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경제학 교수라고 해서 모두 부자는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현실과의 괴리감은 있게 마련이지요.
같은 의미로 조향사는 향기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가장 매혹적인 향수를 배합하는 조향사의 몸에서는 정작 아무런 향취도 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향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냄새를 비워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팽창을 계산하고 수억 광년 떨어진 성단의 일생을 기록하는 천문학자는 그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고 연구하지만 정작 발을 딛고 선 땅 위에서는 단 한 평의 정원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무한(無限)을 사유한다고 해서 그 무한이 그의 영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시인은
정작 현실에서는 지독한 고독 속에서 차가운 차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합니다. 사랑의 본질을 언어로 빚어내기 위해 스스로 외로움이라는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富)를 연구하는 자가 부유하지 않고, 빛을 연구하는 자가 눈부시지 않듯, 가르치는 자의 위대함은 가진 것이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세계의 깊이에 있습니다. 가르침은 기계적인 지식의 전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인내하며 살아온 삶의 지혜와 따뜻한 마음의 전달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삶을 소모하여 타인에게 지혜의 등불을 건네주는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까닭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