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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慈藏律師), 계율과 차향(茶香)의 길을 열다

한국의 차인열전 ⑥
[라석의 차와 시서화] 20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신라의 자장율사(590~658)는 한국 불교의 계율을 바로 세운 율사(律師)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우리 차문화의 역사 속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뜻밖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비록 자장이 직접 차를 심고 마셨다는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그가 남긴 수행의 정신과 도량은 훗날 한국 선차(禪茶) 문화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다.

 

자장은 선덕여왕의 뜻을 받아 당나라로 건너가 불법을 구하였다. 그는 계율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문수보살의 성지인 오대산(五臺山)을 찾아 수행하였다. 당시 오대산은 당나라 불교의 중심지였으며, 크고 작은 절마다 참선과 독경, 계율 수행이 이어지던 곳이었다. 수행자들은 좌선과 경전 연구 사이에 차를 달여 마시며 정신을 맑히고 마음을 다스렸고, 선차의 풍습은 이미 절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 험난했던 구도의 여정은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을 전한다. 필자는 오대산을 답사하며 다음과 같이 읊었다.

 

慈藏當年參聖跡(자장당년참성적) 자장은 그 옛날 문수보살의 성지를 찾아 수행하였고

文殊親授袈裟香(문수친수가사향) 문수보살로부터 가사의 향기를 전해 받았다

舍利東歸開佛國(사리동귀개불국) 불사리를 모시고 신라로 돌아와 불국토를 열었으며

皇龍九塔鎭東方(황룡구탑진동방) 황룡사 구층탑으로 동방을 굳건히 지켰다

 

이 시구는 자장의 중국 구법과 귀국 이후의 불교 중흥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수행자의 정신을 깨우고 번뇌를 덜어 주는 청정한 벗이었다. 계율을 중히 여긴 자장의 수행세계와 선차의 정신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길 위에서 만난다.

 

 

귀국한 자장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모셔와 신라 불교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는 영축산 기슭에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을 세워 계율의 근본도량을 이루었다. 오늘날 통도사가 불보사찰(佛寶寺刹)로 존경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통도사가 자리잡은 영축산에는 오래전부터 차나무가 자생하거나 재배되어 왔다는 전승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승려들이 나라에 차를 공출하였다는 기록이 《통도사사적》에 남아 있다. 이는 통도사가 단순한 수행도량을 넘어 우리 차문화의 중요한 산실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 주는 귀중한 역사적 증거라 할 수 있다.

 

자장이 차를 심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자장이 세운 청정한 계율의 도량에서 차가 자라고, 수많은 승려들이 차를 달여 수행을 이어 갔으며, 마침내 나라에까지 차를 바칠 정도의 전통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계율이 뿌리가 되었고, 차는 그 수행을 돕는 향기가 되었던 것이다.

 

 

차는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지만, 계율은 사람의 삶을 맑게 한다. 마음이 흐리면 차도 단지 목을 축이는 음료에 지나지 않지만, 마음이 바르면 한 잔의 차 또한 수행이 되고 공양이 된다. 자장이 평생 지키려 했던 청정한 삶은 바로 이러한 차의 정신과 깊이 맞닿아 있다.

 

오늘날 통도사의 고요한 숲길을 걸으며 한 잔의 차를 마시면, 문득 천삼백여 년 전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돌아와 계율의 등불을 밝혔던 자장의 발걸음이 떠오른다. 차향은 세월을 넘어 이어지고, 계율의 향기는 차향과 함께 지금도 영축산 골짜기를 은은하게 감싸고 있다.

 

차는 향기로 마음을 깨우고, 계율은 청정함으로 삶을 깨운다. 자장율사는 차를 이야기한 스님이라기보다, 차가 가장 아름답게 살아날 수행의 도량을 남긴 선각자였다. 그러므로 그의 삶은 한국 차문화의 역사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줄기 맑은 차향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26.6.28.벌바위 불한산방에서)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