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연세대 한글물결 동문]
강문선 선배님.
이렇게 불러 놓고 대답을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 저는 오늘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2026년 8월 18일, 선배님은 일흔 해의 삶을 내려놓고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혈액암이라는 모진 병과 싸우시는 동안에도 끝내 흐트러짐이 없으셨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한데, 저는 선배님을 과거형으로 적고 있습니다. 손이 자꾸 떨립니다.
선배님은 1967년에 첫걸음을 뗀 연세대 국어운동학생회 ‘한글물결’을, 76학번 국문학도의 젊은 어깨로 다시 일으켜 세우신 분이었습니다. 한자 혼용의 기세가 여전히 드셌던 1970년대 후반, 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의 한복판에서 한글전용의 깃발을 드셨지요. 선배님은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조용한 말이 늘 가장 멀리까지 갔습니다. 그때 선배님이 지켜 내신 그 물결이 오늘까지 이어져, 한글물결은 이 나라 대학가에 남은 단 하나의 한글운동 동아리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버텨 낸 자리가 반백 년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교단이 곧 선배님의 운동 현장이었습니다
선배님이 걸으신 길이 더욱 귀한 것은, 그 뜻을 평생의 직업으로 살아 내셨기 때문입니다. 선배님은 영동여자고등학교와 백암고등학교 교단에서 한평생 국어를 가르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연세의 스승 외솔 최현배 선생께서 남기신 한글 사랑의 정신을, 선배님은 논문이나 구호가 아니라 날마다의 수업으로 아이들에게 건네주셨습니다.
영동여고 수제자였던 김한샘 교수는 선배님 모교인 연세대 국문과 직속 후배가 되어 말뭉치 언어학의 권위자로 외솔 정신을 잇고 있습니다. 우리말을 아끼는 마음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던 외솔의 가르침이, 선배님의 목소리를 거쳐 수천 명 제자의 마음에 씨앗으로 심겼습니다. 저는 늘 생각했습니다. 한글운동의 가장 든든한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선배님은 그 답을 삼십여 년의 교직으로 조용히 보여 주셨습니다.
‘한글 30대 사건’, 선배님이 후배들 손에 쥐여 주신 탑
2022년, 연세대 한글탑 건립 30돌을 맞아 펴낸 ‘한글 30대 사건’ 소책자와 그 전시를 저는 잊지 못합니다. 그 일은 선배님의 헌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자료를 모으고 원고를 살피고, 전시장을 꾸리고 마지막 뒷정리까지 선배님이 앞장서 감당하셨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궂은일을 먼저 맡고 공은 뒤로 미루는 것이 선배님의 오랜 방식이었지요. 캠퍼스의 돌탑이 한글의 뜻을 새긴 것이라면, 그 소책자와 전시는 한글운동의 역사를 후배들의 손에 쥐여 준 또 하나의 탑이었습니다.
한글운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다시 통일운동으로
선배님의 삶은 교실 안에만 머물지도 않았습니다. 연세대 민주동문회의 한 사람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젊음을 내어놓으셨고, 정년으로 교단을 내려오신 뒤에는 북녘을 떠나온 학생들 곁으로 가셨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치는 자원봉사 교육에 남은 힘을 다 쏟으셨습니다. 한글운동과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이 결국 한 뿌리에서 나온 일임을, 선배님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셨습니다.
“동문들이 나설 겁니다” … 두 달 전, 그 목소리
선배님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두 달 전이었습니다. 연세대 한글물결 60년사 편찬 발기위원회가 꾸려진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자, 선배님은 수화기 너머에서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한글운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는 일이니 한글물결 동문들이 반드시 적극 나설 것이라며, 오히려 저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건강 때문에 힘껏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몇 번이고 아쉬워하셨지요. 저는 그때 “선배님은 그냥 계셔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하고 웃어넘겼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저는 그 전화를 끊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기 몸보다 60년사의 앞날을 먼저 걱정하시던 그 목소리가, 이제 저희에게 유언으로 남았습니다.
앞선 이에게는 벗, 뒤따르는 이에게는 그늘
한 해 뒤에 대학에 들어와 평생을 함께한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후배는 누구보다 먼저 빈소를 찾아 선배님 앞에 섰습니다. 늘 묵직한 리더십으로 한글운동을 이끌던 선배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한글운동 동아리, 한글물결의 막내들인 김소현, 오연수(연세대 4학년) 후배도 빈소를 찾았습니다. 행사 때마다 손을 잡아 주고 밥을 챙겨 주시던 선배님을 이야기하다가, 두 사람은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선배님, 보십시오. 선배님이 아껴 주신 후배들이 이렇게 자라 여기 서 있습니다.
앞선 이에게는 든든한 벗이었고, 뒤따르는 이에게는 넉넉한 그늘이었던 사람. 그것이 저희가 아는 강문선입니다.
선배님.
이제 그 무겁던 짐을 저희에게 넘기고 편히 쉬십시오. 선배님이 지켜 내신 물결은 절대로 끊기지 않겠습니다. 한글물결 60년사는 반드시 세상에 나올 것이고, 그 첫 장에는 선배님의 이름이 새겨질 것입니다.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는 올해, 저희는 선배님을 가슴에 품고 그 길을 이어 걷겠습니다.
부디 아프지 않은 곳에서, 환하게 웃으십시오. 삼가 두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선배님께서 유난히 아꼈던 후배 김슬옹 삼가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