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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꾼, 헝겊을 두른 짚신을 신었다

미국, 노예와 군함의 나라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91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포크는 용안(오늘날 익산시에 속함)을 방문한 다음 날 1884년 11월 9일 밤 삼례(오늘날 전북 완주군 소속) 주막에 든다. 등잔불 아래서 빈대와 벼룩과 싸우면서 이렇게 썼다. 민중의 비참상을 여실히 증언하고 있다.

 

"전양묵(Muk)의 말에 따르면, 관리들이 백성을 불러서 돈을 요구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다. 백성이 돈을 내놓지 않으면 매질한다고 한다. 하눌님께 아무리 빌어도 소용이 없을 땐, 백성들이 종종 관아를 들이쳐서 한양으로 내쫓아 버린다고도 한다.

 

오늘 여정은 몹시 힘들었다. 익산(Iksan)에 도착하기 전에 심한 눈이 서너 차례 내렸다. 길이 엉망진창이었다. 가마꾼들이 참 안 됐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용감하고 세심하게 날라 주었다. 가마꾼 일은 지독히 고되다. 그들은 맨다리를 드러낸 채 홑겹의 무명옷을 걸치고 있다. 발은 낡은 헝겊을 두른 짚신을 신고 있다. 오늘은 온도계가 섭씨 4.4도까지 내려갔는데도 알몸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이 눈에 많이 뜨였고, 맨발을 한 장정들도 수없이 많다.

 

오늘 나와 수일(Suil, 집사 정수일)은 위장에 통증을 느꼈다. 아마도 익산에서 먹은 떡(mochi) 때문인 듯하다. 이런 가슴의 열감과 경련은 처음이다.

 

이곳 주막의 방(chumak room)이 얼마나 끔찍한 굴헝(물이 고인 '웅덩이') 같은지는 필설로 형용키 어렵다. 노예와 군함의 나라(미국)에 있는 개와 돼지들도, 오늘 밤 이 미국의 공복(公僕)보다는 더 좋고 더 깨끗한 처소에서 지내고 있을 터다. (더러는 우리 공무원을 사치파, 향락주의자, 속물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곳은 익산으로부터는 20리 떨어져 있고 전주까지는 30리가 남아 있다.“

 

 

포크의 남도 탐사기는 유독 삼례에서 수탈당한 민중의 비참상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농민들이 탐관오리의 학정을 견디지 못하면 관아를 공격하여 관리를 쫓아낸다는 포크의 삼례 실록은 놀랍도록 묵시록적이다. 바로 10년 뒤에 삼례에서 그 같은 봉기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포크의 일기는 마치 미래를 예견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일기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대목은 자신의 나라 미국을 “노예와 군함의 나라( the land of the slaves and ships)”라고 자조적이고 냉소적으로 지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군인이자 외교관인 포크가 평소에 자기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어서 또한 놀랍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났지만, 남부에서 노예제도는 여전하였다. 아마 포크는 삼례에서 백성들이 노예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고국의 노예를 떠올린 것 같다. 동시에 군함으로 상징되는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 이것이 포크의 내면세계였고 가치관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나라를 이렇게 표현한 것은 잠재의식 혹은 무의식 속의 본심이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온 것(Freudian slip)이 아닌가 한다.

 

 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