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옛날 사람들은 사서(四書)를 중심으로 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그 중심 내용은 나의 인격을 어떻게 가꾸어 가느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징요.
문제를 풀고 점수를 많이 얻어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인데
그것을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부릅니다.
곧 자신을 위한 공부라는 뜻입니다.
세상이라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종종 길을 잃습니다.
타인의 박수갈채에 목말라하며 나를 증명하려 애쓰는 삶과,
고요한 방 안에서 묵묵히 내면의 등불을 밝히는 삶.
공자는 이 두 갈래 길을 ‘위인지학’과 ‘위기지학’이라는 정갈한 언어로 나눕니다.
위인지학(爲人之學)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입니다.
남이란 타인의 시선, 사회적 명성, 혹은 나를 향한 기대치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때로 내면의 갈증을 채우기보다
남들에게 보여줄 화려한 스펙을 채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비교의 잣대 위에서 스스로 불행해하기도 합니다.
마치 뿌리 깊지 않은 나무가 화려한 조화(造花)를 매달고 있는 것과 같지요.
반면 위기지학은 나를 위한 공부입니다.
이는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다움을 완성해 가는 숭고한 여정입니다.
위기지학의 길을 걷는 이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공부의 목적이 밖이 아닌 안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숲속 깊은 곳에서 피어난 난초가 누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향기를 발하듯, 내면의 뜰을 정갈하게 가꾸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 공부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세워줍니다.
진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향기는 위기지학에서 나옵니다.
내면이 꽉 찬 사람은 억지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그 기품이 자연스레 배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 앞에 서기보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잎사귀보다 보이지 않는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공부일지 모릅니다.
모진 폭풍우 앞에 반딧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는
그 빛이 내재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숲속의 난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