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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시사 합작시 86. 흥남부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흥남부두

 

      눈보라가 휘날리던 부둣가 (돌)

      자유 찾아 목숨 건 아비규환 (심)

      금순아, 목을 놓아 불러봤다 (빛)

      통곡이 맴도는 동쪽 바다여 (달)

 

             ... 25.6.19. 불한시사 합작시

 

 

 

 

6·25전쟁의 흥남철수 당시 미군은 보따리 피난민을 10만 명이나 군함들에 태우고 부산과 거제도로 피난시켰다. 전투장비를 바다에 던져 버리고 피난민을 구해낸 세계전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휴매니즘의 쾌거다. 신앙심이 깊었던 미군이 아니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12명 정원의 상선 매러디스 빅토리아호는 피난민을 가장 많이 실었는데, 무려 14,000명이나 싣고 3일 만에 거제도에 도착했다. 살벌한 파도를 뚫고 내려와 보니, 사망자는 한 명도 없고 오히려 신생아가 5명 태어나 승선인원이 늘어나 있었다.

 

마침, 크리스마스였기에, 이 사건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알려졌다. 당시의 선장은 레너드 라루였는데, 귀국한 뒤에 수도사가 되어 일생을 마쳤다. 천주교에서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은 매러디스 빅토리호가 페선이 되어 중국에 팔려나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사들여 전쟁기념관에 전시해야 했을 텐데, 어쩌다 흥남철수의 원인 제공자인 중국으로 고철값에 팔려나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말았다. 가슴 아린 일이다. (한빛)

 

도움 설명 : 한여름 불볕더위 속에서 불한시사 합작시 "흥남부두"를 다시 읽는다. 아스팔트가 달아오르고 매미 소리가 귀를 메우는 팔월의 서울에서, 시는 우리를 단숨에 1950년 12월의 동해 북녘 바닷가로 데려간다. 눈보라가 얼굴을 후려치고 살을 에는 바람이 바다에서 밀려오던 흥남부두, 그곳에는 군인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등에 아이를 업은 어머니, 늙은 부모의 손을 붙잡은 아들, 보따리 하나에 한평생을 싸맨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오직 ‘살아야 한다’, ‘자유로운 곳으로 가야 한다’라는 한마음으로 배를 기다렸다.

 

배에 오른 사람에게 흥남부두는 삶의 문이었지만, 끝내 배에 오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생이별의 벼랑이었다. 국가기록원 자료에는 마지막 배가 떠날 때 육지에 남은 피난민들이 울부짖고, 일부는 바다에 몸을 던지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배를 타고 떠난 사람 역시 기쁠 수만은 없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 뒤에는 부모와 형제와 고향을 두고 왔다는 평생의 죄책감과 그리움이 따라다녔다.

 

 

그래서 이 합작시의

“금순아, 목을 놓아 불러봤다”라는 한 행은 단순한 유행가의 회상이 아니다. ‘금순’은 어느 한 여인의 이름을 넘어 흥남에서 헤어진 누이이고 연인이며 어머니이고 고향이다. 전쟁이 갈라놓은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금순’이라는 이름 하나에 겹쳐 있다.

 

그러므로 첫 행의 “눈보라가 휘날리던 부둣가”는 우리 현대사의 겨울을 상징한다. 눈보라만 휘날린 것이 아니다. 가족이 흩어지고 국토가 갈라졌으며, 인간의 운명이 이념과 총포 앞에서 낙엽처럼 흩날렸다. 그 눈보라 속에서도 누군가는 자기 자리를 내주었고, 누군가는 낯선 사람의 아이를 끌어올렸으며, 군함과 수송선은 전쟁을 수행하는 쇳덩이에서 생명을 건지는 방주로 바뀌었다.

 

그리고 모든 배가 떠난 뒤 흥남항에는 거대한 폭음과 검은 연기가 남았다. 마지막 철수가 이루어진 12월 24일, 항만시설과 남겨진 군수물자가 적에게 이용되지 못하도록 파괴되었다. 당시 미 육군통신대가 촬영한 기록영상에도 흥남 앞바다로 빠져나가는 함선들과 뒤편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 부두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사람들은 남쪽으로 떠났지만, 고향은 그 자리에 남았다.

 

그리하여 흥남부두에서 시작된 피난길은 부산과 거제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피난민들은 남녘 곳곳에 삶의 뿌리를 다시 내리고 자식을 낳아 길렀다. 빈손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시장을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공장을 일구며 전쟁 폐허의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흥남에서 실려 온 것은 피난민만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아 새로운 삶을 만들겠다는 생명의 의지였다.

 

그러나 칠십여 년이 흐른 오늘까지 흥남의 눈보라는 완전히 그치지 않았다. 휴전선이 남아 있고, 그날 헤어진 수많은 가족은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흥남철수는 그래서 자랑스러운 구출의 역사인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이 겨울시를 읽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몸은 더위에 지쳐도 역사의 기억까지 뜨거움 속에 녹여 버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폭염 속에서 눈보라 치던 흥남을 떠올려 본다. 맨손으로 아이를 안고 얼어붙은 부두에 서 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하루와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기억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자는 증오의 기억이어서는 안 된다.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다시는 그러한 피난선이 필요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심물철학에서 마음[心]과 현실[物]은 서로 단절되어 있지 않다. 마음이 물질세계를 움직이고, 현실의 고통은 다시 인간의 마음을 깨우친다. 전쟁 또한 먼저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탐욕과 증오와 적대가 마음에 쌓여 말이 되고 제도가 되고 무기가 되어 마침내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物]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평화도 마찬가지다. 화해의 마음이 사람과 사람을 잇고, 그 감응이 사회와 국가로 넓어질 때 평화 역시 현실이 될 수 있다. 마음(心)이 평화를 품으면 사물(物)은 평화의 세계에 참여하고, 마음과 마음이 서로 감응하면 갈라진 민족도 다시 하나의 생명으로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꿈꾸는 통일한국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굴복시키는 승패의 통일이어서는 안 된다. 흥남부두에서 남과 북으로 갈라져야 했던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통일, 전쟁과 보복의 악순환을 끝내고 생명과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함께 지키는 평화의 통일이어야 한다. 그날이 온다면 흥남부두의 바다는 더 이상 통곡이 맴도는 바다가 아닐 것이다. 부산에서 떠난 배가 동해를 따라 원산과 흥남으로 자유롭게 올라가고, 남쪽의 자손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며, 북녘의 사람들도 아무 두려움 없이 한라에서 백두까지 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이 시의 마지막 행, “통곡이 맴도는 동쪽 바다여”를 다른 마음으로 읽게 될 것이다. 통곡이 멎은 동해, 눈보라가 걷힌 흥남, 총성이 사라진 한반도. 그리고 그 바다 위로 다시 떠오르는 달빛은 어느 한쪽만을 비추지 않을 것이다. 남과 북, 산 자와 죽은 자,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을 한빛으로 감싸며 비출 것이다.

 

흥남의 겨울을 기억하는 것은 전쟁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 없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다. 눈보라 속에서 생명을 실어 나르던 배들이 그랬듯이, 이제 우리 시대에는 총과 군함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잇는 새로운 배가 필요하다. 그것이 심물(心物)의 배요, 화해와 감응의 배이며, 마침내 분단의 바다를 건너 전쟁 없는 통일한국으로 가는 평화의 방주가 아닐까.(26.8.8.영등포 오불당에서 라석)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