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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세종이 이름한 '어금닛소리', MRI로 조음 비밀 풀어

ㄱㆍㄲㆍㅋ 발음 위치, 모음 '이ㆍ으ㆍ아'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동
"자음 종류보다 모음 환경이 조음을 더 크게 좌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훈민정음이 583년 전 '어금닛소리(牙音)'라 이름 붙인 한국어 자음 ㄱㆍㄲㆍㅋ의 발음 위치가, 하나의 고정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곁에 오는 모음에 따라 체계적으로 달라진다는 사실이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정밀하게 확인됐다. 세종이 소리의 원리를 설명하며 붙인 옛 이름이, 현대 의료영상 기술 앞에서 다시 한번 그 과학성을 증명한 셈이다.

 

이 연구는 이승수(연세대 일반대학원 언어병리협동과정)ㆍ최홍식(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연세의대 명예교수)ㆍ김진아(연세의대 영상의학교실 교수)ㆍ김슬옹(세종국어문화원 원장)ㆍ이호영(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연구진이 함께 수행했으며, 학술지 《한글》 제87권 제2호(2026)에 「모음 환경에 따른 훈민정음 '어금닛소리' 계열 자음의 조음위치 차이: MRI 기반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연구개 파열음' 대신 '어금닛소리'라 부른 까닭

 

현대 음성학에서는 ㄱㆍㄲㆍㅋ을 흔히 '연구개 파열음'으로 분류해 왔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 논문에서 훈민정음의 용어인 '어금닛소리'를 활용해 ‘어금닛소리 계열음’으로 택했다. 그 까닭은 MRI 영상 자체에 있었다. 실제 발음 순간을 촬영해 보니, 이 소리들이 막히는 자리가 조건에 따라 경구개, 혹은 경구개와 연구개의 경계부에 가깝게 나타나 해부학적 위치를 '연구개' 한 곳으로 단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훈민정음 제자해가 ㄱ 계열을 '어금닛소리'로 설명한 방식은, 혀 뒤쪽과 구강 후방부가 관여하는 소리군이라는 폭넓은 이해를 담고 있다. 연구진은 이 옛 설명 체계가 오히려 현대 조음음성학의 관찰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보고, 훈민정음의 용어와 현대적 관찰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어금닛소리 계열 자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정중시상면 MRI로 혀와 입천장 사이를 들여다보다

 

연구진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성인 13명(여성 7명, 남성 6명, 평균 22.9살)을 대상으로, ㄱㆍㄲㆍㅋ이 각각 '이ㆍ으ㆍ아' 모음 환경에서 발음되도록 구성한 9개 음절(이기ㆍ으그ㆍ아가, 이끼ㆍ으끄ㆍ아까, 이키ㆍ으크ㆍ아카)을 발음하게 했다. 그리고 3-Tesla MRI로 발음 순간의 정중시상면 영상을 촬영해, 소리가 가장 명확하게 막히는 대표 장면을 골라 조음위치의 각도를 정밀 측정했다.

 

측정에는 의료영상 분석 도구인 3D Slicer를 사용했으며, 측정자 내 신뢰도는 매우 높은 수준(급내상관계수 .986)으로 확인돼 결과의 안정성을 뒷받침했다.

 

핵심 결과: 모음이 자음의 발음 자리를 옮긴다

 

분석 결과는 명확했다. 세 자음 모두에서 조음위치 각도는 모음 환경이 '이' < '으' < '아' 순서로 일관되게 커졌다. 전설 고모음 '이'는 혀를 앞으로 내밀고 끌어올리므로 어금닛소리의 막히는 자리를 상대적으로 앞쪽으로 당겼고, 저모음 '아'는 혀를 낮고 개방된 위치에 두므로 발음 자리가 뒤쪽으로 물러났다. '으'는 그 중간에 놓였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평음ㆍ경음ㆍ격음이라는 자음의 종류(ㄱㆍㄲㆍㅋ) 차이보다 어떤 모음이 곁에 오느냐가 조음 위치에 더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통계 분석에서 자음 종류에 따른 차이는 유의하지 않았던 반면, 모음 환경에 따른 차이는 강하게 유의했다(p < .001). 곧 한국어의 어금닛소리는 정해진 한 자리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이웃한 모음과 맞물려 그 위치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살아 움직이는' 소리였던 것이다.

 

훈민정음과 현대 음성과학이 만나는 자리

 

이 연구의 의의는 두 갈래다. 하나는 한국어 어금닛소리의 조음이 인접 모음과의 상호작용(공조음, coarticulation) 속에서 체계적으로 조정된다는 사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MRI 영상과 정량적 각도 지표로 처음 직접 제시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훈민정음이 소리를 분류하며 남긴 '어금닛소리'라는 설명이 오늘날 첨단 영상 기술의 관찰과도 어긋나지 않음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 성과가 한국어 자음-모음 연쇄의 조음 원리를 이해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이번 연구가 '이ㆍ으ㆍ아' 세 모음만을 대상으로 삼은 만큼, 앞으로 한국어 단모음 전체와 혀 윤곽ㆍ접촉면 등 더 다양한 지표로 어금닛소리의 구조를 정밀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융합 연구 책임자인 김슬옹 씨는 "훈민정음이 500여 년 전에 붙인 이름이 오늘날의 정밀 영상과 만나는 순간, 세종의 음성학적 통찰이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한 융복합연구 「훈민정음 제자 원리의 융복합적 실증 및 응용」(NRF-과제번호 2023S1A5A2A210086078)의 일부로 수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