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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동물들 쫓는 알타미라 구석기인 함성이 들리는 듯

고교 졸업 50돌 맞아 찾아간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서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32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알타미라 동굴 벽화’하면, 학교 다닐 때 구석기 시대의 벽화, 그것도 기원전 18,500년에서 14,000년 전 사이의 아득히 오래 전의 벽화, 그런데 원시인들이 그렸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그린 벽화라고 배웠다. 교과서에는 벽화 그림도 있어서, 나도 ‘원시인들이 정말 이런 수준 높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었다.

 

고교 졸업 50돌을 기리는 이베리아반도 여행 3일 차에는 이런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러왔다. 이번 여행은 건축을 전공한 김봉렬 전 한국예술종합대학 총장이 기획한 여정을 따라가는 일종의 건축 기행이다. 그렇다면 알타미라 동굴 관람은 건축 기행의 관점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는 여행지가 아닐까? 그리고 스페인을 많이 다녀간 봉렬이도 알타미라 동굴은 처음 와본다고 하는 것이 혹시 봉렬이의 사심이 들어간 여행지?^^ 아무튼 한국인들의 스페인 여행지 후보군에는 잘 들어가 있지 않지만, 교과서에서 배웠던 구석기인들의 수준 높은 벽화를 보러 온 것은 의미가 큰 여행이었다.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주의 주도인 산탄데르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알타미라 동굴에 왔으나, 동굴 입구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원래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었으나, 많은 사람이 들락날락하여 동굴벽화에 손상 조짐이 나타나면서 개방이 중지되었다. 그 대신 그 옆에 알타미라 동굴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물론 전체 길이 296m의 동굴 가운데 벽화로 유명한 부분만 재현해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원래의 석굴암은 보존을 위해 개방을 중지하고, 전실 앞에 설치된 유리벽 밖에서만 볼 수 있도록 하지않았는가?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존을 위해서는 그런 아쉬움은 참을 수밖에. 아무튼 동굴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잠시 응시하다가 돌아 나온다.

 

짝퉁 알타미라 동굴은 그 앞에 세운 알타미라 박물관으로 입장하여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짝퉁이라고 하더라도, 복원된 동굴의 크기상 제한된 인원만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박물관을 둘러본다. 박물관이라고 하여 유물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알타미라 동굴에 대한 자료와 구석기 시대 세계 유산에 관한 사진과 자료 등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는 동굴벽화 가운데 사슴 계통의 동물로 보이는 벽화의 1965년의 모습과 1974년의 모습을 견준 사진도 있다. 사진을 보니 1974년의 사진에서는 전에 없던 검은 얼룩과 하얗게 변색한 부분을 볼 수 있다. 이러니 원 알타미라 동굴 개방 금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알타미라 동굴을 중심으로 동굴벽화가 발견된 동굴들의 분포도를 보여주는 지도도 있다.

 

알타미라 동굴은 1868년, 이 마을에 살던 사냥꾼 모데스토 쿠비야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 뒤 1879년 동굴이 있는 땅의 주인인 마르셀리노 산즈 데 사우투올라 후작이 8살 난 딸을 데리고 동굴을 둘러보다가 벽화를 발견하였다. 사우투올라는 마드리드 대학의 고고학자 후안 빌라노바 이 피에라(Juan Vilanova y Piera)를 불러 추가 조사를 한 뒤, 이 벽화가 구석기 시대 벽화임을 확신한다. 그러고는 다음 해 피에라의 도움으로 알타미라 동굴에 대한 논문도 발표하였다.

 

그렇지만 사우투올라는 곧이어 반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구석기인들이 어떻게 이런 벽화를 그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구석기인을 미개한 인종으로 생각하는 편견에서는 도저히 이 벽화를 그 오래 전의 구석기인들이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문학자들마저 믿을 수 없다고 하니, 사우투올라는 사기꾼으로 몰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알타미라 동굴뿐만 아니라, 그 뒤 추가로 속속 발견되는 동굴에서도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버금가는 벽화들이 속속 발견되니, 사우투올라의 주장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1902년 동굴벽화 연구의 창시자라는 에밀 카르타이야크(Émile Cartailhac, 1845~1921)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사우투올라는 사기꾼의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사우투올라가 죽은 지 14년이 지났을 때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사기로 오해받았다지만, 고고학계에서는 실제로 사기로 판명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필트다운인(人) 사건인데, 1912년 변호사 찰스 도슨과 지질학자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가 영국 서식스 지역 필트다운에서 인류의 조상 화석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의 발견은 교과서에도 실리는 등 인류 진화 연구의 중요한 증거로 여겨졌는데, 1953년 과학적 분석으로 조작임이 밝혀진 것이다. 곧, 필트다운인은 중세 인류 두개골에 오랑우탄 턱뼈를 끼워 맞춘 사기로 밝혀진 것이다.

 

일본에서도 후지무라 신이치가 1980~90년대에 일본 각지에서 4만 년~70만 년 전 구석기 유물을 발굴했다고 주장하여, 그는 별명이 ‘신의 손’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00년 기자가 그가 직접 만든 석기를 몰래 땅에 묻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폭로하면서 사기임이 밝혀졌다. 일본에서도 한국이나 중국 못지않은 오래된 석기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일본 고고학계에서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떠들썩했던 듯하다.

 

전시물 가운데는 구석기인의 유골을 전시해 놓은 것도 있다. 물론 부분적으로만 있는 것인데, 왼쪽 발뼈는 거의 온전히 있다. 엘 미론 동굴에서 발굴하였는데, 조사 결과 여자의 유골로 밝혀졌다. 그래서 엘 미론 동굴의 붉은 여인이라고 부른단다. 발굴 당시 유골이 붉은 황토로 덮여 있어 ‘붉은 여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붉은 여인’이라고 하니, 에티오피아 박물관에서 본 320만 년 전 여자 유인원 루시가 생각난다. 루시는 미국 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 팀에 의해 1974년 에티오피아 아파르 계곡에서 발굴되었다. 그런데 발굴 당시 루시의 발견을 자축하는 요한슨의 캠프에서 ‘다이아몬드와 함께 있는 하늘의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노래가 흘러나왔기에, 즉석에서 발굴한 화석에 ‘루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전시된 것 가운데는 동굴벽화를 포함하여 바위에 새긴 암각화의 세계 분포도를 보여주는 지도도 있다. 분포도를 보니 스페인에 제일 많이 몰려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먼저 알려져서 그렇지, 만약 다른 동굴벽화가 먼저 알려졌다면 우리는 ‘알타미라’보다는 다른 이름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세계지도를 훑는 나의 눈에 한반도가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반도 동남부에도 점이 하나 찍혀있지 않는가? 아하! 울주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로구나! 알타미라 동굴을 보러 왔다가, 뜻하지 않게 반구대 암각화도 세계 암각화의 반열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는구나. 여행하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도 않던 것을 보거나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 입장 차례가 되어 지하로 내려간다. 동굴로 들어가니 과연 알타미라 동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물론 바닥은 관람객들을 위해 일반 건물의 바닥면처럼 되어있다. 그런데 동굴처럼 길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실 정도의 넓은 방으로 들어간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가운데 널리 알려진 핵심 벽화만 있는 곳을 재현해 놓은 모양이다.

 

천장에는 내가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보던, 그리고 그 뒤 잘 인쇄된 사진으로 보면서 감탄하던 벽화가 펼쳐져 있다. 비록 짝퉁이긴 하지만 원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한 벽화를 보게 되니, 이것만으로도 14,000년 이전의 인류 선조들의 그림을 보는 감흥이 샘솟는다.

 

몸체가 우람한 들소는 너무 생생하여 지금이라도 천장에서 뛰어내릴 듯하다. 14,000년 이전이면 인류는 먹을 것을 찾아 들로, 숲으로 채집과 사냥을 하러 떠돌아다니다가, 밤에는 동굴로 돌아와 목숨을 부지하는 채집경제 시절이었을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생존의 각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저런 세밀하고도 아름다운 벽화를 그릴 수 있었을까? 하루하루가 목숨을 내건 생존의 치열한 현장에서 살아가기에, 더욱더 간절한 마음이 이런 벽화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일까?

 

“이게 정말 14,000년 이전의 인간들이 그린 벽화란 말인가?”라고 감탄하며 벽화를 보다 보니,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에 있는 구석기 시대 괴베클리 테페 유적이 생각난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1963년 처음 발견되고, 1996년부터 본격 발굴을 했다는데, 유적지에 가면 약 200개에 달하는 돌기둥들(무게 20톤~50톤)이 20여 개의 원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규모가 워낙 거대해서 현재까지 15% 정도밖에 발굴하지 못한 상태라는데 여기 기둥들에도 여우, 전갈, 사자 등 여러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들린다.

 

그런데 이러한 유적의 규모만 하여도 놀라운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다. 영국의 스톤헨지 유적을 보면서 미스터리한 유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그보다 무려 7,000년이나 앞선 기원전 10,000년 경 유적이라고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알타미라 동굴벽화 발견 이상으로 놀라워하는 것이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채집경제 시절의 구석기인들이 단순히 동굴에 벽화를 그린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돌 유적을 만들었다고 하니, 사람들은 놀라워하고 믿기 힘들어하는 것이다. 도대체 괴베클리 테페의 정체는 무언가? 학자들은 떠돌이생활을 하는 구석기인들이 1년에 한 번은 괴베클리 테페에 모여 자신들의 안전을 비는 제사를 드리고, 축제도 벌인 것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

 

 

비록 짝퉁이지만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바로 눈앞에서 본 감동을 안고 밖으로 나오니, 머리를 맞대고 한창 힘자랑을 하는 들소들이 힐끗 쳐다보며 구경 잘하였냐는 듯하다. 조각가 헤수스 오테로(Jesús Otero, 1908–1994)의 부조(浮彫) 작품 '소들이 맞부딪히는 모습(Toros embistiéndose)'이다. 서로 힘을 쓰는 소들의 근육이 팽팽한 게, 알타미라 동굴의 소들이 뛰쳐나와 서로 힘 대결을 하는 듯하다. 이제 다음 행선지인 오비에도로 간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14,000년 이전의 동물들을 쫓는 알타미라 구석기인들의 함성과 급히 뛰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