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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이라는 지혜, 장마철 민어 이야기

[음식과 건강 4]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여름이 다가오고 장마가 시작되면 생각나는 제철 생선이 있다. 민어다. 민어는 흔히 여름 보양식의 대표로 알려져 있다. 복날이면 삼계탕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대부분의 생선은 가을과 겨울이 더 맛있다.

 

방어, 대구, 감성돔, 참돔, 우럭 등 우리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생선들은 대부분 수온이 낮아지는 계절에 지방을 축적하고 살이 오른다. 바다는 육지보다 한 철 늦다. 육지의 겨울이 바다에서는 가을에 가깝고, 육지의 봄은 바다에서는 아직 겨울에 가깝다. 그래서 생선은 대체로 차가운 계절에 맛이 좋아진다.

 

그런데 민어는 예외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민어를 여름에 가장 맛있는 생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민어는 여름에도 맛이 무너지지 않는 몇 안 되는 생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다른 생선들이 산란과 고수온으로 맛이 떨어지는 계절에도 민어는 살이 오르고 크기가 커지며 풍부하게 잡힌다.

 

민어라는 이름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민어(民魚)는 백성 민(民)자를 쓴다. 여러 설이 있지만, 옛날에는 여름철이 되면 민어가 많이 잡혀 백성들도 비교적 쉽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해석이 널리 전해진다. 지금은 고급 생선이 되었지만 원래 민어는 계절이 되면 풍성하게 잡히던 지금의 고등어와 같은 대중적인 생선이었다.

 

나는 재철음식을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철음식은 그 계절에 가장 풍성하게 얻을 수 있고, 그 계절의 환경을 가장 잘 견뎌낸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식탁에 살아남은 음식은 그 자체로 집단지성의 결과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여름은 음식이 가장 쉽게 상하는 계절이었다. 그런 계절에도 사람들은 민어를 찾았다. 많이 잡혔고, 크기가 컸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어를 처음 먹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를 떠올린다. 하지만 민어의 진짜 매력은 회 한 접시에만 있지 않다. 남도에서는 민어의 껍질을 따로 데쳐 먹는다. 두툼한 껍질에는 젤라틴과 콜라겐 성분이 풍부하여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만든다. 회보다 껍질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 하나의 별미는 부레회다. 민어의 부레는 다른 생선에 견줘 유난히 크다. 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오르내리기 위해 발달한 기관인데, 예부터 사람들은 이 부레를 귀하게 여겼다. 부레를 말린 것을 어교(魚膠)라고 한다.

 

어교는 오랫동안 한약재로 사용되었다. 특히 안태(安胎)와 보혈(補血) 약으로 유명하다. 임신 초기 태반이 불안정하거나 태동불안이 있을 때 사용하는 처방에 어교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점은 옛사람들이 어교를 단순히 단백질 덩어리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녹용이 사슴을 성장하게 하는 뿔이라면, 어교는 물고기의 생존을 책임지는 부레다. 그래서 어교는 생명을 붙들고 기르는 힘이 응축된 조직으로 이해되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어교가 고급 식재료로 취급되며 값비싼 보양식으로 소비되지만, 원래는 생명을 지키고 기르는 약재였다.

 

한의학에서는 민어를, 기혈을 보하고 비위의 기능을 돕는 음식으로 보았다. 특히 민어의 부레를 말린 어교(魚膠)는 양혈(養血)과 보정(補精)의 대표적인 약재로 사용되었다. 혈을 길러 몸의 회복을 돕고, 정(精)을 보충하여 생명력을 기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여름철 보양식이 된 것은 장마철의 환경과 민어가 궁합이 맞아서다. 여름이 되면 우리 몸은 외부의 습과 내부의 습기로 몸이 무겁고, 부으며 기운이 처지며 숨도 답답해진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습(濕)이 몸에 정체된 상태로 보는데 민어는 비위의 기능을 도와 이러한 습을 처리하고 몸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민어를 먹고 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호흡도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민어를 가장 맛있게 먹은 경험을 떠올리면 뜻밖에 회가 아니다. 낚시하면서 직접 잡은 민어를 배 위에서 손질한 뒤 해풍에 잠시 말린 것을 구워 먹었을 때다. 이 경험은 비단 민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생선은 잡자마자 내장을 제거하고 바람에 살짝 말리면 수분이 줄고 감칠맛이 응축된다. 일본의 ‘이치야보시(一夜干し)’ 문화도 같은 원리다. 특히 민어는 살이 두툼하여 반건조했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겉은 노릇하게 익고 속은 촉촉하게 유지된다. 회에서 느끼기 어려운 고소함과 깊은 풍미가 살아난다.

 

민어탕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는 냉장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에 민어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말려서 사용하기도 했다. 건조한 민어를 넣고 푹 끓인 탕은 여름철 허약해진 몸을 보하는 음식으로 사랑받았다. 여름은 땀을 많이 흘리고 습기가 많아 비위의 기능이 약해지는 계절이다. 이때 민어탕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민어는 단순히 맛있는 생선이 아니다. 민어에는 계절이 담겨 있다. 장마철이면 많이 잡히고, 백성들이 쉽게 먹을 수 있었으며, 회와 껍질, 부레와 탕까지 버릴 것이 없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사람들이 여름이면 민어를 찾았던 까닭은 영양학 교과서보다 먼저 생활 속 경험이 알려주었을 것이다.

 

언어는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지혜를 품고 있다. 민어가 민어인 까닭도 그 안에 있을지 모른다. 올여름 장마가 시작되면 민어를 한 번 찾아보자. 회도 좋고, 부레도 좋고, 탕도 좋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해풍에 살짝 말려 구운 민어 한 점을 권하고 싶다. 아마 옛사람들이 왜 여름이면 민어를 찾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