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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아니라 '준비가 끝났다'라는 것

'적벽대전’과 동남풍 그리고 제갈량
[정운복의 아침시평 316]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삼국지를 읽다 보면 영웅들의 웅장한 서사가 펼쳐집니다.

그 정점에는 ‘적벽대전’이 있지요.

 

그날 제갈량은 도술을 부리듯이 동남풍을 불러옵니다.

동남풍이 불지 않으면 천하의 지략도 한낱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던 그 겨울밤,

적벽강가는 차가운 침묵에 잠겨 있었습니다.

제갈량이 칠성단 위에서 소매를 휘날리며 하늘을 우러러보던 그 장면은,

천 년이 흐른 지금도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박제되어 우리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히 신비로운 도술이 아니라

정교한 준비의 결정체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제갈량이 바람을 불러왔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초월적인 힘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짜릿한 반전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공명이 칠성단에 오르기 전, 그가 한 일은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장강의 물결이 바뀌는 주기,

계절의 끝자락에서 대기가 뒤틀리는 찰나의 징후,

그리고 구름의 흐름 속에 숨겨진 습도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이었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데이터를 읽는 눈, 그것이 그가 부린 유일한 술법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늘이 돕는 운을 천운이라 부르며 손을 놓아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공명에게 천운이란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필연을 가장 완벽한 때에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동남풍이 불어올 것을 확신했기에 칠성단을 쌓았고, 그 바람이 멈추기 전 조조의 함선을 불태울 화공을 설계했습니다. 기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99%의 치밀한 분석 위에 마지막 1%의 믿음을 얹었을 때 완성되는 예술 작품이었던 셈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동남풍을 기다리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상황,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난관 앞에서

우리는 종종 기도를 올립니다.

하지만 공명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교훈은 기도의 내용이 아니라,

그가 단을 쌓기 위해 보냈던 수많은 세월의 관찰에 있습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흐름을 읽고, 마침내 확신이 섰을 때 비로소 단 위에 오르는 태도.

세상이 '운이 좋았다'라고 말할 때, 스스로는 '준비가 끝났다'라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그 당당함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현대적 지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