권순의 모습을 월하 선생께서 보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잘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어 고맙다. 그리고 <정가>란 평생을 해도 끝없음을 잊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그는 여창가곡의 섬세한 미학(美學)과 함께, 확신에 찬 강인(强忍)함으로 정가의 예술세계를 펼쳐 보이는 정상급 여류가객 가운데 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녀의 쉼 없는 정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