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신라 천년의 도읍 서라벌을 감싸안은 남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었다. 산길을 따라 오르면 크고 작은 절과 탑이 이어지고, 바위마다 부처가 새겨져 있으며, 골짜기마다 맑은 샘이 흐르는 살아 있는 불국토였다. 사람들은 남산을 오르며 부처를 만났고, 수행자를 만났으며, 무엇보다 자기 마음을 만났다.
그 남산에서 차를 달여 미륵보살께 공양하며 수행한 승려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충담(忠談)이다. 《삼국유사》는 충담이 삼화령(三花嶺) 고개의 미륵세존에게 차를 올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 차문화사에서 차가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니라 불전에 올리는 공양이자 수행의 한 방식이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충담에게 차는 갈증을 푸는 물이 아니라 마음을 씻는 맑은 향기였고, 부처 앞에 자신을 바치는 가장 깨끗한 정성이었다.
차는 한 잔이었지만 그 안에는 미래를 향한 신라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미륵은 아직 오지 않은 부처였다. 언젠가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할 미래불이었다. 충담이 올린 차 한 잔은 단순한 공양이 아니라, 더 밝은 세상을 기다리는 희망의 기도였으며,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한 자비의 마음이었다.
차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향기는 오래 머문다. 수행자의 덕도 그러하다. 말없이 피어나는 향기일수록 더욱 멀리 전해진다. 송대 주염계는 연꽃 향기를 두고 향원익청(香遠益淸)이라 했다.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진다는 뜻이다.
충담을 오늘까지 기억하게 하는 것은 차뿐만이 아니다. 그는 신라 문학을 대표하는 향가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는 신라 향가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화랑 기파랑의 맑고 고결한 인품을 노래한 이 작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의 덕을 드러낸다.
"흰 구름을 헤치고 높이 떠가는 달이여,
그 밝음처럼 그대의 마음 또한 티끌이 없도다."
달은 밤하늘을 비추지만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 향기는 깊은 골짜기의 난초처럼 홀로 피어나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충담은 달빛과 향기를 빌려 한 화랑의 덕성을 노래하였고, 그 덕은 오늘날까지도 신라 정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또 다른 작품인 「안민가(安民歌)」에서는 임금과 신하 그리고 백성이 저마다 제자리를 지킬 때 나라가 평안하다고 노래하였다. 짧은 노래 속에는 정치의 이념보다 먼저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으며, 백성을 향한 자비가 흐르고 있다.
충담의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다. 차를 급히 마실 수 없듯 그의 향가도 천천히 마음으로 읽을 때 비로소 그 향기가 스며든다. 차와 시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차는 향기를 마시는 시며, 시는 마음으로 마시는 차다. 그래서 충담은 차를 다릴 때에도 시를 짓고 있었으며, 시를 노래할 때도 차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심물철학에서 향기는 꽃잎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피어난다. 차의 향기 역시 찻잎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맑은 마음이 차를 만나면 향기가 되고, 어진 덕이 사람을 만나면 인품이 된다. 충담은 차를 통해 마음을 닦았고, 향가를 통해 세상을 맑게 하였다. 그의 차는 부처께 바쳐졌고, 그의 노래는 백성들에게 전해졌다. 하나는 향기로 수행을 이루었고, 다른 하나는 시로 세상을 교화하였다.
남산에 피어난 차향은 오래전에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충담이 남긴 시의 향기는 천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도 우리 마음속에 은은히 머물고 있다. 그러므로 충담은 신라 으뜸 차승일 뿐 아니라, 차와 문학, 그리고 수행의 향기를 하나로 피워 낸 우리 차문화사의 가장 아름다운 차인이었다.(26.7.15. 압록강변에서 라석)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